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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평가를 가장 한 저성과자들의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동료평가는 팀장에 치우친 평가를 완화시키고, 동료들의 평가를 통해서 평가의 공정성을 가지기 위한 방법으로 많은 기업들이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동료평가의 본질 자체가 왜곡되는 일들이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인기투표라는 오명으로 여러 방지장치를 만들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저성과자들의 고성과자를 겨냥한 평가테러가 증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프로젝트 단위로 관리될 경우 동료평가도 프로젝트 단위로 동료평가를 시행하지만, 국내는 이와 별개로 팀단위로 동료평가를 시행함에 따라서 고성과자와 자신의 성과과 연계되지 않는 곳들은 객관적 업무역량 보다는 자신과의 관계에 의존한 평가를 하게 된다.

이런 경우 고성과자들의 업무스타일에 따라서 평가 결과가 정해진다. 즉, 그 사람의 업무적 역량은 관심없고, 단지 나에게 친철하느냐, 나에게 우호적이냐에 집중하게 된다. 사실 그 사람이 뭘 하는지 디테일하게 모르기 때문에 그저 자신과의 관계에 영향이 있는지만 관심을 갖게 된다.

어디까지나 업무적 역량이 배제되고 단순한 인간관계 중심의 동료평가로 인해서 고성과자에게는 업무 이외의 팀 내 인간관계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고성과자들은 업무중심적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업무에 집중하다보면 관계적 상황은 상대적으로 소원해 질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이런 저성과자들의 표적이 된다. 성과는 있지만, 관계가 부족하다는 식으로 공격의 대상이 된다. 결국 자신들의 성과보다 이런 관계로 인해서 평가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달성한 업적보다는 낮은 평가에 노출된다.

동료평가가 제도적으로 안착되기 위해서는 가중치 부여가 중요하다. 평가 대상자와 평가자의 업무적 연관성을 기반으로 어느정도 밀접한 업무적 연관성이 있는가, 그리고 평가자의 성과가 어떻게 되는가 예를 들어 저성과자인지 고성과자인지에 따라서 평가자의 가중치를 조정하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기업의 인재상과 기업의 성과 그리고 평가의 목적이 구분되어야 한다. 관계만 강조하는 경우 성과보다는 이런 관계적 노력에 집중하는 정치적 일들이 증가하고 그에 따라서 조직간 사일로도 증가하게 된다. 결국 기업의 궁극적 성장의 동력은 관계속에 파뭍혀 버린다.

인성의 문제와 업무적 스타일을 구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중요한 사람, 특히 회사를 성장시켜줄 사람을 잃을 수 있다. 평가가 단순히 물질적 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1년간의 노력에 대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단순히 관계적 저평가들의 테러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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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언제나 위험하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변화의 끝은 언제나 희망으로 가득차 있다.

만약 변화의 끝이 어둠이라면, 인류는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변화의 핵심은 인류가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변화를 하기위한 노력에는 끊임없이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속에서 우리는 변화를 리딩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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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의 한자를 잘 보면 말을 듣는 자세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기울어질 경(傾)은 상대방의 말을 듣기위해서 그 상대방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는 의미다. 이것은 듣는 자세 즉 상대방에 말을 적극적으로 듣고 있다는 것이다. 말 하는 사람을 향해서 몸을 기울일정도로 적극적인 자세를 뜻한다

​​들을 청(聽)은 한자에서도 나타나듯이 귀와 눈과 온 마음을 다해서 듣는 것이다. 그냥 건성으로 듣는 것이 아닌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은 상대방을 보며 마음으로 그 말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간혹 질문에 다른 답을 하거나 대화 내용과 동떨어진 말을 하는 것은 남의 말을 집중해서 오롯이 듣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머리속에 꽉차 있어서 말 자체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경청은 상대방의 말만은 의미하지 않는다. 몸짓, 행도, 시선, 표정 등 비언어적 상황에 대해서도 경청이 필요하다.

보고하다보면 말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표정이나 행동들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비언어적 행동은 포착하는 사람은 보고를 중단하고 상대방에게 질문의 기회를 준다. 말을 망설이던 사람은 자신의 말을 하게되고 그것을 경청함으로써 보고의 수준이 높아진다.

이처럼 경청을 잘 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잘 듣는것이 아닌 상대방의 모든것에 집중하여 어떤 것을 전달하고 싶어 하는지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듣고난 뒤 내가 얼마나 당신의 말을 잘 이해하고 공감했는지 표현하면 상대는 자신의 말이 잘 전달 되었다는 생각에 만족하게 된다.

내 생각을 먼저 말하기 보다 상대방의 말을 먼저 듣고 공감한 뒤 말하면 그 효과는 배가 된다. 설득 하지 말고 공감하고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말에 상대방도 경청하게 된다.

http://www.bizhankook.com/bk/article/25234

 

'언금술사' 이금희의 귀로 말하는 지혜

'경청'으로 말 전달할 통로 열어야…듣는 사람이 신뢰를 얻고 마음을 연다

www.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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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월급쟁이들에게 있어서 두가지 딜레마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동료와 경쟁자...

사실 대부분이 동료보다는 경쟁자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월급쟁이라는 숙명이 같이 일하는 동료의 관계가 아닌 경쟁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다보니 기업 내에서도 학벌, 지역, 성별 등의 다양한 요인들로 다양한 장벽들을 만들어 서로를 밀어낸다.

이렇게 나타나는 가장 흔한 것들이 바로 조직간 사일로다. 기업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속한 조직을 위해서 일을 한다. 공유와 협업은 그들에게 남의 이야기이고 조직을 위해서라면 공유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최소화 하고, 협업 보다는 단독처리를 통한 성과독점을 하려한다.

이런 환경속에서 우리는 동료라는 개념을 잃게 된다.

사실 동료라는 개념은 기업에게 정말 중요한 사항이다. 동료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어떠한 공유와 협업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유와 협업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기업에는 조직별 성과는 좋게 나타나지만 정작 기업은 성장하지 못하는 비정상적 성과구조에 빠지게 된다.

비정상적 성과구조란 무엇인가. 분명 조직단위로 보면 성과가 전년대비 있으나, 회사적 성장은 정체내지는 퇴보하는 상황을 말한다. 아마도 성장이 정체된 기업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경영자 입장에서는 딜레마에 빠진다. 분명 성과가 났다는데 기업은 성장을 하지 못하는 시간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업의 성과구조에 있어서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조직의 성장이 기업의 성장이라는 착각이 대표적이다. 조직의 성장이 반드시 기업의 성장을 담보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직의 성장이 기업의 성장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다. 마치 회사를 위하는냥 성과를 올리지만 그 이면에는 단기성과의 구조적 문제를 이용하는 조직들이 대표적이다. 단기성과는 좋을지 모르지만, 중장기 성과에는 악영향을 끼치는 의사결정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렇게 경쟁속에 잃어버린 동료의식은 결국 직원들간의 경계선만 더 명확하게 만들어버리는 문제를 야기한다. 그런 상황에서 구조적 원인 제거를 하지 못하고 공유와 협업을 외치는 것은 공염불에 불가하다.

기업의 성장은 직원간 경쟁보다는 동료의식의 확보에 기인한다. 기업은 외부의 기업들과 끊임없이 경쟁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경쟁을 기업 내부로 적용하게 될 경우 정작 외부의 적과 싸우지도 못하고 내부의 경쟁에 휘말려서 실질적인 성장을 이끌지 못한다.

동료라는 개념은 성장하는 기업에 있어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이다. 다른 직원의 성과에 박수를 보내주고, 서로 필요한 것들을 나누고, 같이 고민하는 환경이 만들어 진다. 기업 내 다양한 아이디어는 조직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사람과 공유되며 공고히 발전하게 된다.

동료라는 개념은 공격의 대상이 아닌 같이 함께 걸어나갈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서로간의 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업 중심의 사고로 뭉치게 된다. 이런 환경을 가진 기업에는 이직률도 낮다.

기업의 경쟁환경이 강화되면 될 수록 이직은 증가한다. 경쟁에 지친 인력들은 동료가 있는 기업으로 이직한다. 반면 그 빈 자리를 경쟁에 최적화된 인력들이 배치된다. 이 인력들은 동료의식은 없고 개인의 성과, 조직의 성과에만 골몰하고 결국 3~4년 뒤 다시 다른 곳으로 이직을 반복한다. 이런 인력들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인력유지를 위한 비용이 증가하고 수익성은 낮아지는 늪에 빠지게 된다.

동료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발적 협력을 의미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같은 동료이기에 그들의 어려움에 같이 고민하고 같이 기뻐하고 아픔을 나누는 것이 바로 동료이다. 그런 환경에서 일하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복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이 성장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모두의 공통과제다. 하지만 그 성장의 기본 토양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에 관심을 성장의 중요성만큼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할 고민의 핵심은 바로 이런 동료의식에 기반한 기업문화이다.

그래서 기업이 성장하는 것은 동료의식이 얼마나 잘 뿌리 내렸는가에 달려있다. 이것은 특정 인력 또는 조직의 성과의 한계를 넘어서 집단지성의 힘을 끌어올릴 수 있는 구조이기도 하고, 구성원 서로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기업의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재미난 점은 동료의식이 자리잡힌 기업 내에서는 성과무임승차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동료를 의식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개인적 기준이 높아지게 된다. 결국 개인 스스로의 노력을 더 높이려는 행동들이 증가하게 된다.

경쟁을 강조하는 기업에게 있어서 이해가 어려울 수 있지만, 기업 내 구성원간의 경쟁은 업무적 피로도만을 높이고 정작 중요한 기업의 성장은 놓치게 된다. 동료의식은 업무환경 내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업무에 보다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경쟁환경은 업무 외적인 상황 즉 기업 내 정치적 상황 등의 비 업무적 요소에 에너지를 빼앗긴다.

이제는 경쟁자를 키우지 말고 동료를 만들어라. 그리고 경쟁자가 아닌 동료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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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 리차드


성공에는 속도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창업시절 정말 뭐든 하면 다 될것만 같았던 기억이 있다. 남들이 이거는 생각못했겠지, 이거는 무조건 성공한다 이런 아이템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리고 그 시절 정말 참신한 아이디어들도 많았다. 그런 아이템들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이 많다.

그 이유는 바로 타이밍... 아무리 좋은 기술도 그 시대와 때가 아닌 상황에 나오면 결국 사라진다. 인공지능이 그렇고, 자율주행이 그렇고 지금 가장 핫한 전기차도 그랬다. 전기차가 사실 내연기관보다 먼저 나왔지만, 내연기관의 등장에 사라졌던 아이템이였는데 다시금 인기를 끄는 것에는 단순히 기술의 발전을 넘어서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 타이밍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내심에 기인한다. 조바심을 내서는 성공에 다가설 수 없다. 당장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가 세상 최고의 아이디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니 어쩌면 세상 최고의 아이디어일 수 있지만, 과연 그 아이디어를 세상이 받아 줄 수 있을지는 다른 문제이다.

인내심은 어디까지나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하다. 좋은 아이디어가 항상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보다 빠를 경우 성공이 아닌 실패만을 맛본다.

그런 의미에서 2021년에 개봉했던 '킹 리차드'의 영화를 통해서 어쩌면 인내심과 타이밍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영화는 테니스 스타인 '비너스 윌리암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녀의 대뷔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다. 스포가 될 수 있어서 간략하게 정리하면 그녀의 대뷔는 그녀의 실력만큼 빠르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조급함에 빠르게 세상에 나가기 보다는 테니스 이외의 실력을 키우면서 기본적인 소양을 키우는 영역에 집중하면서 기다림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실력이 있다는 생각에 빠르게 세상에 뛰쳐나가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하지만 그 실력이 결국 어디까지 가능한 실력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강태공이 실력이 없어서 70대까지 강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을 알아줄 사람을 기다린 것처럼 우리의 아이디어는 세상에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세상에 빨리 나온 경우보다 적당히 영글었을 때 나온 기업들이 큰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선도적인 이미지로 착각하지만 사실은 진짜 선도적으로 나온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성공한 경우는 많지 않다.

성공을 위해서는 아이디어만으로 부족하다. 자본, 인력, 시장 등 아이디어에 우호적 환경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것들을 지켜보며 아이디어를 시장에 내놓을 타이밍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인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인내를 통해서 새로운 기회를 엿볼 수 있고, 아이디어를 고도화 할 수 있고, 새로운 파트너를 만들 수 있다.

성공하고 싶다면 인내하라. 그리고 그 인내의 끝의 기준을 삼고 그 기준에 부합될 때까지 역량을 쌓아라. 돈이든, 사람이든 기다림을 통해서 원하는 것을 얻고 그것을 통해서 진정한 성공의 아이디어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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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도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흔히들 성공을 위해서는 속도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기회를 잡았을 때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정말 속도가 중요할까!!

매일 새로운 기업들이 생기고 사라진다. 그 기업들 중 장래가 총망되는 곳도 있었지만, 어느 고비를 버티지 못하고 사라진 기업들도 많다. 그 속에는 단순히 기업의 BM의 문제가 있어서 사라진 곳도 있지만, 속도 조절에 실패한 곳들도 있다.

기업의 성장은 속도와 관련이 있다. 초반에는 정말 빛과 같은 속도로 성장한다. 그러다 갑자기 브레이크에 걸리는 일이 생긴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 브레이크 자체를 예상을 못한다. 그저 走馬加鞭(주마가편)을 신조로 속도를 더 높이는데 집중한다.

그런데 기업이 속도를 올리면 그 기업의 내면은 반대로 역행한다. 대부분 창업초기에는 속도에 기민하다. 마치 어떤 일도 다 처리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더 빠르게 확대하는 것에 몰두하고 더 많은 투자금을 확보해서 사업의 확장에 올인한다.

더 빠르게 더 빠르게 속도를 높이다 보면 문득 조용해지는 순간이 온다. 마치 모든게 잘 될것만같은 순간이 오면 모든 것이 술술 풀리는 것같은 착각에 빠진다.빠진다.더욱 더 빨라지는 순간 주변 사람들의 말들은 점점 들리지 않고 시야는 좁아지게 된다.

대부분 이 시야가 좁아지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더 속도를 내지만, 일부 기업들은 잠시 속도를 늦추고 현재의 상태를 점검한다. 이때 기업의 흥망이 갈린다. 속도를 늦춘 기업은 잠시 성장의 속도가 늦어질지 몰라도 기업의 존망의 기로를 이겨낼 에너지를 채울 수 있다. 반면 속도를 늦추지 못한 기업들은 그 속도에 빨려들어가 성장 엔진이 멈추어 버린다.

대부분 기업들은 성장을 한다. 성장속에 내홍이 반복된다. 창업자간의 이견, 투자자간의 이견, 직원간의 이견 등 다양한 이슈들이 매번 반복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내홍보다는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내홍쯤은 성장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들은 내홍을 해결하기 위해서 성장을 잠시 늦추거나 멈추려하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 그 내홍이 기업의 성장 자체를 좀먹거나 아에 삼켜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사실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의 경우 이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온다. 속도에 의존하는 기업들의 숙명이지만, 잠시 멈추고 돌이킬 수 있다면 좋지만 그 잠시조차 아깝다는 기업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문제들은 점점 커져서 나타나게 된다.

우리가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성공이다. 그냥 반짝 빛나고 말 성공이라면 뭐 상관없이만, 기업의 존속의 의미는 중요하다. 존속을 위해서는 단지 속도만을 의지해서는 이룰 수 없다. 가끔은 속도에 의존하기 보다는 잠시 성장에 대한 결과를 되돌아 보는 시간이 중요하다.

기업의 성장은 어디까지나 수많은 행운의 연속이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안되는 것들이 많다. 그런 가운데 속도만을 높이다보면 그런 행운과 인연의 연속된 과정이 생략되고 오롯이 관성의 힘으로 나가다보면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기업의 성장은 반대급부의 Issue에 직면한다. 단순한 성공에 목말라 속도에만 의지하기 보다는 성공에 단꿈에 빠지지 않도록 특정한 신호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일 예로 일을 하다보면 유독 잘 플리는 때가 있다. 특히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문득 마치 조용한 호수가를 지나는 배처럼 아무런 소리도 없이 잔잔히 앞으로만 나가는 듯 모든 것이 잘 풀리는 순간이 종종 있다. 그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기업에 있어서도 마치 모든 것이 잘 되는 것 같은 순간이 온다. 그 순간에 오히려 속도를 높이기 보다는 잠시 점검을 위해서 속도를 늦추는게 중요하다.

누구나 빠르게 성공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속도가 중요한 것들을 놓치며 오히려 성공의 길에서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 성공을 하고 싶다면 속도를 줄이고 잠시 성공의 결과물을 점검하라. 그리고 혹시 성공 이면에 놓친 것들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뒤 속도를 올려도 늦지 않다. 아니 오히려 지속가능한 성공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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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들 언쟁 중에 가장 흔히 하는 말이 이말이다.
"기본이 되어야지", "이런건 기본 아닌가요", "기본도 못하면서..."

그런데 사실 기본이란 말은 주관적인 단어다. 사회통념상 도덕적 개념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명확히 어떤 것이 당연시 인식되어야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의 궤적에 기인하기 때문에 기본이란 단어가 개별적으로 다르다.

특히 IT관련 업무를 하다보면 무수히 많은 단어와 축약어의 홍수속에서 단어가 의미하는 뜻을 찾는 것 자체도 하나의 일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이 안되어 있다는 말을 하게 되면 정작 그 기본이 뭘 의미하는지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흔히 일어나는 문제 중에 논의했다고 했는데 나중에 서로 다르게 말하거나 다르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서로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였지만 그 뜻을 다르게 이해해서 발생하는 것들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 똑같은 말을 한다.
"그건 기본이지.. 이렇게 의미하는거지... "라고...

기본에 대해서 업무를 함에 있어서 정의는 중요하다. 법적인 제약 예를 들어 사기, 횡령, 회계부정, 폭력 등과 같이 법적인 정의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Rule를 정하는게 중요하다.

프로젝트 내 근무에 대한 것, 의사소통, 출퇴근, 사용하는 단어 등을 사전에 정의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서로간에 합의를 통해서 프로젝트의 기본을 만들어야 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의외로 많다. 어떤 사람은 출퇴근에 제약없이 성과만 올린다고 생각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출퇴근을 지키는 것 자체를 중시하기도 한다. 의사소통의 경우도 어떤 사람은 메일을 선호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Teams와 같은 기록형 Tool을 선호하기도 한다.

100명이 모이면 100개의 가치관이 존재한다. 그 안에 100개의 기준이 수립되어 있고, 100개의 상이한 기본들이 난립하게 된다. 그래서 그 100개를 모두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적 특성과 업무에 투입된 구성원의 의견을 바탕으로 프로젝트 기본을 만들고 그것을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

성공적인 프로젝트 대부분이 이런 작업을 선행하여 문제를 최소화 한다. 반면 이슈되는 프로젝트는 이런 작업들을 간과하거나 무시하여 진행되면 될수록 불필요한 이슈속에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기본이란 말 자체의 무게를 알아야 한다. 단순히 내 기준에서 "저 사람 왜 저럴까. 기본도 안되어 있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상대방의 다양성은 무시되고 획일적인 상황으로 변질되면서 긴장과 갈등이 지속되는 환경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이해하려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기본"을 잘 만들어서 그 안에서의 이해관계자들 간의 오해와 불필요한 감정적 대립으로 인한 소모적 논쟁을 최소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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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없이는 성장이 없다.

바둑에는 복기라는 것이 있다. 바둑을 다 두고 난 다음에 처음부터 다시 두면서 스스로 어떤 부분을 잘했고 어떤 부분을 못했는지 다시금 생각하는 것이다. 복기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에 많은 차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스스로 통렬한 반성을 하는 것과 같다. 하나하나 다시 두면서 왜 내가 이렇게 두었고, 이 부분에서는 내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반성을 하며 자신의 실력을 키우게 된다.

이렇듯 반성을 한다는 것은 개인에게 의미가 있다.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통해서 개인의 성장을 이끌 수 있다.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하는 행동 중에 통렬한 반성보다는 엄청난 변명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 이런 프로젝트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변명으로 일관하다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

우리가 반성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개인이나 사회적으로나 한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변명을 하다보면 한도 끝도 없이 계속 변명을 해야 한다. 그래서 업무를 할 때 반드시 잘못된 행동 또는 문제에 대해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반성을 하는 것은 어렵다. 자신의 실수가 되었든 잘못된 판단이 되었든 어디까지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지만 처음이 어렵지 이후에는 반성자체가 어렵지 않다.

일부에서는 반성하는 것 자체를 인민재판처럼 생각하기도 하는데 반성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지적하여 그 사람의 자존감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 사람을 성장시키는 목적으로 반성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기획안을 만들어서 논의 하던 중 잘못된 정보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거나, 잘못된 판단으로 의사결정을 내렸다면 그것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문제는 오롯이 그 원인을 제공한 상황에 대해서 왜 그렇게 판단하였는가를 되돌아보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누구나 순간의 잘못이나 실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반성을 하는 것은 누구나 하지 않는다. 반성을 하는 사람은 그 반성을 기반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반면 변명을 하는 사람은 동일한 실수와 문제를 반복하게 된다.

반성을 하는 사람은 신뢰를 보상으로 받게 된다. 그래서 이후 다른 일을 하더라도 설령 잘못을 하더라도 다시금 바로 잡을 수 있지만, 변명을 하는 사람은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서 정상적인 일처리까지 의심을 받게 된다.

반성이라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에 더 값진 일이 아닐까. 오늘도 문득 하루의 일을 돌이켜보며 잘못된 일이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일들에 대해서 반성하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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