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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연하지만 가장 잘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자신감을 키우는 것입니다.

자신감을 어떻게 키우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아이들에게도 자신감을 가져라라고 말은 하지만 정작 그 자신감은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단 자신감을 왜 얻어야 할까

아이들은 실수를 반복적으로 함에 따라서 성장을 합니다. 넘어지고 부딛치고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은 반복적으로 자신이 어떻게 하면 안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반대로 이런 행동을 극복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경우 새로운 시도보다는 그 두려움으로 다시는 그것을 시도조차 안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놀이공원에서 아이들 전용 청룡열차를 탄 경우 어렸을때 무서운 경험으로 커서도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과거의 두려움에 뒷걸음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과거와 다르게 시도를 하게 될 경우 일부 아이들은 과거의 두려움보다는 현재의 스릴을 재미있어 하기도 합니다. 

실패에 대해서 자신감을 상실한 경우 시도를 포기하고 과거에 얽매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자신감은 지속적인 실패를 통한 지식습득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아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는 경우는 몇가지 있습니다.
 - 행동에 대해서 두려움이 있는 경우
 - 행동에 대해서 다친 경우
 - 행동에 대해서 혼난 경우

1. 행동에 대해서 두려움이 있는 경우
앞서 예를 통해서 아이들이 어릴적 경험한 것들로 인한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나이들어서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런 가능함을 극복하는 것은 혼자의 힘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나서서 같이 그 두려움을 극복해 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릴 적 물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진 아이들은 의식적으로 물놀이를 기피하게 됩니다. 이럴 경우 커서도 물을 피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럴때는 물놀이가 무서운 것이 아닌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물놀이가 재미있는 것임을 알게하고 수영등을 통해서 물을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흔히들 어릴적의 두려움은 미숙함에 의한 것으로 성장하면서 극복가능하지만 정신적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것들이 성장하면서 점점 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험할 수 있는 폭도 점점 줄게되어서 아이들의 창의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재미난 것은 하나의 두려움을 극복하면 나머지를 극복하는 것은 훨씬 수월하게 됩니다. 혼자의 극복이 아니라 같이 그 두려움을 극복하게 되면 아이는 그 다음부터 두려움에 맞서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부모의 노력이 중요하게 됩니다. 두려움이 아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한 아이가 워터슬라이드의 두려움이 있었지만 아빠와 같이 타고서 그 다음부터는 워터슬라이드를 즐기게 되고 더 난이도가 높은 것에도 도전하게 됩니다.

이렇듯 두려움이 있는 것들은 부모가 나서서 자신감을 찾아줘야 합니다.

2. 행동에 대해서 다친 경우
어린 아이들에게 부모가 하는 행동 중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이 부분이죠. 아이들은 어릴적 자주 넘어집니다. 넘어질때마다 부모가 달래주면 아이는 넘어지고서 바로 일어나려하지 않습니다. 즉 부모가 일으켜세워 주기를 기다리게 되고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죠.

그런데 일부 부모는 아이가 넘어지면 바로가지 않고 아이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일어나서 자세를 잡으면 그때 아이의 상태를 물어보고 안아주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아이들은 울거나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서 크게 아프지 않은 경우 그냥 바로 걸어오기도 합니다.

행동을 통해서 다친 경우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다음에 넘어지고 설령 다치더라도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아이 스스로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어느정도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후 다른 행동에 따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3. 행동에 대해서 혼난 경우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혼난 경우 시도자체를 포기하거나 기피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부모들의 생각과 다른 경우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보기 전에 부모들의 입장에서 아이에게 일정한 강요형태로 아이들의 생각을 좌절시키는 경우입니다.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생각한 것들을 시도해 보게 놔둬도 됩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의 행동이 의미없고 불필요하다 생각하여 아이들의 생각을 차단해 버리게 됩니다. 그것이 반복되면 아이들은 동일한 비슷한 경우에서도 생각을 차단하게되어 새로운 생각 자체를 포기하는 습관이 생기게 됩니다.

아이들의 생각이 설령 무모하다고 생각될 때라도 그것이 아이들의 건강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스스로 생각한 것들을 시도하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시도의 의미는 설령 실패하더라도 스스로 생각한 것에 대해서 실패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른들이 말하는 것보다는 그런 실패를 통해서 얻는 정보가 아이들에게 오래 남게 되고 또한 실패를 통해서 스스로 배우는 방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이때 아이들의 실패에 대해서 어른들은 질책보다는 실패의 원인과 이유를 같이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이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의 극복은 아이들의 자신감을 갖는 기회가 되고 이후 다양한 도전을 하는데 밑바탕이 됩니다. 즉 실패가 두려운 나머지 시도를 안하거나, 과거의 두려움으로 앞으로 한발도 내딛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실패와 두려움을 지속적으로 극복하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만의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됩니다.

4차 산업혁명의 제일 중요한 사항이 바로 이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이기 때문에 미래의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것들에 대한 도전을 할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아이들은 커나가며 실패를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되고 그런 실패들을 경험함으로 앞으로 성장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실패에 대해서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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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차 산업혁명 - 교육혁명] 3. 경쟁에 빠진 아이들
 - [4차 산업혁명 - 교육혁명] 4. 질문의 생활화

이제 아이들의 교육혁명은 어떻게 해야할까!!

첫번째로 질문의 생활화 입니다. 지금의 교육은 질문보다는 전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교사는 전달을 하고 그것을 학생들은 듣고 외우는 것이 현실입니다. 학생 개인의 생각보다는 교사의 전달이 누락없이 정리하는 것이 아이들의 교육환경입니다.

대학에서도 전달 중심의 교육이 질문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되기 어렵습니다. 이유는 교수의 의지도 의지지만 학생들이 질문을 할줄을 모르는데 있습니다. 대학 때 기하학 수업 중 교수가 2개의 원에 대한 강의를 하는 중 3개의 Case만 언급하고 강의를 마칠 때 쯤 문득 하나의 경우의 수가 더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강의 종료 후에 교수에게 질의를 했을 때 교수는 3가지가 아닌 4가지 Case에 대해서 놀래기도 했지만 4번째 Case를 찾아서 질문한 것 자체를 더 놀라는 듯 했습니다.

질문하는 능력은 쉽게 길러지지 않습니다. 이유는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해야하고 그 생각은 지속적인 의문을 품을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어떤 질의에 대해서 의문을 갖지 못하면 그에 따른 질문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어릴적 부터 질문을 잘하는 아이들의 특징은 무언가 항상 의문을 품는 다는 점입니다. 
 - 왜 하늘은 파란가
 - 왜 아빠는 돈을 벌어와야 하는가
 - 왜 겨울에는 꽃이 피지 않는가

어른들이 볼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아이들이 하는 질문에 대해서 명확하게 대답을 해주는 어른들도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이유는 어른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고 그 생각이 없기 때문에 단순히 겨울에는 꽃이 안펴!!로 결론이 나버립니다.

질문의 힘은 위대합니다. 하나의 질문을 위해서는 정말 오랜동안 다양한 생각과 고민을 해야 합니다. 요즘 4차산업혁명으로 기업들도 변화를 위해서 경영진과 구성원의 간담회 같은 것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항상 간담회 말미에는 구성원들의 질의를 받겠다고 하지만 정작 질의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뭐 튀기 싫어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 질문을 해본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질의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질문을 한다는 것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무언가에 자신만의 궁금점이 있는 것이고 그 궁금점의 해소욕구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런 질문이 끊이지 않는 아이들은 질문을 통해서 점점 사고(思考)를 증대시키게 되고 한층 더 높은 수준의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교육의 핵심은 바로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 아이들에게 스스로 질문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답을 해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하는 질문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간혹 질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답을 해주게 되면 아이들의 머리속에 다른 생각들이 샘솟게 하는 역활을 하게 되어 새로운 질문을 만들게 되는 동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질문을 잘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이해를 못하거나 궁금해하는 것들을 겉으로 잘 표현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스스로 부족한 것들을 질문을 통해서 해소시킴으로 지식의 능동적 성장을 이끌게 됩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하나의 습관처럼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질문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것에 대한 이해나 고민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에 질문의 중요성은 아이보다도 어른들에게서 더 중요하게 됩니다. 즉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들을 질문을 통해서 지식의 체계화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의 습관은 중요합니다.

대부분 질문을 기피하는 이유는 질문을 통해서 자신의 부족함 또는 무지해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것들이 없기 때문에 이런 질문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어릴적부터 습득함으로써 성인이 되어서도 질문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질문이 많은 아이가 되기위해서는 어른들의 노력이 더 중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한때 많이 공유되었던 동영상을 통해서 왜 어려운지 보시기 바랍니다.

질문도 중요하지만 동영상에서 보듯이 대답도 중요합니다. 질문의 생활화가 되기 위해서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즉흥적이거나 형식적이 아닌 진지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는 질문을 통해서 무언가를 얻기 때문에 지속적인 질문이 가능해지고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질문은 아이들의 생각의 폭을 넓혀주게 됩니다. 또한 고정된 틀이 아닌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합니다. 그저 외우라고 하던 것들을 모두다 의심하고 궁금해하며 '왜 그렇게 되어야 하지'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것의 이유를 스스로 찾는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의 지식은 계속 성장하게 됩니다.

과거의 질문은 이른바 어른들에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였지만 지금은 아이들 스스로 검색이나 동영상을 통해서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시키게 되고 이른바 4차산업혁명의 교육방식 중 하나인 거꾸로 학습의 시작이 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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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차 산업혁명 - 교육혁명] 2. 비슷한 생각, 비슷한 교육
 - [4차 산업혁명 - 교육혁명] 3. 경쟁에 빠진 아이들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아이들과 경쟁을 해야 합니다. 옆 친구를 이겨야만 자신이 더 좋은 대학이나 더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어릴적부터 우리의 교육은 집요하게 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런 경쟁구도속에서 조금이라도 앞서나가기 위한 방법으로 학원과 과외 등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경쟁 구도속에서 커온 아이들은 누군가와의 협력을 통한 성취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나와의 경쟁자에게 더 많은 정보가 가면 안되기 때문에 자신이 아는 정보를 꽁꽁숨기고 다른 친구들이 알고 있는 정보는 어떻게든 빼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지금의 아이들입니다.

우리의 교육이 이처럼 아이들을 친구와 동반자가 아니라 지속적인 경쟁상대로 만들어 버리는 상황에서 4차산업혁명의 교육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일 따름입니다. 경쟁에 지쳐서 아이들은 친구도 잃고 학교에 대한 희망도 잃고 결국 미래도 잃게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매년 수능시기에 자살하는 아이들을 보면 우리의 교육이 얼마나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지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요...

1. 절대평가 속에 숨은 상대평가
우리의 교육은 절대평가입니다. 즉 문제를 풀고 그 문제에 대해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맞추었는지에 따라서 점수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받은 점수를 다시 모든 학생들을 일종의 순서대로 나열하게 됩니다. 즉 절대평가를 하지만 결과적으로 상대평가를 위한 절대평가를 하는 것입니다.

절대평가는 아이들의 수준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척도입니다. 강점과 약점, 그리고 교육의 방향을 설정하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 개개별로 어떻게 육성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절대평가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상대평가를 위한 척도로 활용됨에 따라서 아이들은 지속적인 경쟁구도속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강점을 파악하고 자신에 맞는 방향 설령 영어를 못하더라도 수학과 물리학의 강점을 살리는 쪽으로 갈 수 없고 상대평가상의 등수를 올리기 위해서 정말 싫어하는 영어를 억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하는 공부가 과연 효과가 있을까?? 옛말에 소를 물가로 끌고갈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즉 공부를 억지로 시키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공부를 하는 학생이 집중해서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시간낭비만 하게 됩니다. 이른바 억지공부의 패단으로 잘하는 것 조차 흥미를 잃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이 인정받기 힘들다는 것도 아마 우리나라 교육현실에 빗대어 보면 그 사람들은 정말 부족한 아이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2. 협력은 바보로 가는 지름길
경쟁의 교육환경에서 협력을 선택하는 아이들은 바보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즉 자신의 정보를 남에게 내어 준다는 것이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사실 맞는 말일 수 있는 것이 자신의 정보를 남에게 내어주면 공유가 되어야 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 정보를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일방적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아는 한개를 가지고 공유하지 않고 아이들은 자신만의 노트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남에게서 정보를 얻게되면 다시 자신만의 노트에 기록하고 숨겨버립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확인할 방법이 없이 그냥 모든 것을 자기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죠.

대학 때 한 친구는 재미난 실험을 합니다. 이른바 일방적 공유를 선택하죠. 그래서 자신이 보유한 족보를 공유하게 됩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상대가 족보가 있다면 같이 공유해야 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기간에 돌입하면 그 친구는 여러친구들과 족보를 공유하다보니 자신에게도 다양한 족보가 모이게 되고 그 친구는 그 족보들을 모아서 중복되는 것 중심으로 공부를 하여 나름 의미있는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이런 족보를 공유하면서 이른바 나홀로 족보족들이 가지고 있는 족보들 중에 틀린 것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였습니다. 남과 공유해 본적이 없는 나홀로 족보족들은 자신이 들고 있는 족보가 맞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했지만 정작 그것을 검증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검증하다는 것은 외부에 공개하는 것이고 자신이 그것을 남에게 공유한다는 의미와 같기 때문입니다.

틀린 족보를 가지고 공부하던 친구들이 한번은 시험중에 감독하던 교수님이 한 친구의 문제풀이를 보며 한 말에 충격을 먹게됩니다.
"네가 지금 풀고 있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하니?"

왜 충격을 먹었냐하면 그 친구가 뿌린 족보로만 공부했던 친구들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는 과에서 상위권에 있던 친구였고 그 친구가 공부하던 족보를 다수의 친구들이 확보해서 공부했던 것이죠. 교수는 감독하며 쭉 보며 동일한 오답을 다수의 학생들이 쓰는 것을 보고 한마디 했던 것입니다.

협력은 바보가 아니라 오류를 최소화 할 수 있는 길임에도 여전히 아이들은 경쟁으로 바보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3. 모든 아이들이 1등을 할 수 없다.
경쟁 즉 선의의 경쟁은 서로를 성장시킵니다. 예를 들어 마라톤의 러닝메이트 같이 혼자보다는 같이 달리는 동료가 있어서 기록갱신도 가능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선의의 경쟁은 불가합니다. 누군가는 1등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꼴등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꼴등을 한 아이가 지식적으로 부족한 것일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친구들을 보면 재미난 것이 중고등학교때 그렇게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친구들이 종종 잘살고 있는 것들을 보게되고 전교 1,2등 했던 친구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잘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자주 듣게 됩니다.

우리가 산을 오를 때 행복을 느끼는 것은 가장 먼저 오른 것이 아니라 그 산 자체를 즐길 때 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정상까지 다소 느리지만 즐기며 오르는 산행이 가장 행복한 산행이라 생각됩니다. 빠르게 정상만을 보고 오른 사람에게는 진정 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1등의 교육환경에 매몰되어 버린 아이들의 미래가 바로 이런것이 아닐까 합니다. 가끔은 게임도 하고 운동도 하고 삶을 즐겨본 아이들과 1등을 위해서 공부만을 하고 살아온 아이들에게 어떤 추억이 존재할지 추억이 없는 아이들의 미래는 과연 행복할지 의문이 드는 부분입니다.

모두가 1등이 될수 없지만 모두가 행복하게 만들려고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게 굳이 공부를 더 하도록 강요할 필요는 없습니다. 공부는 못하지만 그 아이만의 장점을 찾아서 그 장점을 더 강화한다면 오히려 남들이 보기에 부족해보여도 자신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할 수 있다면 굳이 1등이 아니여도 좋다...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교육방식이 과연 합당할지 이제 고민해볼 시점입니다. 지금 좋아보이는 기업이나 직업이 아이들이 성장하고 세상에 나가게 될 때도 과연 좋은 기업과 직업이 될지 모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쩌면 지금 있는 기업과 직업 상당수가 없어졌을지도 모르는 것이 지금의 4차산업혁명의 핵심입니다.

경쟁은 아이들의 성장을 좀먹게 됩니다. 경쟁을 통한 아이들은 커서도 남과의 공유보다는 남의 정보를 획득하는 것에 집중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오답을 들고서 정답인양 살다가 어느순간 그 오답으로 인생의 큰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4차산업혁명은 경쟁구도속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공유와 협력없이 4차산업혁명의 파고를 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기술과 시장의 붕괴는 자신만을 의지하는 것에서 벗어나 타인과의 협력을 통해서 상호보완적인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내 부족함을 나 혼자서 노력해서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은 과감하게 남과 협력을 통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고 자신의 정보를 통해서 남의 부족함도 채워야 합니다.

공유와 협력은 자신의 정보를 남에게 빼앗기는 것이 아닌 바로 자신을 성장시킨다는 점에서 경쟁구도의 타파는 교육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고민해야할 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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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차 산업혁명 - 교육혁명] 1. 주입식 교육의 종말
2. [4차 산업혁명 - 교육혁명] 2. 비슷한 생각, 비슷한 교육

4차 산업은 기본적으로 다양성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산업혁명은 주로 한 분야의 기술적 성장이 주를 이루었다면 4차산업혁명은 이런 기술들의 융합과 시장의 융합을 통해서 고객의 가치를 증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기술들이 서로 Cross-over 되거나 Collaboration되어서 새로운 고객가치를 만들어 내게됩니다. 이런 융합의 핵심은 다양성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 현실은 이른바 쏠림현상으로 아이들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붕괴시키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육의 변화는 무언가를 가르키는 것이 아닌 다양한 고민과 질문을 할 수 있는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아이들이 커 나갈 세상에 과연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를 고민하기 보다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어떻게 대처가능한 능동적 아이들이 될 수 있는지가 중요할 것입니다.

현실과 미래의 교육의 차이점은 과연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1. 교육의 솔림을 막아라
앞서 블로그에서 언급했지만 주입식 교육은 아이들의 창의성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창의성의 훼손으로 그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고민을 할 시간을 주어지지도 않고 그저 방향을 잡고서 아이들은 그 방향으로 밀어 넣고 있는 실정입니다.

요즘 4차산업을 위한 교육이라고 하면서 코딩이나, 로봇조립 등 교육의 변화를 이끌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학교교육에 더해서 학원 등을 보내면서 이러한 4차산업용 교육이라는 틀속으로 아이들을 다시 몰아 넣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아이들을 하나의 목표로 다 몰아 넣는 것이 과연 맞을까?
모든 아이들이 코딩만하며 살아야 하는것일까?
모든 아이들은 로봇만 만들어야 하는가?

우리가 말하는 교육은 교육과목이 바뀌었을 뿐... 교육방식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수학, 영어에 더해서 코딩과 로봇조립 등의 교육이 추가로 생겼을 뿐입니다. 코딩으로 무엇을 할지, 로봇이 과연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못하고 오로지 틀에 박힌 책에 있는 내용만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외우는 것은 더 차이가 없습니다.

해외의 초등학교 아이들이 창업하는 사례가 종종 생기는데 국내는 왜 이런일이 생기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아이들을 모두 동일한 환경에 몰아넣고 그 교육 속으로 매몰시켜버리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 합니다.

코딩 100만 인력 육성.... 과연 합리적일까?

2. 정답이 정해진 교육
여전히 우리의 교육은 정답을 외우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교육의 방식이 문제풀이식 방식으로 가장 빠르게 얼마나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는지에 따라서 아이들의 성적이 결정됩니다. 이런 교육의 틀 안에서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정답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아이들로 커 나가게 됩니다. 문제를 풀다가 틀리면 정답지를 보고 풀이 자체를 외워 버립니다. 왜 틀렸을지, 어느부분이 문제인지, 고민하고 시간을 들이기보다는 틀린 것을 빨리 푸는 것만이 아이들의 공부방식으로 정착됩니다.

오히려 왜 틀렸는지 한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아이들은 성적이 좋지 못하게 나오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이 4차 산업을 이끌 아이들이라는 점을 교육현장이나 부모들은 아직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정답을 빨리 맞추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라면 정답이 없는 문제를 그 아이들에게 제시했을때 과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정답이 없고 정답을 만들어 가야하는 것이 바로 미래의 일인데 아이들은 여전히 이런 정답속에 문제풀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가 과연 있을지 의문입니다.

3. 하향 평준화되는 아이들
모든 동일한 틀안에서 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점점 자아를 상실합니다. 수학을 잘하지만 영어를 못하고 과학을 좋아하지만 역사를 못하는 아이들은 우대받지 못하고 모든 것을 평균이상 잘하는 아이들... 정확히 말하면 모든 것을 평균이상으로 빠르게 외워서 잘 푸는 아이들이 인정받게 됩니다.

아이들은 다양한 가치관과 생각 그리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지만 우리의 교육은 이런 것들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어떤 것에 능력이 있는 아이들 조차 자신의 특기를 살리지 못하고 잘하지 못하는 것들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잘하는 것마저 점점 못하게 되는 하향 평준화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사실 교육과목 모두에서 잘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합니다. 정말 똑똑하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대부분이죠. 수학을 좋아하고 영어를 싫어하거나 영어를 좋아하지만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 물리는 재밌지만 생물은 싫은 아이, 운동을 좋아하지만 음악을 싫어하는 아이..... 우리의 아이들은 다양합니다.

이런 자기 자신들의 특기가 있음에도 우리의 교육 현실은 비슷한 환경에 동일한 틀안으로 아이들이 평가받게 되고 그 평가는 아이들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틀이 아닌 틀 밖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좋은 대학은 가지 못해도 좋은 직장이나 직업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기를 살린 아이들은 그 특기를 가지고 꾸준히 자신만의 성취감을 맞보며 성장하지만 특기 없이 이도저도 아닌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체를 잃게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더 문제는 특기가 있었지만 그 특기마저 상실해 버린 아이들... 그 아이들의 미래를 어른들이 책임져주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요.

4. 자신을 보지 못하는 아이들
아이들의 획일적 교육으로 인해서 아이들은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정말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더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에 관심이 있고 점수에 연연하는 아이들만 만들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정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싶은지 어느순간 잊게 되고 떠밀리듯 학원과 문제풀이에 몰입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살아왔는지 허탈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능시험을 치르는 고3학생들이 과 선택의 어려움을 겪는 것기 현실입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어떤 것을 하고싶은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고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고 현실적인 관점을 가지기 보다는 외부의 압력으로 자신의 미래를 외부인들의 관점에 맞추어 살아야 하는 것이 지금의 교육 현실입니다.

그렇게 커나가는 아이들에게 과연 4차 산업의 미래가 있을까.. 스스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아이들 그저 대기업에 가서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 것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에게서 커나가는 아이들이 과연 지금의 어른들이 말하는 대기업과 직업이 존재할까??


교육의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지금의 4차산업을 위한 교육방식은 의미없게 됩니다. 드론을 날리고 AI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변화하는 세상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키울 수 있도록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학교의 교육이 어렵다면 가정교육이라도 아이들에게 조금 다른 과점 즉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여 할 수 있는 것들을 늘려서 아이들 스스로의 자존감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이 어린것이 아닌것처럼 아이들 스스로 현재의 자신과 미래에 대한 자신을 설계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보다 많은 실패를 더 빨리 경험한 아이들만이 4차산업 그 이상의 변화의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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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서 가장 큰 도전을 받는 곳이 바로 교육분야입니다.
우리의 교육의 방식 즉 무언가 정해진 정답을 얼마나 빠르게 맞추는 것인지가 교육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수업방식도 문제를 설명하는 것 중심으로 암기식 방식이 우리에게는 오랜동안의 교육 방식입니다.

4차 산업의 도래로 이런 교육방식의 한계에 부딛치게 됩니다. 우리의 교육은 창의적 사고 자체를 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이런 교육환경에서 4차산업의 인재가 나올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 교육의 상황은 4차산업을 하기에 부족함이 무엇일까

1. 놀지못하는 아이들
우리가 말하는 창의의 핵심적 요소는 바로 놀이입니다. 놀이는 말그대로 아이들 스스로의 생각을 어떤 틀이 없는상태에서 자유롭게 표출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자기만의 기준과 가치를 정립하고 그것을 주변친구들과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거치면서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같은 사물을 가지고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을 하게 됩니다. 어린왕자의 그림 한장이 바로 아이들의 상상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어른들의 생각으로는 그냥 단순한 모자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어린왕자는 코끼리를 먹은 보아뱀으로 봤던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상상력속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능력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은 이런것들을 어릴적부터 죽이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에게 이건 무엇일까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이건 무엇이야... 외어야해...' 이게 핵심입니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전혀 다른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은 오히려 반대되는 행동으로 인식되어 배척하게 됩니다. 다른 의견은 존재할 수 없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죠. 그래서 우리는 어릴적부터 구구단을 무조건 외우게 됩니다. 

'1+1=2'가 왜 인지 의구심을 갖고서 물어보면 대부분의 교육에서는 당연하게 2라고 답을 합니다. 우리는 의심을 하면 안되고 그저 정답을 외우기면 하면 되는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한계... 그러다보니 무언가 생각하는 시간보다는 문제를 얼마나 빠르게 정답을 찾는지가 핵심이 되어서 아이들의 창의력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과연 4차 산업을 이끌 수 있을까요?

2. 생각할 수 없는 아이들
요즘 멍때리기라고 대회도 있기도 한데 권장을 많이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멍때리기는 뇌를 유일하게 쉴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하기도 하죠. 창의적인 생각의 기본이 멍때리기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의 현실은 멍때리면 혼납니다. ^^

저는 가끔 생각이 복잡해지면 잠시 눈을 감고 가만히 있습니다. 약간의 반수면 상태라고 해야할까.. 최대한 머리를 쉬게해 줍니다. 이유는 머리속이 복잡해서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들이 뒤죽박죽되어서 막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 10~20분 정도 있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주변의 아이들을 보면 놀지도 못하거니와 가만히 쉬지도 못합니다. 유치원때부터 다양한 학원을 다니고 학습지를 하고 잠잘때까지 스스로 무언가를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무언가 어른들의 틀에 맞추어서 사는 아이들은 스스로의 시간을 만들 수 없다보니 어느순간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틀안에서 움직이는 것 이외에는 하지 못하게 됩니다.

요즘 창의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해서 이런 아이들에게 창의적 사고를 하기 위한 학원을 보내기도 합니다. 정작 창의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아이들의 창의적 사고를 할 시간을 주지 않으니 참으로 모순된 상황이죠.

창의적 사고가 좋다고 말하지만 방식에는 변화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저 멍때리며 아이들이 하고 싶은데로 놓아두면 좋지만 왠지 모르게 아이들에 대한 불신(?)인지 그냥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3.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는 아이들
어른들의 관점에서 아이들을 볼때 이른바 하향식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아이들은 나보다 아는 것도 부족하고 사회적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내가 아이들을 이끌어 줘야 한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 강하게 작용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의견은 대부분 무시되고 어른들이 설정한 방향과 방식으로 이끌게 됩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이게 아닌거 같은데 아이들의 입장은 존중받지 못합니다. 이유는 아이니깐!!!
대표적인 단어들이 이것입니다.
 - 어린것이 뭘 알어...
 - 시키면 시키는데로 해..
 - 왜 말을 안들어...

아주 어릴적부터 아이들은 이런 환경에서 자라게 됩니다. 즉 자신의 의지보다는 어른들의 의지에 의해서 왜 하는지도 모르는 것들을 다 해야 하는것이죠. 학원도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다니게 되고 결과적으로 남는 것 없이 시간만 낭비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리다고 해서 아이들의 판단이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 어린왕자의 이야기 처럼 정말 보아뱀이 코끼리를 먹었을 수 있으니까요. 어른의 관점에서 아이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어른들의 편견이 작용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굳이 학교나 학원이 아니더라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원하는 것들을 언제든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동물의 특징, 키우는 법 등을 어른들보다 잘 알 수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이제는 동영상으로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죠.

아이들의 지식의 수준은 이제 우리가 커왔던 환경과 전혀 다릅니다. 그만큼 정보의 접근성도 쉬워졌고 알고 싶은 것들을 자신의 눈높이에 맞게 찾아 볼수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즉 아이들의 지식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4. 획일화된 아이들
최근 4차산업을 위해서 코딩교육을 초등학교부터 적용한다는 내용을 봤습니다. 참 아이러니한게 코딩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과연 합당할지... 과연 이 아이들이 성장한 10년 뒤의 세상은 코딩이 필요할지 아이들에게 필요한게 진정 코딩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일부에서는 아이들이 로봇을 좋아한다, 코딩을 좋아한다 이렇게 말을하며 4차산업의 인재가 될것처럼 말을 하지만 사실 로봇을 잘 만들고 코딩을 좋아한다고 해서 창의적 인재가 되지는 않습니다. 아니 가능을 할지 몰라도 그것이 아이들의 의지가 아니라 어른들의 의지라면 더더욱 어려울 겁니다.

아이들이 로봇을 좋아하는 것과 하나의 교육형태로 로봇을 배우는 것은 다르겠죠. 우리의 교육은 이른바 정해진 틀을 만들어서 그 안에 아이들을 넣는 것에 익숙하다보니 4차산업의 핵심 영역들 조차 이런식으로 교육을 하게 되고 다양한 생각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닌 틀에 박힌 획일적 생각만 존재하는 구조로 아이들을 가두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것은 코딩도 아니고 로봇도 아닌 바로 창의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임에도 여전히 우리는 방식은 고정한체 제목만 바꾼 교육을 지속적이고 획일적으로 아이들에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 학부모들도 이런 영향으로 로봇이다, 코딩이다 이런 교육에 아이들을 사교육 환경으로 나아가도록 하는데 사실 아이들에게 부모가 해줘야 할 것은 바로 코딩을 통해서 무엇을 해볼 것인지, 로봇을 통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즉 아이들의 생각의 크기를 키워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부모 조차도 4차산업의 영향을 잘 모르다보니 그냥 다른 집도 하니깐 우리 아이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똑같은 획일된 교육환경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의 교육의 현 상황으로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이들에게 학교과 가정에서 무언가 만들고 부수고 자신만의 룰을 만들 기회를 주지 않고 틀안에 계속 가두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아이들 스스로도 할 수 있는데 혹시 우리의 교육환경은 이런 아이들을 믿지 못한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정말 4차산업 아니 미래에 아이들이 스스로 자립적 성장이 가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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