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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힘든게 아니라 바로 사람이 힘든것이다. 

일을 하면서 경험이 쌓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과거의 정의롭던 모습이 사라지는 사람들을 계속 보게 된다. 가끔 왜 저렇게 변했을까 하는 생각을 갖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어쩌면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중국 역사서들을 읽다보면 문득 의문이 생긴다. 왕조가 바뀌어도 흥망성쇄의 방식은 동일하다는 점이다. 성군이 폭군이 되고, 다시 새로운 나라가 나타나고 반복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왜 어리석은 행동은 반복이 될까 항상 의문이 들었다. 사기나, 한비자 등을 읽다보면 그런 중국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점이 이상할 정도지만 어쩌면 그 속에 역사가 일러주는 가르침을 지금도 여전히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일을 할때도 문득 문득 '왜 저렇게 할까'라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동료들의 피해가 예상됨에도 자기 중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른 동료들은 울분에 찬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들은 오늘도 이기적 행동을 반복한다. 

한때는 이런 사람들을 볼때마다 바로잡고자 했다. 일을 대충하거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거나, 다른 사람의 성과를 가로채는 사람을 만나면 어김없이 그들과 싸우며 정의를 바로 잡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해도 비정상적 상황의 사람들은 계속 늘어만 간다. 신기하게 노력하면 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늪과 같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연합해서 집단적 공격도 가하는 일도 생긴다. 

아는 지인은 이런 이들과의 말그대로 정의로운 싸움에 처참히 패배했다. 거짓보고와 거짓성과가 난무하는 것을 참지못하고 그들과 맞섰지만, 그들의 수가 더 많다는 점을 간과한 나머지 결국 지인의 패배로 전락했다. 

그렇다고 이직을 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직을 하고 난 뒤에는 결국 똑같은 상황 또는 더 심한 상황에 마주할 뿐이다. 그래서 회사생활 자체가 어렵고 힘든 것은 일이 힘든 것 보다는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서 발생되는 문제들이 더 많다. 

이전까지는 이런 사람들과 같은 사고로 인해서 어려운 일들도 지속하여 생겼다면 이제는 순리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방법을 찾아나가고 있다. 

어차피 그런 사람들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들을 직시하는 순간 자신의 평정심을 잃고, 일에 감정이 대입되어 일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과의 거리를 두는 연습을 하게 된다. 그들을 바꿀 수 없다면 그들과 얽매이는 상황은 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피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일단 피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과 일을 하게 될 수 밖에 없다면, 결국 실력으로 그들의 영역을 제한하는 방법 밖에 없다. 어설프게 그들이 일을 하게 만들어서 문제만 키우게 놔두기 전에 그들이 담당하는 일에 제한을 가하고, 그 일을 리딩하면서 그들로 인해서 피해보는 동료를 최소화 시키는 방법 밖에는 없다. 

사람으로 생기는 문제에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계약관계 속의 월급쟁이라면 더더욱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어차피 그들을 내가 월급주는 것도 아니므로 그들의 행동을 비난할 수 있지만, 고칠 수 없다. 비난으로 내가 위안을 받는다면 좋겠지만 비난으로 위안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말도 안되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저 그 사람의 특성 자체를 이해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읽어내려고 한다. 그들이 움직일 때 왜 움직이는지 대략적 판단을 하고 그들이 이용해 먹으려 들 때 그들보다 반발 먼저 앞서서 저지를 한다. 

이런 행동이 가능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일을 잘 해야 한다. 안그러면 그들에게 잡아 먹힌다. 농담이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일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노린다. 굳이 더 노력한다고 월급 더 받는 것도 아닌데 노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자기들이 상대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것이 드러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말도 서슴없이 한다. 일전에 일의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서 일이 되는 것처럼 보고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일을 잘 지켜보다 더 진행되면 문제가 될 것 같아서 일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하고 담당자를 변경하며 그가 한 일을 요청했더니 역시나, 아무것도 없는 엑셀 30줄 짜리 한장이 전부였다. 다행이 더 진행되지 않아서 수습을 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서 발생되는 다른 동료들의 피해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이제 사람으로 힘들 거라는 것 자체를 빠르게 인정해야 한다. 그 속에서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어차피 비정상적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들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면 결국 그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냥 쿨하게 인정하고, 그들과 대립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월급쟁이로써 회사에 살아남을 수 있고, 일을 통해서 즐거움과 행복도 느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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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었다고 생각되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때다. 

예전에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겪었다. 아마도 그때는 삶의 모든 것들이 위험에 빠진 상황이라고 기억된다. 해결 가능한 방법도 찾을 수 없었던 그때 문득 제주도 도보일주를 떠올리게 된 것은 어쩌면 그만큼 힘들어서 도피처를  고민하다 생각이 났던 것 같다. 

당시의 상황은 새로운 팀장이 오자마자 오랜동안 만들어오던 일이 어느정도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시점에서 자신이 대리고 온 팀원에게 그 일을 넘기고, 잘하고 있던 일을 축소 또는 폐지를 시킴에 따라서 년초에 거의 90% 이상의 일을 잃게 되었다. 순간적으로 길들이기라는 말을 들을 정도 였지만, 그런 결정이 회사입장에서도 전혀 도움되지 않는 상황이다. 

아이러니하게 도보일주 이후 경영층 보고시에 나의 일을 축소했던 팀장의 일처리에 대해서 경영층의 지적으로 다시 원복이 되었지만, 그 순간 버티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들었던 상황이였다. 

그런 상황에서 제주도 일주를 한달간의 연습(한강에서 10km 걷고)을 하고 6박 7일 일정으로 제주도를 무작정 구글 지도 하나에 의존해서 걸었다. 

문득 2일차에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게스트주인과 같이 술을 마시다 2일간 생각나는게 아스팔트밖에 없단는 생각이 들어서 그 말을 주인에게 했을 때 아직도 또렷히 기억되는 그 말... 

'목적지를 정해서 그렇다.'

그랬다. 힘들다고 도보일주를 하면서도 일처리 하듯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것에만 몰두해 있었다. 걷다 시간되면 점심먹고, 걷고를 반복하다보니 문득 제주도에 왜 왔지라는 생각에 첫날에는 숙소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주인장의 그 한마디가 당시에 큰 울림이 있었다. 어쩌면 당시의 삶의 방향도 그때 그 한마디로 변화가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3일차에는 아에 내려 놓고 고개를 들고 주변을 보면서 걷기 시작했다. 미리 숙소 예약도 하지 않고 걷다 인근의 숙소를 가자라는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고 걷다보니 문득 하루에 많이 걸어야 40km인데 맘의 속도는 100km 이상을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하루 40km만 가면 되는데 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서두르기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삶에서 불필요한 속도전을 펼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도전을 펼치다보면 놓치는 것들이 많다. 100km의 속도로 달리는 차에서는 앞 이외 옆을 볼 수 없다. 그리고 너무 빨리 지나가서 지나는 길에 무엇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속 5km로 걷다보면 거의 하루의 모든 장소들이 머리속에 각인된다. 마치 영화처럼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각나는 장소가 있을 정도로 구석구석 놓치는 곳이 없을 정도로 시간이 지나도 기억이 난다. 

그렇게 4일째는 하루종일 내리는 비속을 우비하나에 의존하면서 쉬지 않고 점심도 먹지 않고 그저 묵묵히 비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아마 그때 마음속의 짐과 고민들이 어느 순간 사라졌던 것 깉다. 

머리속 많은 생각을 버리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비를 맞으며 걷다보니 문득 필요없는 것을 담아놓고 버리려고 너무나 아둥바둥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담지 않으면 되는데 굳이 담아놓고 그걸 버리지 못해서 힘들게 고민하며 살았던가. 

그렇게 6일째 여정을 성산일출봉에서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로 일출을 보러 성산일출봉에 올라갔다. 이미 발바닥은 물집과 굳은 살로 범벅이 되어서 걸을때마다 통증이 일어났지만, 묵묵히 정상에 올랐다. 

모두가 일출을 보기 위해서 동쪽을 볼때 우연히 반대편을 보았다. 한라산부터 서서히 빛이 내려오는 장면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쩌면 모두가 한방향을 보고 있을 때 가끔은 반대편을 보는 법을 왜 몰랐을까. 서서히 빛이 내려오는 모습은 개인적으로 일출보다 너무 아름다운  잊지 못할 광경이였다. 

그렇게 일출을 보고 원래 일정은 함덕해수욕장까지 였지만, 오히려 6일차에 가장 몸이 가벼웠다. 어쩌면 가장 힘든 발은 퉁퉁붓고, 물집과 굳은 살이 범벅되고 이미 지칠대로 지치고 허리도 아픈 상황이였지만, 마음만은 가장 홀가분했던 날이였다. 결국 성산일출봉에서 제주공항까지 평균 5.5km의 속도로 하루동안 55km를 걸었다. 

첫날 정말 힘들어서 울었던 그 상황에서 6일째 가벼운 몸은 어쩌면 몸이 아닌 마음의 무게에 눌려있던 것에서 해방된었던 것 같다. 일에 대해서도 새롭게 바라보고 가정에 대해서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무언가 나의 기준에 사람들을 판단하던 시기에서 이때를 기점으로 남을 이해하고 그 자체를 인정하는 단계로 변화가 되었다. 

이런 변화는 일에 대한 자세까지 바꾸어 놓아서 그 뒤로 지속적으로 새로운 일들을 맡아가며 일에 있어서도 다양한 의미있는 성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낸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와 사람들 속에서 산다. 그러다보면 가끔 나 자신을 잃게 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기준속에서 살게 되고 가정과 회사속에서 아바타처럼 살아가다 문득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빠진다. 

그래서 힘들어 하는 동료들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도록 권유한다. 인생은 자신이 주인공인 영화를 찍는 것이다. 누구의 삶을 대신 사는 것이 아닌 나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 속에서 나 자신을 잃게 되면 누군가의 도구, 누군가의 판단에 정의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제주도 도보에서 삶의 속도, 삶에 대한 자세, 마음의 무게, 일을 바라보는 관점 등이 변화되었다. 그저 혼자서 240km를 걷다보면 남들이 규정한 내가 아닌 오로지 나 자신만 남아 나 자신과 오롯이 대화할 수 있었다. 

자신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혹시 자신이 누구인지 혹은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면 오롯이 자신과 대화를 통해서 진정한 나와 대화를 해보자.

https://yjyc.tistory.com/338

 

[제주도보일주]- 6일차 : 마음의 무거움을 벗다

[도보여행의 기록을 마무리 하기 위해 5년이 지난 시점에 나머지 블로그 정리합니다][도보경로 : 성산일출봉 – 감녕해수욕장 – 함덕서우봉해변 - 삼양검은모래해변 – 제주공항] 아침 5시반에

yjy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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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잘한다는 것은 결국 Detail에 달려 있다.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잘되는 프로젝트와 유독 문제가 지속되는 프로젝트가 있다. 그 둘의 차이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일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Detail을 챙기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은 파트별로 영역을 구분해 놓는다. 그리고 그 영역별 업무를 관리하도록 하고, 그 중간지대를 공통이라는 영역으로 만들어 둔다. 이런 공통영역 이외의 Gray 영역에서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

업무적으로 정의를 하더라도 사안별로 아무것도 아닌 예를 들어 방화벽 해제와 같은 것들을 꼼꼼히 체크하는 것은 사실 업무적 정의보다는 능동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몇몇 사람에 의해서 해결되는 경우들이 많다.

Gray 영역이 어려운 이유는 모두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길 수 있음에도 모두들 누군가 처리할 것이라고 미루고 자신의 업무에 집중한다. 결국 이 Gary 영역은 오픈시점에 드러나게 되고 니탓내탓 하다보면 결국 중요한 품질과 납기를 놓치게 된다.

Gray 영역을 잘하느냐는 어디까지나 PMO의 역할이 중요하다. PMO가 업무를 잘 알고 있다면 중간에 나올 수 있는 다양한 Gray 영역들의 이슈들을 사전에 확인할 수 있다. 또는 각 영역 담당자들에게 Gray 영역이 발생하면 언제든 PMO에게 전달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두고 언제든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하여 누락없이 Gray 영역을 관리하도록 한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프로젝트가 Gray 영역을 방치한다. PMO의 역할도 사실상 일반적 관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아지고 PMO 조차도 자신의 업무적 영역을 확대하기보다는 최대한 각 파트로 전가시키면서 단순 관리 영역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Gray 영역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팀원이 있다면 그것만한 복이 없을 것이다. 지금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수시로 Gray 영역들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시키지 않아도 묵묵히 그런 Gray들을 체크하고 관리 가능한 영역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

이런 보배같은 존재는 모르는 것들은 물어가며, 각 영역별로 나누어진 환경속에서 Gray 영역들의 요소들을 찾아내고 처리가능한 방법들을 찾아낸다. 이런 노력들이 쌓이면서 우려스러운 Gray들을 지속적으로 해결해나가고 덩치가 큰 것들은 별도의 Issue공유를 통해서 이슈를 직접 해결 할 수 있는 사전 정보를 제공해 준다.

이렇게 말하면 어쩌면 정말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 투입된 인력이 대략 100명 내외에서 이런 사람은 한두명에 그친다는 점을 볼 때 실천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 생각된다.

PM인 나로써는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개별미팅을 통해서 개인들이 스스로 문제점을 인지하고 공유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유도하지만 능동적 일처리를 하도록 하는 것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런 속에서 능동적으로 일을 처리해 주는 맴버가 있다는 점에서 항상 감사해 한다. 기회가 될때마다 감사함을 항상 표현하면서 이들의 노력이 프로젝트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인정해주고, 다른 프로젝트 맴버들에게도 이 사실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면서 이들의 노력을 더욱 값진 것으로 만들어 준다.

일을 성공시키는 것은 어떤 대단한 것을 해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서비스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서 그 서비스 자체가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결국 숨겨진 Detail에 있다. Detail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 그속에 바로 일의 성공의 열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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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일은 없다. 결국 실패만 남는다.

일을 하면서 매번 느끼지만 전력을 하지 않는 일은 대부분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전력을 할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적당히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락으로 빠지는 일들을 자주 겪다보니 뭘 하더라도 시작을 했다면 대부분 전력을 다한다.

일을 할 때 "적당히 해도 되"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그 적당히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지만, 어디까지가 적당히인지도 사실 불분명하다. 그러다 보면 일에 전력을 쏟기 보다는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정도면 될까? 아니면 이정도면 될까? 그러다보면 일이 아닌 상황에 집중하게 되어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일들은 실패를 한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서도 강조하는 것이 바로 적당한 타협이다.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여 마치 해결된 것처럼 포장한다. 결국 당장은 발생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적당히 타협한 문제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고 문제의 늪속에 빠지게 된다.

적당히란 말은 일에 있어서 실패를 의미한다. 해결에 대한 의지보다는 순간을 회피하거나 한것처럼 하는 Washing에 가깝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하다가 적당히란 말이 나오면 가장 강력하게 대응한다. "제대로 할지 않을거면 하지말아야 한다!!!"라고....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적당히"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적당히라는 암흑의 존재들이 언제든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발목을 잡는다. 그러면서 그 암흑의 존재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월급쟁이 거기서 거기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에 열정인 사람들은 이런 암흑의 존재의 달콤한(?) 말을 외면하고 그들과 싸우면서 한발한발 나아간다. 그들에게 붙잡히는 순간 끝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래서 개인적으로 오늘도 "적당히"와 싸우는 멋진 분들에게 위로와 존경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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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예측하기 보다는 흐름을 읽는게 중요하다.

PI나 BM 등의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경우 간혹 시장을 예측하려는 시도를 할 때가 있다. 특히 BM의 경우는 예측기반 성장률 등을 산정함에 있어서 스스로의 함정에 잘 빠지곤 한다.

새로운 시장을 파악하거나 기회를 판단함에 있어서 우리는 시장을 미리 예측을 하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런저런 원인으로 미래는 이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방향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런 예측이 반드시 맞지 않는다. 일부는 맞을지 모르지만 예측을 한 경우는 대부분이 틀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도래하지 않아서 실패한 Case가 생각보다 많다. 예측은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바위가 산위에 걸려 있을 때 누구나 비가오거나 언제든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측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이 빠졌다. 언제 떨어질 것인가 이다.

예측기반 투자는 이른바 Long Term을 버틸 수 있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당장의 실현 가능성보다는 시장에 언제가는 떠오를 아이템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자신이 최초이므로 빠르게 선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시장의 흐름보다는 시장을 예측한 결과로 실행을 한다.

개인적으로 창업-벤처-대기업에 이르면서 다양한 아이템들을 보고 개인적으로도 다양한 아이템으로 사업을 구상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예측기반 사고는 생각보다 성공률이 낮았고, 버티지 못하고 아이템을 놓아 버린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아이템이 시장에서 핫하게 나타나면 "아... 저거 내가 생각했던 건데.... "이런 생각에 빠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좋은 아이템이지만 왜 매번 고배를 마셨을지 복기를 해보면 결국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한 원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한 영화 대사에서 80년대로 돌아간 사람이 "미래의 사람들은 전화기를 들고 다니는 시대가 올것이다"라고 말을 했다고 해서, 당장 그 시대에 휴대폰에 투자하면 당장 망할 것이다. 당시의 흐름을 읽다보면 결국 당장은 불가능한 상황, 단순히 휴대폰을 만드는 것이 아닌 시장상황에 대한 휴대폰 기반의 Eco-System이 Working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Working 하지 않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이다. 하지만, 시장의 이해관계자의 움직임 그리고 필요한 기능들의 Eco-System이 Working하다면 그것은 시장의 흐름을 읽은 것이다.

혁신도 어디까지나 예측아닌 흐름을 읽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단순히 혁신적 아이템이라도 언급되는 것들 중에 단순히 하나의 Item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전기차도 이미 1880년 최초로 개발되었지만, 실질적 성장은 2020년부터 진행되었다. 어디까지나 전기차를 만드는 것과 Eco-System을 만드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Eco-System을 혼자서 다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실패한다.

하지만 시장을 읽는다면 달라진다. BM이 시장에서 Working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는지 Item 기준의 Working Process를 읽어야 한다. 그래서 그 아이템이 실질적으로 Working 할 수 있는지 체크하고, 내가 아닌 다른 Player들이 Eco-System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될 때 비로소 그 아이템은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테슬라의 특허개방은 이런 Eco-System의 테슬라 단독이 아닌 다양한 참여자들을 통해서 구축하겠다는 의지이다. 지금도 FSD관련하여 오픈소스화 하려는 시도도 결국 전기차를 넘어서 자율주행 Eco-System의 확장을 위한 포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행동들은 그만큼 시장의 흐름을 읽고 성공을 위한 방법을 만들어가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간혹 BM을 만들다보면 고객사에서 Eco-System을 독점하려고 곳곳에 장치를 만들어 두려고 시도를 한다. 핵심영역은 본인들이 독점하고, 비핵심영역들에 대해서만 오픈하려고 하다보니 BM은 훌륭하지만, 참여자들의 Eco-System에 참여하기를 꺼려하고 결국 그 BM은 실패한다. 정확히 말하면 휴면상태로 돌입하고 Eco-System이 나타날 때 그 BM을 조용히 준비하고 있던 기업에게 열매를 딸 기회가 생긴다.

예측을 하는 것까지는 대부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실질적 Working을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자산이 가지고 있는 Item 또는 BM의 타이밍을 잡을 수 있고, Eco-System이 Working 할 수 있는 시장상황이 도래할 때까지 조용히 내공을 쌓고 있으면 된다.

좋은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만이 멋진 서핑을 즐길 수 있다. 어디서 어느정도의 파도가 나타날 거라는 파도의 흐름을 읽는 서퍼가 단순히 좋은 파도가 온다라고 예측하는 서퍼보다 멋진 파도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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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를 수행함에 있어서 "착한사람"이 제일 "나쁜사람"이다.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의외로 쓴소리를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아무 문제없는 프로젝트에서는 문제없이 끝나겠지만, 대부분의 프로젝트에서는 이런 쓴소리를 안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궁극적으로 모두가 불행해지는 일이 생긴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계획된데로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상치 못한 Issue와 새로운 Risk 등은 언제나 프로젝트 내 도사리고 있다. 또한 개인의 능력치에 따라서 크고 작은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사실 프로젝트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만드는 것보다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핸들링하느냐에 달려 있다. 어차피 일어날 문제이기에 "왜 일어났어"가 아니라 "발생했구나"로 생각하게 된다.

이런 문제는 대부분 예상 가능한 영역에 있다. 천재지변이나, 코로나와 같은 새로운 이슈들은 어차피 대응 불가능하지만, 이런 것들을 제외하고는 이미 조짐이 나타난다. 그 조짐이 나타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는게 좋을까.

착한 사람들에게서 이런 문제의 조짐이 나타나도 쓴소리를 하지 않고 좋게 좋게 일처리를 하고 싶어 한다. 당장의 일정을 지키지 못했지만, 웃는 모습으로 좋게 좋게 이야기 하고 그들이 스스로 문제점을 개선하기를 바란다.

사실 이렇게 되면 가장 이상적 모습이지만, 일정이 지연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사유가 내부적으로 생겼다는 것을 암시한다. 즉 그들을 믿어서는 어떻게든 해결은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믿음을 착한 사람들이 가지고 프로젝트에 임하는 순간에 초기에 처리할 수 있는 일조차 나중에는 더 걷잡을 수 없게 되고, 이런 상황에서 조차 쓴소리를 주저함에 따라서 일은 점점 더 복잡한 문제로 커지게 된다.

착한 사람들이 많은 프로젝트는 어디까지나 이상적 구조이다. 서로 믿고 신뢰하고, 서로의 열정을 불태우면서 일을 끝낼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그런 이상적 프로젝트 구조.... 하지만 이런 이상적인 구조는 창업초기 의기투합해서야 가능한 것이고 그것도 계약구조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구조이다.

우리가 프로젝트를 함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 상황은 바로 예정된 일정 내 끝내는 것이다. 좋게좋게 끌고가다 일정 내 끝내지 못하는 경우는 오히려 서로간의 불신과 고통만이 지속되는 가장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닥치지 않도록 중간중간 점검을 통해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착한 사람들은 과정에서 자신이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이미지에 관심을 갖다보면 결국 프로젝트 말미에서는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다시는 프로젝트를 같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쓴소리가 무조건적 비난을 의미하지 않는다. "원인과 결과 그리고 책임"이 부분을 명확히 해서 해결 가능한 방법을 찾는 과정이다. 그렇게 위해서는 왜 이런일이 생겼는지 명확히 파악이 되어야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언급이 되어야 비로소 발생된 문제를 단기간에 정리가 가능하게 된다.

간혹 쓴소리가 굳이 필요할지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도 있다. 그때마다 해주는 말은 "이 일에 대한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가"라고 말한다. 일에 책임을 지려는 사람에게서는 쓴소리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저 책임은 남의 일이라는 생각을 갖는 사람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좋게 보여지고 싶은 것에 머무르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 문제가 커지고 난 다음에 하는 말은 대부분 무책임한 모습에 직면한다.

일을 함에 있어서 일을 끝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이런 "착한사람"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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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한 자세에 대해서 최근에 많이 배우고 있는 분이 있다.

근무하는 층에 일하시는 청소담당자 분인데 이전 담당자 분과 다른 모습으로 청소업무를 하시는 모습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전 분들은 그저 주어진 청소구역에 대해서 청소 후 비품추가 정도가 끝이였다. 딱히 뭔가 차별점도 없었고, 일에 대한 의지나 열정 같은 것도 느끼지 못했던거 같다.

그런데 이분은 매사에 새로운 것들을 탐구하는 느낌이다. 불편한 것은 없는지, 혹시 어디 문제는 없는지 찾아다닌다.

특히 화장실 공간에서의 그분의 모습을 보면 꼼꼼히 화장실 각각의 문제점을 점검한다. 그리고 회사의 관리팀에 매번 연락을 한다. 오히려 관리팀 직원들이 그런 꼼꼼함에 귀찮아할 정도로 조그만것 조차 넘어가지 않는다.

최근에는 치약이 교체되었는데 사람들이 못 알아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별도로 스티커에 글씨를 써서 붙여 놓으셨다. 그런 것들이 화장실 곳곳에 있다. 단순히 청소의 영역이 아니라 사용하는 사용자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부분까지 고민을 하시는 듯 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왠지 많이 배우게 된다. 적극적인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도 흔치 않은 경우이다. 문제가 있어도 그냥 내가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니라면 굳이 나서지 않는 것이 요즘의 분위기라는 점에서 이분의 적극적 노력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해야만 의미있는 행동으로 보여질 수 있다. 하지만 일에 대한 자세는 조그만 것 하나하나에서 나타난다. 단순한 일이라도 그 일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서 그 결과물은 다르다.

그런 관점에서 이분의 청소업무에 대한 진심은 항상 나를 반성하게 한다. 어쩌면 매일 마주대하는 분이기에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 수 있는 일에 대한 롤모델로도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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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 임원에게 철학은 사치다.

창업시절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임원분들을 만나기도 하고 모시기도 하면서 항상 머리속에 드는 생각 중에 임원이 과연 철학을 가질 수 있을까 였다.

사실 몇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적어도 임원이라면 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면, 팀장을 해본 뒤부터는 임원에게 과연 철학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PI나 BM의 업무 특성 상 외부적 사례나 기업들의 벤치마킹 등을 하다보면 성장하거나 혁신적인 기업들의 특징속에서 보여지는 것들 중 가장 두드러진 것들은 바로 임원 특히 CEO의 임기라는 점이다.

한국의 CEO(창업주가 아닌)는 대부분 임기가 짧다.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5년 내외로 장기플랜으로 진행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단기실적 중심으로 접근하게 되고, 무언가 큰 틀에서 움직이기 보다는 잰걸음으로 눈에 보이는 실적중심으로 움직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원이 철학을 가지고 무언가 펼치기에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짧다. 반면 창업주가 CEO인 기업들을 보면 철학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추진하는 일관성과 목표의식이 명확하다. 설령 중간에 실패를 하더라도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하려고 했던 일을 꾸준히 나아간다.

현재 스페이스X가 있기까지 일론머스크가 아닌 월급쟁이 사장이 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수많은 실패와 자금의 압박속에서 버틸 수 있는 사장은 없을 것이며, 이사회의 경질목소리에 이렇다할 시도도 제대로 못해보고 짤리고 해당 사업은 사라졌을 것이다.

스페이스X의 개발자들이 1단 로켓의 회수를 위해서 수없이 실패하면서 결국 자금압박까지 몰렸던 일론머스크가 회의를 소집했을 때 모두들 이제 끝이라고 생각할 때 일론머스크의 "실패도 하나의 과정이니 다시 해보자"라는 말속에 지금의 꿈에서나 있을법한 1단 로켓 회수라는 새로운 기술에 더해 우주시대를 활짝 여는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임원의 철학이 없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 시각이였다면, 지금은 어느정도 임원들의 고충에 대해서 이해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철학이 무조건적으로 필요없다는 것보다는 어쩌면 월급쟁이 임원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월급쟁이 임원이 가지는 철학이 사치라는 점은 어쩌면 이사회 또는 최대주주의 눈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 워랜버핏이 인수한 회사의 사장을 선임하는 기준에서 Berkshire Hathaway의 가치철학에 부합하는 사람을 선임하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경영을 맡기는 것처럼 한다면 월급쟁이 임원도 철학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실적중심의 월급쟁이 경영층에게는 철학보다는 창업주나 이사회를 설득할 실질적인 실적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신임 경영층이 선임되면 우선적으로 이전 경영층이 추진했던 것들을 정리하고, 새롭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색깔의 변화를 주게 된다. 결국 회사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은 변경되는 경영층들로 인해서 매번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일의 지속성보다는 실적 중심의 단발성 업무의 늪에 빠지게 된다.

철학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것은 단기적 상황에는 어렵다. 철학이 스며드는 기간이 있고, 그것이 발현되어서 실질적 성과로 나타나는 기간이 필요하다. 특히나, 철학과 기업문화가 연계되는 상황이라면 그 기간은 더 소요될 수 있다.

이제는 조금 현실적으로 경영층의 결정에 대해서 과거보다는 덜 부정적 관점으로 이런 결정의 배경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는 점이다. 간혹 친한 임원분들과 대화하다보면 그분들 또한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입장에서 마냥 자신의 철학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종종 듣곤 한다.

그래서 지금은 일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현재의 회사 방향성, 경영층의 결정사항과 그 결정으로 인해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영향도를 파악하고 실질적인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려고 노력한다.

비난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경영층의 문제가 내가 해결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그 상황을 이해하고, 방향을 찾는 것이 오히려 좋다. 그런 관점에서 월급쟁이 임원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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