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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기생충들을 경계하라. 

일을 잘 하는 사람들 주변에는 의외로 아이디어 기생충들이 많습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자신이 편승하거나 몰래 자신의 아이디어인양 포장해서 활용하는 등의 기생충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아낌없이 노출하는 유능한 직원은 그들에게 최고의 먹이감입니다. 그래서 고민사항을 슬쩍 던지면서 그들의 의견을 듣고 그 의견을 재포장해서 자신의 아이디어로 제시합니다. 

최근에 어떤 지인도 회의 중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언급했을 때 아이디어 기생충이 나서면서 마치 이미 자기가 하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이미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정말 그렇게 되고 있다고 믿었지만, 이후에 알게된 사실은 그 회의가 처음 나온 의견이였고, 그 의견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거짓으로 마치 진행되는 것처럼 말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이디어 기생충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시키면서 마치 뭐든 다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정작 일은 다른 사람이 다 하고 그것을 재포장하는 이른바 원산지를 속이는 '박스갈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 기생충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재포장을 넘어서 아이디어를 사장시킨다는 점입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누군가 제시를 했고, 그것을 자기것인양 포장해서 오픈했지만, 정작 그것을 실행시킬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능력없이 오픈한 아이디어의 추진동력은 상실되고, 아이디어가 실행가능한 수준으로 전환은 실패하고, 아이디어는 사장되어 버립니다. 

사실 아이디어는 초기의 컨셉이고, 그 아이디어를 고민한 사람만이 그 컨셉을 구체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아이디어라 생각 할 수 있지만, 그 아이디어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한 고민이 내포되어 있고, 그와 관련된 역량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량도 없고 고민도 없는 아이디어 기생충들로 인해서 의외로 많은 아이디어들이 사장되고 있습니다. 잘못 접근한 아이디어의 실패가 다시는 아이디어를 언급조차 못하게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결국 다른 회사에서 그 아이디어로 성공하는 일을 지켜보기만 해야합니다. 

이런 아이디어 기생충의 박멸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자신들이 한일만 적시하게 하면 됩니다. 이런저런 포장의 말들을 듣고 판단하기 보다는 그 포장속에 정말 뭐가 있는지 들여다보고, 그 사람의 생각과 실행가능한 역량이 있는지 점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차단이 됩니다. 

문제는 이런 아이디어 기생충 들 중 리더들도 의외로 많다는 점입니다. 이런 리더들 밑에 있는 팀원들은 잘 다음어지지 않은 아이디어의 오픈으로 일은 일대로 성과는 성과대로 무엇하나 얻는게 없게 됩니다. 

그래서 팀원에 기생하는 리더는 빠르게 제거해야 합니다. 팀원들의 열정도 회사의 성과도 역행시키는 위험요소이기 때문에 리더급 아이디어 기생충의 제거는 회사의 사활과도 직결됩니다. 이유는 잘못하면 그 리더가 임원급으로 커질 수 있기 때문이고, 그럴 경우 더 큰 문제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디어 기생출들은 사람들의 일에 대한 열정을 고갈시킵니다. 고민하던 것들을 기생충들이 가로채거나 옆에서 기생하면서 정작 일이 진행되지 않고 방해되거나, 또 다른 문제를 양산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에 대한 의욕을 떨어트리고, 열정을 가신 구성원의 조기 번아웃을 유도시킵니다.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이런 기생충은 전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기 방치가 다른 구성원들로 확산될 경우 일하지 않고 기생하는 인력들의 증가로 인해서 회사의 성장동력을 점점 상실하게 됩니다. 

혁신의 최대 방해물은 어쩌면 이런 아이디어 기생충이라는 점에서 언제나 경계하는 것은 필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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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의 열정은 동료를 피곤하게 만든다!

일을 잘하는 것은 다들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과를 내는 것도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열정적인 동료와 같이 일하는 것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의 반감이 높아지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 합니다.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것은 다양한 업무를 폭넓게 추진하는 것과도 연결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일을 찾고, 그 일을 만들어내어 추진하면서 지속적인 업무수행의 연속적 상황을 맞이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열정을 가진 동료와 일을 같이 하는 것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지만, 지속적인 열정으로 동료들은 피로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피로감은 일로 인한 피로감 보다는 성과에 보상이 비례하지 않는상황에서 나타나는 피로감입니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일을 하다보면 성과를 내기는 하지만 기대했던 보상과의 괴리감으로 서서히 열정적 일하는 사람과의 거리감을 두거나, 일부만 참여하는 식의 현실적 접근에 머무르게 됩니다. 

결국 열정적 동료의 초기의 환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피대상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냥 월급만큼 일하자는 분위기가 확대되는 현상과 맞물려서 일의 의미가 있더라도 현실적인 일만하자는 풍조도 이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기업들의 혁신의 과정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혁신에 참여할 의지가 있는 구성원의 확보일 것이지만, 그렇다고 성과에 따른 보상구조를 만드는 것에는 구성원간 시각차로 인해서 전환도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적절히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현재의 월급쟁이에게 미덕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열정적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현실적 고민이 되는 상황입니다. 아마도 일에 대한 욕심 또는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새로운 도전적 상황에 직면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열정적 일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기 보다는 그런 환경적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지, 그리고 그들의 보상이 단순 물질적 보상을 넘어서 다른 요인도 있을 수 있는지 찾아서 자신의 열정에 동참할 동지들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능력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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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해결하는 하기 위해서는 리더는 중간자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다양하게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관점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한쪽에 기울어진 편향된 판단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다툼이 먼저 일어나고 이른바 '니 잘못 내 잘못'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문제의 해결보다는 문제의 원인과 그에 따른 처벌을 원하는 것처럼 결투의 장으로 변하곤 합니다

문제는 기본적으로 박수소리와 같습니다.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문제도 결국 한쪽의 잘못만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정말 특이한 케이스 빼고... ㅡㅡ; )

그래서 문제를 바라볼 때 해결의 관점으로 보기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이해관계자가 누구이고, 그 각각의 역할 속에서 어떤 단계별 진행이 이루어졌는지 파악이 필요합니다. 그런 파악 이후에 구조적 문제가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파악이 된다면, 이제 그 이해관계자들의 이야기를 각각 들어봐야 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면 이해관계자에게 문제해결을 강조하고 문제의 원인을 찾아 나갑니다. 문제가 일어나는데 있어서 5:5로 딱 부러지지 않고 경중에 차이는 있지만 모두 문제의 원인에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여 책임을 따지는 것에서 문제해결로 관점을 전환시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중간자의 시선입니다. 양쪽의 의견에 편견없이 들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의견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양쪽에 각각의 문제의 원인을 당사자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해결점을 찾습니다. 

만약 이때 한쪽으로 시선이 기울면 기우쪽은 위안을 받을 수 있겠지만, 반대쪽은 문제의 원인을 제공했지만 100% 자신의 잘못은 아니라는 억울함을 토로할 것입니다. 결국 문제해결이 아닌 또 다른 감정적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프로젝트의 팀웍은 더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프로젝트의 목적은 일정과 계획에 따라서 목적지까지 도착하는데 있습니다. 그 목적을 잃지 않고, 항해중에 나타나는 문제점을 하나 둘 해결해 나아가지 않고 멈추어서 서로 '니 탓, 내 탓'하다보면 궁극적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좌초하게 됩니다. 

만약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여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면 빠르게 제거하는 것이 맞겠지만, 계속 같이 가야하는 상황이라면 문제를 확대시키기 보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해관계자들간의 상호 이해를 통해서 목적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문제가 감정으로 번지지 않도록 문제에 집중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리더가 중심을 잡는다면, 그 프로젝트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미풍에 그칠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목적지까지 도달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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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화력을 조절해야 한다. 

열정을 불 사른다는 말이 있다. 일을 할 때 열정을 쏟아 부어서 일한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는데 사실 이 말은 위험한 말이다. 

간혹 사람들은 열정이 무한한 에너지원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열정을 일에 쏟도록 사람들을 독려한다. 그래서 열심히 열정을 쏟아 부으며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 Burnout이 앞길을 가로막는다. 

열정은 유한한 것이다. 그래서 그 열정을 쓰면 쓸수록 결국 고갈된다. 온힘을 다해  열정을 쏟아 버리면 결국 쓸 수 있는 열정은 없어지고 무기력증 속에 빠져버린다.

그래서 열정은 적당한 화력조절이 필수다. 고갈되지 않을 수 있는 수준의 화력을 유지하면서 일정한 수준의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조절을 해야 한다. 

특히 후배들 중에 가지고 있는 열정을 완전소진할 것처럼 일하는 경우가 있다. 초기에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부채질을 통해서 마치 능동적 일처리라는 착각에 빠지도록 한다. 

일을 잘한다고 부추길 필요는 없다. 선배들의 역할은 그들의 열정에너지를 한번에 쏟지 않도록 속도조절을 해줘야 한다.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한방에 쏟아 붓지 않도록 화력조절법을 전수해주어야 한다. 

열정적인 일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정확히 말하면 지속가능한 열정적 일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불새처럼 한번에 타고 사라지는 열정보다는 은은히 지속되는 아름다운 열정을 통해서 일을 통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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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은 더 이상 차별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업무 외적으로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기대치가 있다. 과거에는 회사의 업무규정에 업무기준에 명시된 것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완화되었고, 비즈니스 또는 캐주얼 형태로 깔끔하게 입을 수 있게 변화되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여름에 남자들도 반바지를 입고 다닐 수 있는 환경이 점차 확대되고 있을 정도로 복장에 대한 자율성이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선입견이랄까, 특히 팀장급 이상에게는 과거의 룰이 유지되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지도 거의 7~8년 되는 듯 하다. 시작은 의도적이지 않았다. 제주도 휴가를 다녀왔을 때 유독 피부가 잘 타는 스타일이라 수염자리만 너무 티가나서 잠깐만 기르다 깍자로 시작된 수염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초기부터 지금까지도 항상 따라다니는 말은 "언제 깍냐"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신년회 인사로 사옥투어를 하는 경영층과 유일하게 1분이상 수염으로 신년인사를 한 것에서 최근에 상받을 때도 강력하다는 말로 수염에 대한 무언의 압력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그저 일만 꿋꿋이 하다보니 어느순간 주변에서도 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3년전 팀장이 되었을 때도 고객과의 미팅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일이 중심이 되면 외모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해외의 경우는 참 다양한 외모와 취향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한국/일본)의 경우 일 외적인 부분에 의외로 제약이 많은 편이다. 너무하다 싶은 경우도 있지만 이조차도 업무적 역량만 된다면 굳이 문제삼지 않는 곳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정서상으로는 일과 무관하게 외모에 대해서 차별이 존재한다. 

차별이 존재하는 것을 맞서기 위해서 수염을 기르는 것은 아니다. 그냥 뭐랄까... 수염을 기른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고민을 할 때 수염을 쓰다듬는 행동만으로 의외로 집중에 도움이 되는 개인적 취향이지 차별에 맞서서 싸워 이기자... 뭐 이런 개념은 아니다. 

그냥 머리를 기르거나, 짧게 하거나(심하게는 삭발), 염색을 하는 그런 변화의 한 요소일 뿐, 수염이 반항을 표출하는 수단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동료가 염색을 잘못해서 빨간색 머리로 출근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걱정과 회사에 대한 불만 등등 여러 요인으로 우려를 표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외모적 일탈이 그냥 개인의 취향이 아닌 개인의 분노의 표출 수단으로 여겨지는 상황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양성은 의외로 많은 효과가 있다. 획일성에서는 나올 수 없는 어쩌면 자유로운 환경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일까, 개방적 업무문화를 가진 곳일 수록 외적 다양성이 높고, 생각의 대역폭, 자유로운 의사소통 등이 높게 나타난다. 

그저 다양성의 한 축을 내가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군가 오늘도 수염에 대해서 물어보면 이렇게 말한다. 

수염은 죄가 없다. 그냥 자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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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을 위해서 나만의 비장의 무기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창업부터 지금까지 참 다양한 고비를 넘어온 듯 하다. 원인도 다양하고 일적으로도 위축되는 상황에서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런 고비를 문득 지나고 생각하다보니 이겨낸 가장 큰 힘은 바로 비장의 무기였다. 

우리에게 문제가 생길 때 가장 심각한 문제인 자존감을 상실하게 될때 무엇을 하더라도 의지도 없고, 의욕도 없고, 자포자기 상태에 놓일 떄가 있다. 일을 왜 하는지 굳이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이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는 그런 고민들이 점점 스스로를 위축시키면서 급기야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버린다. 

지나고 보면 갑자기 사람이 쓸모없어지는 경우는 없다. 그 순간, 업무적인 문제, 동료간의 문제, 경영층과의 문제 다양한 상황이 스스로를 위축시키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이전까지의 자신의 역량과 무관하게 모든 것이 초기화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일부는 술을 먹거나, 누군가에 하소연하거나 등등 풀어보려고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가 쓸모 없다는 것!!!

그래서 평소에 일 외적인 영역에서의 자신만의 성이 필요하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여러개를 만들어 두는 것이다. 여러개의 성을 만들어 두고 일을 하다 위축되는 나를 발견할 때 나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곳으로 잠시 쉬는 것이다. 

예전에 인라인스케이트를 2년 넘게 타면서 아마추어 레벨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다. 인라인 마라톤에서 2천명 중 162등까지 했을 정도로 나름 잘타는 수준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 즈음 회사에서 일을 하다 엄청난 벽에 부딛친 적이 있었다. 영업이 5천만원에 가져온 일이 분석해보니 적어도 1.5억이 들어가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 당시 창업 실패 후 3개월 수습기간에 나름 의미있는 제안과 실적을 올리던 상황에서 최악의 프로젝트를 맡게 된 상황에 순간적으로 위축되면서 자신감을 잃은 적이 있었다. 못하면 나가야 하는 상황이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스스로 자신감도 잃게 된 때였다. 

힘없이 퇴근할 때 집에 오자마자 인라인스케이트를 들고 여의도에서 밤 10시까지 인라인을 탔다. 그래도 뭐 일은 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인라인 만큼은 남들보다 잘탄다!!!라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해주었다. 인라인을 타는 사람들을 앞지르면서 스스로 위축되었던 나를 일 외적으로 다시금 의미있는 존재로 만들 수 있었다. 

그 덕이였을까... 말도 안되는 프로젝트를 분석해서 고객 앞에서 솔직하게 말하고 금액내에서 단계적 오픈전략을 제시하여 기존 일정보다 2개월 뒤 오픈을 할 수 있었다. 

주저앉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누우면 안된다. 잠시 앉아서 숨을 돌린 뒤에 다시 일어나 걸어야 한다. 이제까지 걸어온 노력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금 순간 웅덩이에 빠졌거나, 잠시 길을 잘못 들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스스로 가치없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 위축되고 자존감을 상실할 때 자신을 다시 일으켜줄 수 있는 무언가 자신만의 비장의 무기를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일로 인해서 스스로 위축되면 그때 비장의 무기를 들고 다시금 위축된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힘을 얻을 수 있다. 

아는 분은 이럴 때마다 노래방에 간다고 한다. 노래하다보면 일도 잊고 스스로 자신감도 얻는다고 한다. 무엇이 되었든 스스로 일으켜 세울 것이 중요하다. 

인셉션에서 주인공들이 현실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자신만의 토템을 가지고 있듯이, 자신이 위축된 상황 즉 쓸모없어지는 상황은 현실이 아니다. 그 상상의 공간에서 빠져 나올 나만의 토템이 필요하다. 그래서 상상의 공간에서 자신을 꺼내 줄 수 있고, 더 깊은 상상속으로 빠지지 않도록 도와 줄 것이다. 

당신은 위대하다. 잠시 길을 잃은 것 뿐이다. 스스로 걸어온 길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잠시 주저앉았다고 영원히 못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털고 일어날 힘을 얻기 위해 비장의 무기를 준비하면 언제든 위기에서 자신을 꺼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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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지 않는 방법은 상황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일을하다보면 참 많은 상황속에서 다양한 분노들과 마주한다. 내가 내는 분노도 있고, 상대방이 내는 분노도 있다. 일을 하기 위해서 불가피할 수 있다고 말하곤 하지만, 사실 분노로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분노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접점이 없다는 반증이다. 접점이 없다는 것은 서로간의 견해차이가 너무커서 도저히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안되는 상황에 처하게 될 때 분노가 표출되고 그 분노의 강도에 따라서 승/패가 나누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분노를 동반한 승/패는 또 다른 분노를 발생시킨다. 즉 분노로 얻은 것은 계속되는 분노속에 노출된다는 뜻이다. 이유야 상대방도 분노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지 진심으로 상대방의 의견에 동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미온적 행동이 또 다른 분노를 야기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분노를 잘 보면 굳이 분노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많다. 어쩌면 분노가 많다는 것은 상황적으로 유연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서로간의 여백이 없는 상황에서 어떤 토의나 논의는 결론적으로 분노로 귀결된다. 

여백이란 정확히 말하면 상호간의 이해이다. 비장한 각오로 상대방을 무찌르겠다고 오는 사람과는 어떤 대화도 안된다. 설명, 설득, 이해 이런 단어는 의미가 없다. 그냥 까라면 까는거고 원하는데로 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과는 어떤 대화도 통하지 않는다. 그냥 힘과 힘의 싸움이고, 누구의 스폰서를 받느냐에 따라서 의사결정이 달라진다. 

이런 상황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여백의 핵심이다. 

내가 옳다고 판단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의견이고, 상대방의 의견과는 이견이 생길 수 있다. 이것이 첫번째이다. 
두번째는 내가 옳더라도 결론은 다르게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현 상황을 인지하고 그에 따른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세번째로 결론에 따른 문제점이 내가 예상한 것이 맞더라도 그저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현실적 이해를 하는 것이다. 

사실 분노를 유발하는 일들은 너무나 많다. 특히 조직이나 개인의 이기주의에 기반한 것들은 분노에 빠지기에 충분하다. 아니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분노를 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분노는 오히려 나를 상하게 한다. 

앞에 3가지 여백의 핵심은 바로 현실직시와 상황판단 능력을 의미한다. 옳은 판단과 옳은 결정은 다르다. 옳은 판단이라고 무조건 선택받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무리한 요구가 있다면 그 요구에 대해서 분노하기 보다는 왜 그런 무리한 요구가 발생했는지 확인하는 행동이다. 대부분 분노에 휩싸이지만,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그 원인을 들여다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원인을 보면 고객의 요구, 경영층 요구, 상급자의 요구, 개인의 이기심 등등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그에 따라서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과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은 대책을 수립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Debate를 한다. 

그리고 상대방과 Debate를 하면 분명 상대방의 분노가 나타난다. 분노에 휩쌓인 상대방에게 단순하게 한마디 한다. 

"왜 화를 내시죠? 우리 일하는거 아닌가요!!!" 라고... 

우리는 월급쟁이다. 월급쟁이들끼리 싸워서 남는 것은 없다. 서로 절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Debate는 상대를 죽이기 위한 방향이 아닌 서로 같이 살 방법을 찾자고 설득한다. 

이런 방식으로 논의하다 보면 의외로 많은 부분에서 분노가 줄어든다. 사실 분노를 줄이고 싶은 것은 분노 이후에 후회되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분노가 너무 많이 남는다. 그래서 그냥 분노하지 않고 살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습관을 들인다. 분노하는 상황에 놓이면 한템포 쉬고 왜 이 상황이 생겼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운전할 때도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닌 한은 대부분 화내기 보다는 왜 저 사람이 저렇게 운전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예를 들어 차선에 바짝 붙어오거나, 원래 이리저리 움직임이 큰 차이거나, 아니면 운전초보 또는 운전 중 딴짓을 하는 등 여러 이유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상황적으로 상대방의 차들의 움직임을 항상 관찰한다. 그리고 갑자기 들어오는 것이 아닌 어차피 들어올 차라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일도 마찬가지다, 이미 성향이 파악된 경우 어차피 그 사람이 일하면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어차피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처리 방법을 찾는다. 분노해 봤자 일어난 것이 해결되지도 않고 분노된 감정 유지되면서 일의 효율성만 더 나빠진다.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어떤 일의 처리, 일을 하는 사람, 일의 환경 등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분노보다 상황파악을 하는 이유는 재발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분노만 싹뺀 사실만으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서 재발방지만 하더라도 충분하다. 화낸다고 달라질 것들은 없다. 

월급쟁이들에게 분노는 독이다.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분노 자체를 줄이는 것이 바로 월급쟁이의 삶에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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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힘든게 아니라 바로 사람이 힘든것이다. 

일을 하면서 경험이 쌓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과거의 정의롭던 모습이 사라지는 사람들을 계속 보게 된다. 가끔 왜 저렇게 변했을까 하는 생각을 갖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어쩌면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중국 역사서들을 읽다보면 문득 의문이 생긴다. 왕조가 바뀌어도 흥망성쇄의 방식은 동일하다는 점이다. 성군이 폭군이 되고, 다시 새로운 나라가 나타나고 반복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왜 어리석은 행동은 반복이 될까 항상 의문이 들었다. 사기나, 한비자 등을 읽다보면 그런 중국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점이 이상할 정도지만 어쩌면 그 속에 역사가 일러주는 가르침을 지금도 여전히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일을 할때도 문득 문득 '왜 저렇게 할까'라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동료들의 피해가 예상됨에도 자기 중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른 동료들은 울분에 찬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들은 오늘도 이기적 행동을 반복한다. 

한때는 이런 사람들을 볼때마다 바로잡고자 했다. 일을 대충하거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거나, 다른 사람의 성과를 가로채는 사람을 만나면 어김없이 그들과 싸우며 정의를 바로 잡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해도 비정상적 상황의 사람들은 계속 늘어만 간다. 신기하게 노력하면 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늪과 같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연합해서 집단적 공격도 가하는 일도 생긴다. 

아는 지인은 이런 이들과의 말그대로 정의로운 싸움에 처참히 패배했다. 거짓보고와 거짓성과가 난무하는 것을 참지못하고 그들과 맞섰지만, 그들의 수가 더 많다는 점을 간과한 나머지 결국 지인의 패배로 전락했다. 

그렇다고 이직을 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직을 하고 난 뒤에는 결국 똑같은 상황 또는 더 심한 상황에 마주할 뿐이다. 그래서 회사생활 자체가 어렵고 힘든 것은 일이 힘든 것 보다는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서 발생되는 문제들이 더 많다. 

이전까지는 이런 사람들과 같은 사고로 인해서 어려운 일들도 지속하여 생겼다면 이제는 순리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방법을 찾아나가고 있다. 

어차피 그런 사람들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들을 직시하는 순간 자신의 평정심을 잃고, 일에 감정이 대입되어 일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과의 거리를 두는 연습을 하게 된다. 그들을 바꿀 수 없다면 그들과 얽매이는 상황은 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피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일단 피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과 일을 하게 될 수 밖에 없다면, 결국 실력으로 그들의 영역을 제한하는 방법 밖에 없다. 어설프게 그들이 일을 하게 만들어서 문제만 키우게 놔두기 전에 그들이 담당하는 일에 제한을 가하고, 그 일을 리딩하면서 그들로 인해서 피해보는 동료를 최소화 시키는 방법 밖에는 없다. 

사람으로 생기는 문제에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계약관계 속의 월급쟁이라면 더더욱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어차피 그들을 내가 월급주는 것도 아니므로 그들의 행동을 비난할 수 있지만, 고칠 수 없다. 비난으로 내가 위안을 받는다면 좋겠지만 비난으로 위안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말도 안되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저 그 사람의 특성 자체를 이해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읽어내려고 한다. 그들이 움직일 때 왜 움직이는지 대략적 판단을 하고 그들이 이용해 먹으려 들 때 그들보다 반발 먼저 앞서서 저지를 한다. 

이런 행동이 가능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일을 잘 해야 한다. 안그러면 그들에게 잡아 먹힌다. 농담이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일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노린다. 굳이 더 노력한다고 월급 더 받는 것도 아닌데 노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자기들이 상대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것이 드러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말도 서슴없이 한다. 일전에 일의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서 일이 되는 것처럼 보고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일을 잘 지켜보다 더 진행되면 문제가 될 것 같아서 일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하고 담당자를 변경하며 그가 한 일을 요청했더니 역시나, 아무것도 없는 엑셀 30줄 짜리 한장이 전부였다. 다행이 더 진행되지 않아서 수습을 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서 발생되는 다른 동료들의 피해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이제 사람으로 힘들 거라는 것 자체를 빠르게 인정해야 한다. 그 속에서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어차피 비정상적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들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면 결국 그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냥 쿨하게 인정하고, 그들과 대립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월급쟁이로써 회사에 살아남을 수 있고, 일을 통해서 즐거움과 행복도 느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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