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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지 않는 방법은 상황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일을하다보면 참 많은 상황속에서 다양한 분노들과 마주한다. 내가 내는 분노도 있고, 상대방이 내는 분노도 있다. 일을 하기 위해서 불가피할 수 있다고 말하곤 하지만, 사실 분노로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분노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접점이 없다는 반증이다. 접점이 없다는 것은 서로간의 견해차이가 너무커서 도저히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안되는 상황에 처하게 될 때 분노가 표출되고 그 분노의 강도에 따라서 승/패가 나누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분노를 동반한 승/패는 또 다른 분노를 발생시킨다. 즉 분노로 얻은 것은 계속되는 분노속에 노출된다는 뜻이다. 이유야 상대방도 분노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지 진심으로 상대방의 의견에 동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미온적 행동이 또 다른 분노를 야기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분노를 잘 보면 굳이 분노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많다. 어쩌면 분노가 많다는 것은 상황적으로 유연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서로간의 여백이 없는 상황에서 어떤 토의나 논의는 결론적으로 분노로 귀결된다. 

여백이란 정확히 말하면 상호간의 이해이다. 비장한 각오로 상대방을 무찌르겠다고 오는 사람과는 어떤 대화도 안된다. 설명, 설득, 이해 이런 단어는 의미가 없다. 그냥 까라면 까는거고 원하는데로 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과는 어떤 대화도 통하지 않는다. 그냥 힘과 힘의 싸움이고, 누구의 스폰서를 받느냐에 따라서 의사결정이 달라진다. 

이런 상황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여백의 핵심이다. 

내가 옳다고 판단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의견이고, 상대방의 의견과는 이견이 생길 수 있다. 이것이 첫번째이다. 
두번째는 내가 옳더라도 결론은 다르게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현 상황을 인지하고 그에 따른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세번째로 결론에 따른 문제점이 내가 예상한 것이 맞더라도 그저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현실적 이해를 하는 것이다. 

사실 분노를 유발하는 일들은 너무나 많다. 특히 조직이나 개인의 이기주의에 기반한 것들은 분노에 빠지기에 충분하다. 아니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분노를 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분노는 오히려 나를 상하게 한다. 

앞에 3가지 여백의 핵심은 바로 현실직시와 상황판단 능력을 의미한다. 옳은 판단과 옳은 결정은 다르다. 옳은 판단이라고 무조건 선택받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무리한 요구가 있다면 그 요구에 대해서 분노하기 보다는 왜 그런 무리한 요구가 발생했는지 확인하는 행동이다. 대부분 분노에 휩싸이지만,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그 원인을 들여다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원인을 보면 고객의 요구, 경영층 요구, 상급자의 요구, 개인의 이기심 등등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그에 따라서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과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은 대책을 수립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Debate를 한다. 

그리고 상대방과 Debate를 하면 분명 상대방의 분노가 나타난다. 분노에 휩쌓인 상대방에게 단순하게 한마디 한다. 

"왜 화를 내시죠? 우리 일하는거 아닌가요!!!" 라고... 

우리는 월급쟁이다. 월급쟁이들끼리 싸워서 남는 것은 없다. 서로 절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Debate는 상대를 죽이기 위한 방향이 아닌 서로 같이 살 방법을 찾자고 설득한다. 

이런 방식으로 논의하다 보면 의외로 많은 부분에서 분노가 줄어든다. 사실 분노를 줄이고 싶은 것은 분노 이후에 후회되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분노가 너무 많이 남는다. 그래서 그냥 분노하지 않고 살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습관을 들인다. 분노하는 상황에 놓이면 한템포 쉬고 왜 이 상황이 생겼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운전할 때도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닌 한은 대부분 화내기 보다는 왜 저 사람이 저렇게 운전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예를 들어 차선에 바짝 붙어오거나, 원래 이리저리 움직임이 큰 차이거나, 아니면 운전초보 또는 운전 중 딴짓을 하는 등 여러 이유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상황적으로 상대방의 차들의 움직임을 항상 관찰한다. 그리고 갑자기 들어오는 것이 아닌 어차피 들어올 차라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일도 마찬가지다, 이미 성향이 파악된 경우 어차피 그 사람이 일하면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어차피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처리 방법을 찾는다. 분노해 봤자 일어난 것이 해결되지도 않고 분노된 감정 유지되면서 일의 효율성만 더 나빠진다.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어떤 일의 처리, 일을 하는 사람, 일의 환경 등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분노보다 상황파악을 하는 이유는 재발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분노만 싹뺀 사실만으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서 재발방지만 하더라도 충분하다. 화낸다고 달라질 것들은 없다. 

월급쟁이들에게 분노는 독이다.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분노 자체를 줄이는 것이 바로 월급쟁이의 삶에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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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힘든게 아니라 바로 사람이 힘든것이다. 

일을 하면서 경험이 쌓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과거의 정의롭던 모습이 사라지는 사람들을 계속 보게 된다. 가끔 왜 저렇게 변했을까 하는 생각을 갖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어쩌면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중국 역사서들을 읽다보면 문득 의문이 생긴다. 왕조가 바뀌어도 흥망성쇄의 방식은 동일하다는 점이다. 성군이 폭군이 되고, 다시 새로운 나라가 나타나고 반복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왜 어리석은 행동은 반복이 될까 항상 의문이 들었다. 사기나, 한비자 등을 읽다보면 그런 중국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점이 이상할 정도지만 어쩌면 그 속에 역사가 일러주는 가르침을 지금도 여전히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일을 할때도 문득 문득 '왜 저렇게 할까'라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동료들의 피해가 예상됨에도 자기 중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른 동료들은 울분에 찬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들은 오늘도 이기적 행동을 반복한다. 

한때는 이런 사람들을 볼때마다 바로잡고자 했다. 일을 대충하거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거나, 다른 사람의 성과를 가로채는 사람을 만나면 어김없이 그들과 싸우며 정의를 바로 잡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해도 비정상적 상황의 사람들은 계속 늘어만 간다. 신기하게 노력하면 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늪과 같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연합해서 집단적 공격도 가하는 일도 생긴다. 

아는 지인은 이런 이들과의 말그대로 정의로운 싸움에 처참히 패배했다. 거짓보고와 거짓성과가 난무하는 것을 참지못하고 그들과 맞섰지만, 그들의 수가 더 많다는 점을 간과한 나머지 결국 지인의 패배로 전락했다. 

그렇다고 이직을 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직을 하고 난 뒤에는 결국 똑같은 상황 또는 더 심한 상황에 마주할 뿐이다. 그래서 회사생활 자체가 어렵고 힘든 것은 일이 힘든 것 보다는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서 발생되는 문제들이 더 많다. 

이전까지는 이런 사람들과 같은 사고로 인해서 어려운 일들도 지속하여 생겼다면 이제는 순리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방법을 찾아나가고 있다. 

어차피 그런 사람들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들을 직시하는 순간 자신의 평정심을 잃고, 일에 감정이 대입되어 일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과의 거리를 두는 연습을 하게 된다. 그들을 바꿀 수 없다면 그들과 얽매이는 상황은 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피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일단 피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과 일을 하게 될 수 밖에 없다면, 결국 실력으로 그들의 영역을 제한하는 방법 밖에 없다. 어설프게 그들이 일을 하게 만들어서 문제만 키우게 놔두기 전에 그들이 담당하는 일에 제한을 가하고, 그 일을 리딩하면서 그들로 인해서 피해보는 동료를 최소화 시키는 방법 밖에는 없다. 

사람으로 생기는 문제에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계약관계 속의 월급쟁이라면 더더욱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어차피 그들을 내가 월급주는 것도 아니므로 그들의 행동을 비난할 수 있지만, 고칠 수 없다. 비난으로 내가 위안을 받는다면 좋겠지만 비난으로 위안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말도 안되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저 그 사람의 특성 자체를 이해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읽어내려고 한다. 그들이 움직일 때 왜 움직이는지 대략적 판단을 하고 그들이 이용해 먹으려 들 때 그들보다 반발 먼저 앞서서 저지를 한다. 

이런 행동이 가능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일을 잘 해야 한다. 안그러면 그들에게 잡아 먹힌다. 농담이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일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노린다. 굳이 더 노력한다고 월급 더 받는 것도 아닌데 노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자기들이 상대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것이 드러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말도 서슴없이 한다. 일전에 일의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서 일이 되는 것처럼 보고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일을 잘 지켜보다 더 진행되면 문제가 될 것 같아서 일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하고 담당자를 변경하며 그가 한 일을 요청했더니 역시나, 아무것도 없는 엑셀 30줄 짜리 한장이 전부였다. 다행이 더 진행되지 않아서 수습을 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서 발생되는 다른 동료들의 피해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이제 사람으로 힘들 거라는 것 자체를 빠르게 인정해야 한다. 그 속에서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어차피 비정상적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들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면 결국 그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냥 쿨하게 인정하고, 그들과 대립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월급쟁이로써 회사에 살아남을 수 있고, 일을 통해서 즐거움과 행복도 느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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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의 실패의 속도전은 계속되는듯 하다. 

빠르게 발전시키고 있는 옵티머스를 이제 본격적으로 사업장에 투입하는 시도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혁신의 경우 잘 만든 제품이 팔리는 것이 아닌 잘 쓰여지는 것이 증명된 제품이 혁신을 이끈다. 

이런 점에서 옵티머스를 빠르게 작업장에 투입하는 테슬라의 행보는 앞으로 전기차 제조에 있어서의 원가개선을 넘어서, 새로운 전기차의 치킨게임으로 사람들을 이끌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테슬라의 시도는 결국 전기차가 확장되었던 것과 비슷하게 로봇시장의 새로운 도화선으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보여지고, 결국 올 하반기 이후부터는 제조산업의 휴머노이드 로봇의 시장도 빠르게 확장될 것으로 보여진다. 

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346556

 

테슬라 생산공정에 인간형 로봇 ‘옵티머스’ 투입 임박, 로봇 관리직 구인공고 내

테슬라가 자사 휴머노이드 옵티머스를 제조 현장에서 시험하는 직무을 맡을 구인 글을 올렸다. 사진은 옵티머스가 2족보행을 하는 모습. <테슬라>[비즈니스포스트]테슬라가..

www.business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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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었다고 생각되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때다. 

예전에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겪었다. 아마도 그때는 삶의 모든 것들이 위험에 빠진 상황이라고 기억된다. 해결 가능한 방법도 찾을 수 없었던 그때 문득 제주도 도보일주를 떠올리게 된 것은 어쩌면 그만큼 힘들어서 도피처를  고민하다 생각이 났던 것 같다. 

당시의 상황은 새로운 팀장이 오자마자 오랜동안 만들어오던 일이 어느정도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시점에서 자신이 대리고 온 팀원에게 그 일을 넘기고, 잘하고 있던 일을 축소 또는 폐지를 시킴에 따라서 년초에 거의 90% 이상의 일을 잃게 되었다. 순간적으로 길들이기라는 말을 들을 정도 였지만, 그런 결정이 회사입장에서도 전혀 도움되지 않는 상황이다. 

아이러니하게 도보일주 이후 경영층 보고시에 나의 일을 축소했던 팀장의 일처리에 대해서 경영층의 지적으로 다시 원복이 되었지만, 그 순간 버티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들었던 상황이였다. 

그런 상황에서 제주도 일주를 한달간의 연습(한강에서 10km 걷고)을 하고 6박 7일 일정으로 제주도를 무작정 구글 지도 하나에 의존해서 걸었다. 

문득 2일차에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게스트주인과 같이 술을 마시다 2일간 생각나는게 아스팔트밖에 없단는 생각이 들어서 그 말을 주인에게 했을 때 아직도 또렷히 기억되는 그 말... 

'목적지를 정해서 그렇다.'

그랬다. 힘들다고 도보일주를 하면서도 일처리 하듯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것에만 몰두해 있었다. 걷다 시간되면 점심먹고, 걷고를 반복하다보니 문득 제주도에 왜 왔지라는 생각에 첫날에는 숙소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주인장의 그 한마디가 당시에 큰 울림이 있었다. 어쩌면 당시의 삶의 방향도 그때 그 한마디로 변화가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3일차에는 아에 내려 놓고 고개를 들고 주변을 보면서 걷기 시작했다. 미리 숙소 예약도 하지 않고 걷다 인근의 숙소를 가자라는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고 걷다보니 문득 하루에 많이 걸어야 40km인데 맘의 속도는 100km 이상을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하루 40km만 가면 되는데 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서두르기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삶에서 불필요한 속도전을 펼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도전을 펼치다보면 놓치는 것들이 많다. 100km의 속도로 달리는 차에서는 앞 이외 옆을 볼 수 없다. 그리고 너무 빨리 지나가서 지나는 길에 무엇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속 5km로 걷다보면 거의 하루의 모든 장소들이 머리속에 각인된다. 마치 영화처럼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각나는 장소가 있을 정도로 구석구석 놓치는 곳이 없을 정도로 시간이 지나도 기억이 난다. 

그렇게 4일째는 하루종일 내리는 비속을 우비하나에 의존하면서 쉬지 않고 점심도 먹지 않고 그저 묵묵히 비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아마 그때 마음속의 짐과 고민들이 어느 순간 사라졌던 것 깉다. 

머리속 많은 생각을 버리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비를 맞으며 걷다보니 문득 필요없는 것을 담아놓고 버리려고 너무나 아둥바둥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담지 않으면 되는데 굳이 담아놓고 그걸 버리지 못해서 힘들게 고민하며 살았던가. 

그렇게 6일째 여정을 성산일출봉에서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로 일출을 보러 성산일출봉에 올라갔다. 이미 발바닥은 물집과 굳은 살로 범벅이 되어서 걸을때마다 통증이 일어났지만, 묵묵히 정상에 올랐다. 

모두가 일출을 보기 위해서 동쪽을 볼때 우연히 반대편을 보았다. 한라산부터 서서히 빛이 내려오는 장면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쩌면 모두가 한방향을 보고 있을 때 가끔은 반대편을 보는 법을 왜 몰랐을까. 서서히 빛이 내려오는 모습은 개인적으로 일출보다 너무 아름다운  잊지 못할 광경이였다. 

그렇게 일출을 보고 원래 일정은 함덕해수욕장까지 였지만, 오히려 6일차에 가장 몸이 가벼웠다. 어쩌면 가장 힘든 발은 퉁퉁붓고, 물집과 굳은 살이 범벅되고 이미 지칠대로 지치고 허리도 아픈 상황이였지만, 마음만은 가장 홀가분했던 날이였다. 결국 성산일출봉에서 제주공항까지 평균 5.5km의 속도로 하루동안 55km를 걸었다. 

첫날 정말 힘들어서 울었던 그 상황에서 6일째 가벼운 몸은 어쩌면 몸이 아닌 마음의 무게에 눌려있던 것에서 해방된었던 것 같다. 일에 대해서도 새롭게 바라보고 가정에 대해서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무언가 나의 기준에 사람들을 판단하던 시기에서 이때를 기점으로 남을 이해하고 그 자체를 인정하는 단계로 변화가 되었다. 

이런 변화는 일에 대한 자세까지 바꾸어 놓아서 그 뒤로 지속적으로 새로운 일들을 맡아가며 일에 있어서도 다양한 의미있는 성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낸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와 사람들 속에서 산다. 그러다보면 가끔 나 자신을 잃게 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기준속에서 살게 되고 가정과 회사속에서 아바타처럼 살아가다 문득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빠진다. 

그래서 힘들어 하는 동료들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도록 권유한다. 인생은 자신이 주인공인 영화를 찍는 것이다. 누구의 삶을 대신 사는 것이 아닌 나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 속에서 나 자신을 잃게 되면 누군가의 도구, 누군가의 판단에 정의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제주도 도보에서 삶의 속도, 삶에 대한 자세, 마음의 무게, 일을 바라보는 관점 등이 변화되었다. 그저 혼자서 240km를 걷다보면 남들이 규정한 내가 아닌 오로지 나 자신만 남아 나 자신과 오롯이 대화할 수 있었다. 

자신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혹시 자신이 누구인지 혹은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면 오롯이 자신과 대화를 통해서 진정한 나와 대화를 해보자.

https://yjyc.tistory.com/338

 

[제주도보일주]- 6일차 : 마음의 무거움을 벗다

[도보여행의 기록을 마무리 하기 위해 5년이 지난 시점에 나머지 블로그 정리합니다][도보경로 : 성산일출봉 – 감녕해수욕장 – 함덕서우봉해변 - 삼양검은모래해변 – 제주공항] 아침 5시반에

yjy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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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의 성공방정식에 스타쉽이 추가되는 모양새다.

옵티머스도 빠른시간에 성장시키는 것도 놀라왔는데 스타쉽도 2차 테스트 이후 3차까지 빠르게 그리고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지구궤도를 성공적으로 비행할 정도로 기술의 발전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우주발사관련 이런속도로 개발이 된 사례가 전무하다는 점에서 테슬라를 필두로하는 일론머스크의 기업들의 기술력은 지구 최강이 아닐까 한다.

성공적인 비행을 축하하며...

https://youtu.be/tUu86-7H3mw?si=Pgl3bR-OQFVU4_V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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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 로봇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테슬라의 옵티머스에 이어 오픈AI사와 피규어사가 만든 로봇을 선보였다.

인공지능의 발달과 로봇기술의 발달로 이제 인간과 점점 비슷해지는 로봇의 시대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외에도 보스톤다이나미까지 나서며 일선 제조공정에 빠르면 하반기부터 인간을 보조 또는 대체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https://youtu.be/Sq1QZB5baNw?si=yb5NMfGguA4Nkln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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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잘한다는 것은 결국 Detail에 달려 있다.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잘되는 프로젝트와 유독 문제가 지속되는 프로젝트가 있다. 그 둘의 차이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일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Detail을 챙기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은 파트별로 영역을 구분해 놓는다. 그리고 그 영역별 업무를 관리하도록 하고, 그 중간지대를 공통이라는 영역으로 만들어 둔다. 이런 공통영역 이외의 Gray 영역에서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

업무적으로 정의를 하더라도 사안별로 아무것도 아닌 예를 들어 방화벽 해제와 같은 것들을 꼼꼼히 체크하는 것은 사실 업무적 정의보다는 능동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몇몇 사람에 의해서 해결되는 경우들이 많다.

Gray 영역이 어려운 이유는 모두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길 수 있음에도 모두들 누군가 처리할 것이라고 미루고 자신의 업무에 집중한다. 결국 이 Gary 영역은 오픈시점에 드러나게 되고 니탓내탓 하다보면 결국 중요한 품질과 납기를 놓치게 된다.

Gray 영역을 잘하느냐는 어디까지나 PMO의 역할이 중요하다. PMO가 업무를 잘 알고 있다면 중간에 나올 수 있는 다양한 Gray 영역들의 이슈들을 사전에 확인할 수 있다. 또는 각 영역 담당자들에게 Gray 영역이 발생하면 언제든 PMO에게 전달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두고 언제든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하여 누락없이 Gray 영역을 관리하도록 한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프로젝트가 Gray 영역을 방치한다. PMO의 역할도 사실상 일반적 관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아지고 PMO 조차도 자신의 업무적 영역을 확대하기보다는 최대한 각 파트로 전가시키면서 단순 관리 영역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Gray 영역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팀원이 있다면 그것만한 복이 없을 것이다. 지금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수시로 Gray 영역들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시키지 않아도 묵묵히 그런 Gray들을 체크하고 관리 가능한 영역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

이런 보배같은 존재는 모르는 것들은 물어가며, 각 영역별로 나누어진 환경속에서 Gray 영역들의 요소들을 찾아내고 처리가능한 방법들을 찾아낸다. 이런 노력들이 쌓이면서 우려스러운 Gray들을 지속적으로 해결해나가고 덩치가 큰 것들은 별도의 Issue공유를 통해서 이슈를 직접 해결 할 수 있는 사전 정보를 제공해 준다.

이렇게 말하면 어쩌면 정말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 투입된 인력이 대략 100명 내외에서 이런 사람은 한두명에 그친다는 점을 볼 때 실천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 생각된다.

PM인 나로써는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개별미팅을 통해서 개인들이 스스로 문제점을 인지하고 공유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유도하지만 능동적 일처리를 하도록 하는 것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런 속에서 능동적으로 일을 처리해 주는 맴버가 있다는 점에서 항상 감사해 한다. 기회가 될때마다 감사함을 항상 표현하면서 이들의 노력이 프로젝트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인정해주고, 다른 프로젝트 맴버들에게도 이 사실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면서 이들의 노력을 더욱 값진 것으로 만들어 준다.

일을 성공시키는 것은 어떤 대단한 것을 해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서비스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서 그 서비스 자체가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결국 숨겨진 Detail에 있다. Detail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 그속에 바로 일의 성공의 열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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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일은 없다. 결국 실패만 남는다.

일을 하면서 매번 느끼지만 전력을 하지 않는 일은 대부분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전력을 할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적당히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락으로 빠지는 일들을 자주 겪다보니 뭘 하더라도 시작을 했다면 대부분 전력을 다한다.

일을 할 때 "적당히 해도 되"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그 적당히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지만, 어디까지가 적당히인지도 사실 불분명하다. 그러다 보면 일에 전력을 쏟기 보다는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정도면 될까? 아니면 이정도면 될까? 그러다보면 일이 아닌 상황에 집중하게 되어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일들은 실패를 한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서도 강조하는 것이 바로 적당한 타협이다.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여 마치 해결된 것처럼 포장한다. 결국 당장은 발생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적당히 타협한 문제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고 문제의 늪속에 빠지게 된다.

적당히란 말은 일에 있어서 실패를 의미한다. 해결에 대한 의지보다는 순간을 회피하거나 한것처럼 하는 Washing에 가깝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하다가 적당히란 말이 나오면 가장 강력하게 대응한다. "제대로 할지 않을거면 하지말아야 한다!!!"라고....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적당히"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적당히라는 암흑의 존재들이 언제든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발목을 잡는다. 그러면서 그 암흑의 존재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월급쟁이 거기서 거기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에 열정인 사람들은 이런 암흑의 존재의 달콤한(?) 말을 외면하고 그들과 싸우면서 한발한발 나아간다. 그들에게 붙잡히는 순간 끝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래서 개인적으로 오늘도 "적당히"와 싸우는 멋진 분들에게 위로와 존경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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