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를 수행함에 있어서 "착한사람"이 제일 "나쁜사람"이다.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의외로 쓴소리를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아무 문제없는 프로젝트에서는 문제없이 끝나겠지만, 대부분의 프로젝트에서는 이런 쓴소리를 안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궁극적으로 모두가 불행해지는 일이 생긴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계획된데로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상치 못한 Issue와 새로운 Risk 등은 언제나 프로젝트 내 도사리고 있다. 또한 개인의 능력치에 따라서 크고 작은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사실 프로젝트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만드는 것보다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핸들링하느냐에 달려 있다. 어차피 일어날 문제이기에 "왜 일어났어"가 아니라 "발생했구나"로 생각하게 된다.
이런 문제는 대부분 예상 가능한 영역에 있다. 천재지변이나, 코로나와 같은 새로운 이슈들은 어차피 대응 불가능하지만, 이런 것들을 제외하고는 이미 조짐이 나타난다. 그 조짐이 나타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는게 좋을까.
착한 사람들에게서 이런 문제의 조짐이 나타나도 쓴소리를 하지 않고 좋게 좋게 일처리를 하고 싶어 한다. 당장의 일정을 지키지 못했지만, 웃는 모습으로 좋게 좋게 이야기 하고 그들이 스스로 문제점을 개선하기를 바란다.
사실 이렇게 되면 가장 이상적 모습이지만, 일정이 지연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사유가 내부적으로 생겼다는 것을 암시한다. 즉 그들을 믿어서는 어떻게든 해결은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믿음을 착한 사람들이 가지고 프로젝트에 임하는 순간에 초기에 처리할 수 있는 일조차 나중에는 더 걷잡을 수 없게 되고, 이런 상황에서 조차 쓴소리를 주저함에 따라서 일은 점점 더 복잡한 문제로 커지게 된다.
착한 사람들이 많은 프로젝트는 어디까지나 이상적 구조이다. 서로 믿고 신뢰하고, 서로의 열정을 불태우면서 일을 끝낼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그런 이상적 프로젝트 구조.... 하지만 이런 이상적인 구조는 창업초기 의기투합해서야 가능한 것이고 그것도 계약구조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구조이다.
우리가 프로젝트를 함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 상황은 바로 예정된 일정 내 끝내는 것이다. 좋게좋게 끌고가다 일정 내 끝내지 못하는 경우는 오히려 서로간의 불신과 고통만이 지속되는 가장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닥치지 않도록 중간중간 점검을 통해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착한 사람들은 과정에서 자신이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이미지에 관심을 갖다보면 결국 프로젝트 말미에서는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다시는 프로젝트를 같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쓴소리가 무조건적 비난을 의미하지 않는다. "원인과 결과 그리고 책임"이 부분을 명확히 해서 해결 가능한 방법을 찾는 과정이다. 그렇게 위해서는 왜 이런일이 생겼는지 명확히 파악이 되어야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언급이 되어야 비로소 발생된 문제를 단기간에 정리가 가능하게 된다.
간혹 쓴소리가 굳이 필요할지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도 있다. 그때마다 해주는 말은 "이 일에 대한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가"라고 말한다. 일에 책임을 지려는 사람에게서는 쓴소리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저 책임은 남의 일이라는 생각을 갖는 사람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좋게 보여지고 싶은 것에 머무르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 문제가 커지고 난 다음에 하는 말은 대부분 무책임한 모습에 직면한다.
일을 함에 있어서 일을 끝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이런 "착한사람"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월급쟁이 인생철학
- 착한사람이 정답은 아니다. 2024.03.15
- 일을 대하는 자세란.... 2024.03.14
- 월급쟁이 임원에게 철학은 사치다. 2024.03.13 2
- 포기하지 않는 용기란 2024.03.12
- 월급쟁이 생활 - 분노와 공감 2024.03.04
- 평가의 공정성과 팀웍 2023.12.29 1
- 문제를 바라보는 자세 2023.12.22
- 언어의 자유 - AI의 활용과 방향 2023.12.19
착한사람이 정답은 아니다.
일을 대하는 자세란....
일에 대한 자세에 대해서 최근에 많이 배우고 있는 분이 있다.
근무하는 층에 일하시는 청소담당자 분인데 이전 담당자 분과 다른 모습으로 청소업무를 하시는 모습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전 분들은 그저 주어진 청소구역에 대해서 청소 후 비품추가 정도가 끝이였다. 딱히 뭔가 차별점도 없었고, 일에 대한 의지나 열정 같은 것도 느끼지 못했던거 같다.
그런데 이분은 매사에 새로운 것들을 탐구하는 느낌이다. 불편한 것은 없는지, 혹시 어디 문제는 없는지 찾아다닌다.
특히 화장실 공간에서의 그분의 모습을 보면 꼼꼼히 화장실 각각의 문제점을 점검한다. 그리고 회사의 관리팀에 매번 연락을 한다. 오히려 관리팀 직원들이 그런 꼼꼼함에 귀찮아할 정도로 조그만것 조차 넘어가지 않는다.
최근에는 치약이 교체되었는데 사람들이 못 알아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별도로 스티커에 글씨를 써서 붙여 놓으셨다. 그런 것들이 화장실 곳곳에 있다. 단순히 청소의 영역이 아니라 사용하는 사용자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부분까지 고민을 하시는 듯 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왠지 많이 배우게 된다. 적극적인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도 흔치 않은 경우이다. 문제가 있어도 그냥 내가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니라면 굳이 나서지 않는 것이 요즘의 분위기라는 점에서 이분의 적극적 노력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해야만 의미있는 행동으로 보여질 수 있다. 하지만 일에 대한 자세는 조그만 것 하나하나에서 나타난다. 단순한 일이라도 그 일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서 그 결과물은 다르다.
그런 관점에서 이분의 청소업무에 대한 진심은 항상 나를 반성하게 한다. 어쩌면 매일 마주대하는 분이기에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 수 있는 일에 대한 롤모델로도 부족함이 없다.
월급쟁이 임원에게 철학은 사치다.
월급쟁이 임원에게 철학은 사치다.
창업시절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임원분들을 만나기도 하고 모시기도 하면서 항상 머리속에 드는 생각 중에 임원이 과연 철학을 가질 수 있을까 였다.
사실 몇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적어도 임원이라면 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면, 팀장을 해본 뒤부터는 임원에게 과연 철학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PI나 BM의 업무 특성 상 외부적 사례나 기업들의 벤치마킹 등을 하다보면 성장하거나 혁신적인 기업들의 특징속에서 보여지는 것들 중 가장 두드러진 것들은 바로 임원 특히 CEO의 임기라는 점이다.
한국의 CEO(창업주가 아닌)는 대부분 임기가 짧다.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5년 내외로 장기플랜으로 진행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단기실적 중심으로 접근하게 되고, 무언가 큰 틀에서 움직이기 보다는 잰걸음으로 눈에 보이는 실적중심으로 움직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원이 철학을 가지고 무언가 펼치기에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짧다. 반면 창업주가 CEO인 기업들을 보면 철학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추진하는 일관성과 목표의식이 명확하다. 설령 중간에 실패를 하더라도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하려고 했던 일을 꾸준히 나아간다.
현재 스페이스X가 있기까지 일론머스크가 아닌 월급쟁이 사장이 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수많은 실패와 자금의 압박속에서 버틸 수 있는 사장은 없을 것이며, 이사회의 경질목소리에 이렇다할 시도도 제대로 못해보고 짤리고 해당 사업은 사라졌을 것이다.
스페이스X의 개발자들이 1단 로켓의 회수를 위해서 수없이 실패하면서 결국 자금압박까지 몰렸던 일론머스크가 회의를 소집했을 때 모두들 이제 끝이라고 생각할 때 일론머스크의 "실패도 하나의 과정이니 다시 해보자"라는 말속에 지금의 꿈에서나 있을법한 1단 로켓 회수라는 새로운 기술에 더해 우주시대를 활짝 여는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임원의 철학이 없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 시각이였다면, 지금은 어느정도 임원들의 고충에 대해서 이해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철학이 무조건적으로 필요없다는 것보다는 어쩌면 월급쟁이 임원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월급쟁이 임원이 가지는 철학이 사치라는 점은 어쩌면 이사회 또는 최대주주의 눈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 워랜버핏이 인수한 회사의 사장을 선임하는 기준에서 Berkshire Hathaway의 가치철학에 부합하는 사람을 선임하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경영을 맡기는 것처럼 한다면 월급쟁이 임원도 철학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실적중심의 월급쟁이 경영층에게는 철학보다는 창업주나 이사회를 설득할 실질적인 실적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신임 경영층이 선임되면 우선적으로 이전 경영층이 추진했던 것들을 정리하고, 새롭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색깔의 변화를 주게 된다. 결국 회사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은 변경되는 경영층들로 인해서 매번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일의 지속성보다는 실적 중심의 단발성 업무의 늪에 빠지게 된다.
철학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것은 단기적 상황에는 어렵다. 철학이 스며드는 기간이 있고, 그것이 발현되어서 실질적 성과로 나타나는 기간이 필요하다. 특히나, 철학과 기업문화가 연계되는 상황이라면 그 기간은 더 소요될 수 있다.
이제는 조금 현실적으로 경영층의 결정에 대해서 과거보다는 덜 부정적 관점으로 이런 결정의 배경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는 점이다. 간혹 친한 임원분들과 대화하다보면 그분들 또한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입장에서 마냥 자신의 철학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종종 듣곤 한다.
그래서 지금은 일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현재의 회사 방향성, 경영층의 결정사항과 그 결정으로 인해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영향도를 파악하고 실질적인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려고 노력한다.
비난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경영층의 문제가 내가 해결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그 상황을 이해하고, 방향을 찾는 것이 오히려 좋다. 그런 관점에서 월급쟁이 임원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포기하지 않는 용기란
개인적으로 슬램덩크를 정말 오랜 동안 좋아한듯 하다.
그런데 지금 가장 많이 머리속에 남는 대사는 바로 이것...
"포기하는 순간 경기는 끝나는 겁니다"
예전에는 이 말을 단순히 단어 자체로 이해를 했다. 즉, "포기하면 끝이다..." "지금 포기하는 것은 경기를 계속 할 의미가 없다" 정도로 이해했다.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저 말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민과 자신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포기한다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 포기를 기정사실화 한 상태에서 포기의 이유를 찾는데 바쁘다.
반대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이겨내는 것은 정말 어렵다. 정말 어려워서 단 한걸음도 내딛기가 힘들만큼 절망적인 순간 직면한 상황에서 포기하고픈 유혹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다.
슬램덩크를 읽었던 분이라면 저 단어가 나온 상황이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포기한 상황,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상황에서 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그만한 절망의 고통을 전환할 수 있는 용기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전환할 수 있는 전략과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한 저 말에 힘이 실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고뇌와 같이 하는 선수들과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저 말뿐인 것이 아닌 "아... 이 분은 뭔가 이 상황을 돌파할 방법이 있는구나"라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간혹 우리는 무책임하게 툭툭 던지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면서 저 말을 종종 사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정작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깊은 고민이나, 동료들의 신뢰를 쌓지 않고 단순한 문장의 활용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이 저런 말을 한다고 한들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실 저말의 속에는 모든 경우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단순히 해보지도 않고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자고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고민하면서 아직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 등이 남았을 때 가능한 말이기도 하다.
개인의 노력 즉 다양한 Risk나 Issue에 대해서 전략을 세우고 발생되는 문제에 대한 대응방안을 수립하고 그 상황에 적용하면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 이런 노력에 더해서 동료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지속적인 공감과 대화가 중요하다. 그것을 통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고, 그 속에서 신뢰를 얻고 전략을 실행함에 있어서 동료들의 힘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
그래서 "포기하는 순간 경기는 끝나는 겁니다"라는 말을 한다는 것은 상황에 대한 대처와 동료들의 신뢰를 기반한다는 점에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나라면 과연 할 수 있을까!!! 단순히 나만의 생각이 되지 않기 위해서 어떤 부분을 더 노력해야 하며, 동료들의 신뢰를 어떻게 얻어야 할 것인지 매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고민되는 부분이다.
일을 하다보면 고비마다 프로젝트 팀원들의 동요가 발생한다. 그럴 때 마다 그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은 정말 힘든 과정이다. 부정적인 기운으로 가득 쌓인 공간에 있다보면 그들을 원망하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그들을 부정의 공간에서 긍정의 공간으로 지속적으로 이끌 방법을 찾고 그들의 신뢰를 기반으로 새로운 대안과 책임지는 자세를 통해서 어려움은 언제나 발생하지만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슬램덩크처럼 극적인 성공을 이루는 그 순간에 동료들과 같이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그 짜릿함은 정말 그 어떤 보상보다 더 큰 보상은 없을거라 생각된다.
월급쟁이 생활 - 분노와 공감
분노와 공감... 회사생활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우리는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속에서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불합리하다 판단하는 내용에 대해서 같이 분노한다.
어떤 사람은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자주 분노한다. 회사방향, 일하는 방식, 동료 등.... 어쩌면 우리 월급쟁이들이 항상 겪는 일상이다.
이런 동료의 주변 사람들은 마치 같이 분노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 사람의 분노에 동조하면서 문제점에 대해서 동의하고 같이 분노한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진짜 분노하는 것이 동료를 위하는 것일까? 같이 분노해주는 것이 정말 그 동료가 원하는 것일까, 어떤 것을 하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과거에도 비슷하게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같이 분노하고 비난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순간 과연 그것이 동료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동료들의 그런 말들 속에서 같이 분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그런 행동이 과연 동료가 원하는 것일까!!
분노와 비난은 한순간이지만, 진정한 위로는 어쩌면 공감이라는 점을 깨닫는데는 참 오랜 시간이 걸린듯 하다. 그저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오히려 동료들은 그 속에서 위안을 얻는듯 하다.
사실 그런 불만들은 스스로도 해결불가능 하다는 점을 대부분 안다. 경영층을 자신이 바꿀 수 없고, 일 안하는 동료를 짜를 수 없다. 말도 안되는 상황을 자신이 바꿀 수 없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불만을 주변에 한다. 같이 동조해서 분노하고 비난해도 그 동료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어느 순간 문득,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게 되었다. 그저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저 그들의 분노섞인 아니면 자조섞인 말을 묵묵히 들어준다.
그리고 그들의 말이 끝날 때까지 같이 있어준다. 비난도 분노도 하지 않지만, 묵묵히 들어주는 것만으로 동료의 긴장감과 스트레스가 누그러지는 것을 느낀다.
동료를 위하는 감정이 그들의 분노에 동참하기 보다는 그들 스스로 느끼는 좌절감, 절박함 속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것을 원하는지 모른다. 어차피 같이 분노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은 동료들도 알기 때문이다.
사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월급쟁이의 처한 현실속에서 동료의 존재감 특히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회사생활의 한줄기 빛과 같다.
쉬운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해볼만한 일이다. 어쩌면 지금 주변의 동료들은 그런 사람들이 필요할지 모른다. 각박해지는 현실속에서 무언가 의미있는 삶이라면 회사속에서 누군가에게 든든한 아니 조그만 위안을 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조금은 의미있는 회사생활이 되지 않을까 한다.
평가의 공정성과 팀웍
평가에 대한 공정성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A : 평가는 성과 중심으로 하고, 최고/최저의 편차를 확대한다
B : 성과가 있더라도 팀원을 고려하여 최고/최저 편차를 축소한다.
아마도 팀장경험이 있는 경우 위 두가지 경우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특히 20명 이하 내외의 팀을 운영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A의 경우는 말 그대로 성과주의로 고성과자 중심의 구조로 성과가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개념으로 적용한다. 이런 구조하에서는 고성과자와 저성과자가 명확하게 구분되고, 그에 따라서 저성과자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과정에 들어간다.
반면 B의 경우는 고성과자와 저성과자의 차이를 크게 두지 않는 경우이다. 대부분 리더들이 평가할 때 선호하는 방법으로 예를 들어 업무평가는 높게주면 역량평가는 낮게주는 구조이다. 대신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업무를 낮게, 역략은 높게 이런 구조를 적용한다. 그리고 고성과자에게 주는 점수도 제한적으로 준다. 10점 만점의 척도에 9점의 성과를 달성해도, 팀원을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7점을 주고, 1점의 성과임에도 3점을 준다.
한국의 조직구조의 평가체계에서는 B와 비슷한 평가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문제는 이런 B의 구조는 구조적으로 고성과자의 의욕을 감소시키는 문제를 넘어서 저성과자를 양산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이다.
굳이 열심히 해도 저성과자와 고성과자의 차이가 적은 상황에서 굳이 노력할 이유가 없다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되고 결국 고성과자조차 저성과자의 부류속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들어간다 한들 보상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회사 전체적인 성장동력은 감소하고 성과로 승부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치적 성향이 강해지는 조직 사일로가 심화된다.
상식적으로 A의 상황이 맞다고 하는 사람 조차도 정작 리더나 팀장이 되는 순간 B로 넘어가는 이유는 팀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비난과 반발을 최소화하는 전략으로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회사의 평가체계의 핵심은 바로 이 A와 B를 어떻게 운영하는 것과, 회사의 성장을 위해서는 B로 인한 폐단을 막을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A와 B의 선택의 차이는 결국 보상과 직결되어 있지만, 단순히 물질적 보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평가의 공정성과 연관이 되어 있고, A를 구조적으로 권장하여 기업의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평가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최근 한 해외 기업과 업무를 함에 있어서 그곳에서는 고성과자에 대해서 보상도 명확하지만, 우수사원이라는 점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만들어 둔 곳이 있다. 이 곳은 우수사원으로 된 경우에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사원증 또는 다른 부분으로 우수사원임을 알 수 있도록 한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적용을 하게 되면 구성원간의 갈라치기라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사실 우수사원이라고 대외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이 일을 잘한다는 개념을 넘어서 타인에 대한 우수사원 당사자의 책임의식도 같이 부여된다.
즉 우수사원인데 업무적 역량이 부족하다거나, 업무의 태도 등이 불량하게 될 경우에는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관리를 하게 되고 더 노력하게 되는 선순환을 만든다. 결국 이런 우수사원의 행동은 사람들의 신뢰를 얻게 되고 질시의 대상이 아닌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평가가 어렵다고 하지만, 사실 성과에 보상이 따르는 구조를 투명하고 모두다 신뢰할 수 있는 구조 즉 문화적 환경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렸다.
문제를 바라보는 자세
일을 하다보면 가끔 문제를 문제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 문제를 지적하며 이런 저런 이슈와 리스크들을 언급한다. 그런데 그런 언급속에는 그냥 그 사람들 머리속에는 문제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문제는 많은데 해결되지 않는 문제만 증가하게 된다.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다양한 Issue와 Risk를 접하게 된다. 아무리 잘 아는 영역이라도 생기지만, 처음해보거나 새로운 도전을 할 경우 이런 상황은 더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이것을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을 맡기게 될 경우에는 정말 귀에 피가날 정도로 문제에 대한 다양한 안되는 이유들을 듣게 된다. 하지만 정작 해결을 위한 고민은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건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가 있으니 접자!!. 하지말자!!! 이런 말들이 마지막에 따라온다. 즉 문제는 해결하는 것이 아닌 회피대상으로 인식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무언가 할 때 문제가 절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방치되며 일이 진행되기 보다는 정체되거나 지연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반대로 문제를 하나의 해결해야 할 숙제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는 프로젝트 시작부터 "문제는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지 고민을 한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면 우선적으로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방법을 찾는다.
새로운 것을 하던, 기존 것을 하던,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 자체를 피하지 않고 해결방안에 최적화 되어 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있는 경우 프로젝트의 이슈들은 단기간에 빠르게 처리되고 방치되는 문제들이 줄어들며 전반적인 Risk는 줄어들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후자의 영역을 원하지만, 정작 프로젝트를 하면 전자의 영역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전자의 영역에 많은 이유는 개인의 경험, 경력 등에 비추어 문제를 파악하다보니 해결가능한 방법보다는 불가능한 영역으로 인지하는 일들이 많은 이유이다.
새로운 영역이라면 접근과 방법도 새로워야 하지만, 기존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험에 의존하다보니 과거에 문제가 된 것들이 미래에도 동일한 영향을 줄거라는 확신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런 전자의 영역을 후자의 영역으로 전환하는 것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 즉 문제는 일어날거고, 그걸 우리는 해결하며 나가면 된다. 단,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의 부담없이 언제든 말해주면 책임지지 않게 하겠다는 메세지를 항상 강조한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하나만 바꾸더라도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진다. 문제는 문제가 아닌 해결을 통한 성공을 위한 과정의 일부다.
언어의 자유 - AI의 활용과 방향
인간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인 바로 언어의 차이...
바벨탑 이후 인간에게 온갖 언어로 쪼개지면서 지금의 세상이 되었다는 성경의 내용을 뒤로하고라도 각국의 언어의 장벽을 허무는 것에 많은 관심이 오랜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래서 과거에는 이런 역관들의 지위는 낮았지만, 권력과 결탁되거나 이권을 확보하는 등의 경제적 영역까지 확대되는 특권(?)을 누렸다.
그런 영역을 지속적으로 노크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미 구글폰에서는 이런 통역기능을 활용하기도 했지만, 삼성전자의 휴대폰에서 이 기능을 제공한다는 점은 여러 의미가 있다.
그것이 성공의 영역이 아니라도 일단 일정한 수준을 제시할 수 있다면, 새로운 변화의 또 다른 씨앗이 될 것이다. 점점 더 빨라지는 세계화의 속도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순간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는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개인적으로 해외 개발업체와 협력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영역의 시도와 그에 따른 기회가 점점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너무 큰 기대일지 모르지만, 지금의 국가별 다양한 문제들이 언어의 장벽이 허물어지게 될 때 보다 빠르게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과 특히 국가별로 인구불균형으로 발생되는 문제들의 새로운 해결책으로 제시될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았다.
https://v.daum.net/v/20231112191500042
“영어가 막 튀어나와”…세상 바꿀 괴물폰 나오자 제2의 엔비디아 된 이 기업 [위클리반도체]
[오찬종 기자의 위클리반도체-77번째 이야기] 게임이나 SF영화에서 미래 사회를 다룰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 있죠. 전세계 사람들이(혹은 외계인까지도) 각자의 언어로 말하지만 하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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