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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날이 밝았다.

 

새벽에 계속 잠을 뒤척인듯 하다. 발의 통증도 있고 낯선 환경도 한몫 했을듯 하다. 자다보니 TV 혼자 켜져 있어서 끈기억이랑 푹 잠을 자지는 못한듯 하다.

 

한 6시쯤... 몸을 뒤척이다 잠을 깨었다. 어제의 고통도 있고 오늘 가야할 길도 만만치 않아서 다시 발에 물집방지 패드 등 온갖것들을 붙인뒤에 짐을 싸고 여관에서 7시에 출발했다.

 

조금 가다 보니 건너편 비앙도가 보인다. 나름 관광지라는데 일정상 갈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멀리 비앙도가 보인다.>

 

2일차 도보 일주 경로는 이렇다.

한림항 - 협재해수욕장 - 한경면 - 일주도로 - 모슬포항 이다.

원래는 고산일과해안도로로 갈 예정이였으나 어제 35Km 걸어본 결과 해안도로로 가는 것은 무리라 판단했다.

나중에 보니 이 경로로 실측도 33~4Km는 족히 되었다.  

(사실 일주도로로 가고자 한 것은 버스정류장이 있어서 쉬고자 한 것이고 만에하나 너무 힘들면 포기하고 버스를 타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았지만 일주도로에 버스정류장이 꼭 있는 것은 아니였다.)

 

시작은 언제나 견딜만 하다. 어제 저녁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물집제거 및 치료를 한 덕분인지 어제같은 통증은 오지 않지만 이내 2~3Km정도 걷다보면 도로 통증이 느껴진다. 하지만 견딜만 하다. 조금 걷다 보니 협재해수욕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아침으로 바나나 하나를 먹었다. 아침하는 식당이 있기는 한데 어제 저녁부터 입맛이 당기지 않는다. 무리해서 그런 것일까...

 

해수욕장 풍경은 정말 멋졌다.  

<멀리 보이는 등대와 백사장 그리고 파란 바다>

 

바나나를 먹고 있는데 가족인듯한 사람들이 해변에서 사진도 찍고 여유롭게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시작이다. 과연 오늘을 버틸 수 있을지 쉬면서 신발을 벗고 있다 신발을 신으면 엄청난 통증이 느껴지고 다시 걸으면 머리 끝까지 통증이 느껴진다.

 

다시 오는 통증을 느끼며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일주도로만 따라서 가기로 했다. 무리하거나 과욕을 부렸다가는 어제처럼 해가지고도 숙소에 도착하기 힘들듯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리의 통증(주로 새끼발가락)이 재발하면 걷는것 자체가 힘들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이다.

 

그래도 아침 시작이라 그래도 걸을만 하다. 날씨도 흐리지 않고 바람도 없고 그렇게 걷다보니 선인장이 거리에 즐비하다. 다른 곳들은 주로 파 아니면 유채꽃이였는데 이곳은 온통 선인장이다.  

<양쪽 길 주변으로 선인장 군락이 있다>

 

특히나 선인장에 빨간 열매들이 달려있는데 걷다보니 선인장 마을이였다. 7km쯤 걷다 이 마을 중간정도에 도로가에 쉬면서 초코바 하나를 먹었다. 회사 직원이 걷다 먹으라고 준 초코바를 이때 먹었다. 식사는 안했지만 바나나와 초코바 하나로 그래도 견딜만 하다.

 

선인장 마을이 있는 월령리를 지난 뒤부터는 줄곳 일주도로다. 해안도로로 가면 그래도 식당들이 눈에 뜨이곤 하는데 이곳 일주도로로 가면 식당 만나가기 쉽지가 않다. 아침 7시부터 계속 걷기 시작해서 14시 정도되어서야 동네 식당을 찾게 되어서 그곳에서 잠시 쉬면서 오늘의 첫 식사를 했다. 

<2일차 첫 식사 - 김치찌게>

 

어떤 사람들은 제주도까지 가서 맛집을 가지 그랬냐고도 한다. 하지만 이때는 다리가 너무 아프다보니 맛집보다는 그래도 체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익숙한 음식을 찾게 된다. 어먼 모르는 향토음식 먹고 탈이나거서 잘 못먹어서 오히려 체력이 떨어지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듯 하여 김치찌게를 시켰다.

 

하지만 이 김치찌게도 거의 국물만 먹고 밥만 먹었다. 뭐랄까 딱히 입맛이 없다보니 몸 생각에서 그냥 꾸역꾸역 먹은듯 하다. 사실 이때 점심 먹을때 남은거리가 3분의1이 조금 더 되었다. 2시는 다 되어오고 계산해보니 5시간안에 10Km 이상을 걸어야 했다.

 

어제와 비슷하게 쉬었다 걷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한번 쉴때마다 속도는 점점 줄어드는듯 하다. 평균 시속 5Km에서 점점 줄어서 4Km도 안나오는듯 싶다. 식사후에 맘을 다잡고서 걷기시작하는데 갑자기 4차선 도로가 2차선 도로로 줄어든다. 2차선 도로 옆으로는 4차선 확장공사 중인지 넓게 뚫려 있어서 미완공상태라 생각하고 위험한 2차선 보다는 4차선 도로로 가는게 좋겠다 생각했다. 어차피 가다 만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오판이였다. 걷다보니 점점 일주도로와 멀어지는 것 같았고 길도 전체적으로 고르지 않았다. 급히 스마트폰의 App을 확인하니 이미 거리상으로 1Km 이상을 벗어나 있다. 암담하다. 시간은 가고 돌아가야할 길이 더 늘어난 셈이 되었다. 급히 가장 빠른 길로 가로질러가다보니 발의 통증이 상당하다.

 

간신히 일주도로로 들어섰을때 안도감과 발가락의 통증이 겹쳐왔다. 폐교된 학교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는데 이곳저곳에서 도로공사중이다. 도보 중 발이 아플때 힘든 경우는 경사진 도로, 돌이 많은 도로, 고르지 못한 노면이 있는 도로이다. 평지를 걸을때는 그런데로 버틸만 한데 이들 도로를 만나면 균형이 틀어져서 엄청난 통증이 순간적으로 온다. 정신이 아찔해지고 순간적으로 짧은 비명이 나온다.

 

8Km를 남기고 스틱에 의존해서 계속 길을 걸었다. 걷다보니 해가 저무는게 보이고 어느새 구름도 많이 생겼다. 어제와 다르게 구름이 생기다보니 하늘도 빠르게 어두워간다. 문득 어제 노을을 찍었던 내 자신을 생각하며 그래도 그때는 덜 아팠구나 싶었다. 왜냐하면 사진 찍기 위해서 잠시 멈추어야 하는데 멈추면 다시 걷기 시작할때 엄청난 통증이 와서 멈추는거 자체가 두렵기 까지하다.

(3일째 부터 이런 이유로 사진을 거의 찍지 못했다.)

 

목적지인 가자올레 게스트하우스까지 가는 길이 정말 가시밭길을 가는듯 하다. 한걸음 한걸음이 너무 아파서 감당하기 힘들다. 가는 길에 2~3곳의 게스트하우스를 보면 확 들어갈까 싶다가 그래도 목적지라 꾸역꾸역 힘들게 찾아갔다.

 

이렇게 2일의 도보 일정은 마무리 되었다.

서두에도 말했지만 지도상 거리는 대략 32Km 내외로 나왔지만 스마트폰 App 실측은 35Km 내외가 나왔다.

숙소에 도착해서 정말 엉금엉금 여장을 풀고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비소리가 들린다. 아까 보였던 구름이 비구름이였나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으면 정말 비는비대로 맞고 고통은 몇배가 되었을것을 생각하니 다행이다 싶다. 비가오니 갑자기 싸늘해진다. 샤워를 하며 벌벌 떨었다. 몸을 떨며 그냥 맘 한구석이 짠해온다. 왜 이 고생을 시작했을까.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싶었다.

 

어김없이 발에는 새끼발가락 이외 여러곳에 물집이 생겼고 어제와 같이 물집공사를 마무리했다.

 

여행객도 나 혼자이고 장기투숙객으로 한분이 오셔서 그분이 요리한 찌개로 저녁을 대신했다. 입맛이 없던 나의 입맛을 돌아오게 해준 정말 맛있는 저녁이였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저녁제공이 없다.)

 

이날 저녁 먹으며 대장(이곳에서는 사장님을 대장이라 부른다)과 대화 도중 오늘 도보 중에 기억나는 건 발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말을 하자 대장이 하는말 "목적지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고 그저 이곳 목적지까지 가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발만 보고 걸은듯 하다. 목적지가 없다면 주변을 즐기며 날이 저물때 쯤 근처 숙소에서 쉴터인데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유가 없이 딛어야 할 길의 바로 앞만 보고 걸어온 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내 인생도 목적만을 보며 바로 앞의 길만을 보고 달려와서 지쳐버린 것은 아닐까 싶었다. 가끔 주변도 보는 여유가 있었다면 오히려 더 편한 길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결국 오늘도 잠을 청하지만 결국 깊은 잠은 자지 못할듯 하다.

 

------------------------ 숙소소개 ------------------------------

숙소 : 가자올레 게스트하우스

위치 : 모슬포항 남쪽 운진항 앞(올레 10코스)

시설 :

 - 조립식 건물로 보임(비오는 소리가 들림)

 - 날이 서늘할때 샤워하면 한기가 느껴짐.(이날도 추웠음)

 - 전기 장판이 개별로 제공됨.(개별로 되어 있지 않는 곳도 있음.)

 - 여자방은 별도 방으로 되어 있고 남자방은 거실과 칸막이로 구분되어 있음.

분위기 :

 - 주인아저씨(대장이라 부름)가 인심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함. 대장이 낚시를 좋아함.

 - 추천대상 : 낚시 좋아하는 분, 사람과 어울리고 싶은 분, 계획없이 여행하는 분에게 추천

 - 비추천대상 : 시설이 중요한 분, 목적이 있어 무조건 쉬어야 하는 분, 어울리는 걸 꺼려하는 분

 - 이곳 특징이 장기여행객들이 많고 주로 어울리는게 많아서 사람들간의 나눔이 활성화 된 곳이라 생각됨.

 

------------------------ 둘째날 도보 총평 ------------------------------

1. 지도나 이정표를 보지 않고 임의판단하며 길을 가지 말라.(도보로 가는 길은 길을 잃기 쉽다.)

2. 제주도 날씨는 일기예보와 다르게 급변할 때가 있다.(이날도 저녁에 갑자기 비가 왔다.)

3. 자신의 목적에 맞는 게스트하우스를 사전에 파악할 것.(쉬는것이 목적인지 어울리는 것이 목적인지 중요)

4. 도보는 체력보다는 지구력이다.(칼로리 소모는 많지 않음. 단, 정신적인 부분이 중요)

5. 숙소는 가급적 목적지 전 5Km 부터 3~4곳을 확보하라.(목적지까지 무리하여 가지 않는 것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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