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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새내기를 위한 재테크 가이드 / 5년안에 1억원 만들기



직장 새내기들은 지금 한창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신나고 세상이 내 것 같을 수도 있을 게다. 그 기분에 우쭐해서 친구들 만나 한 턱 내고, 후배들에게 한 잔 쏘다가 결혼할 때가 되면 그 동안 뭐했나 하는 생각을 들 수도 있다. 인생의 황금기인 직장 초년은 재산을 형성하는 데도 황금기다. 지금 남보다 먼저 모은 1억원이 퇴직할 때 10억, 20억원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그게 재태크의 마법이다. 5년 안에 1억원을 모으는 비법을 소개한다.

요즘 신입사원들이 월급을 활용하는 것을 볼 때마다 분위기가 참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필자가 첫 직장을 가졌을 때였던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모두들 돈 쓰기에 여념이 없었다. 속칭 ‘n분의 1’이라는 미명 아래 동기들끼리 흥청망청 대기 일쑤였고, 변명 같지만 주위의 그 어떤 선배도 “월급은 이렇게 저렇게 재테크에 활용해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3~5년을 보내고 자신의 통장을 바라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게 신입사원의 전형적 행태였다.

그래서 요즘 신입사원들이 재테크에 노력하는 것을 보면 기특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걱정도 지울 수 없다. 인터넷, 재테크 서적, 재테크 프로그램 등등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재테크 지식은 풍부해졌지만 정작 중요한 ‘마음가짐’에 대해 소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30대 신입사원들의 재테크에 있어 마인드는 가장 중요한 성공요소다. 그 어떤 재테크 이론이나 테크닉도 결코 이 마음가짐의 중요성에 미치지 못한다.

역설적으로 신입사원이기에 더욱 그렇다. 수 십억, 수 백 억 원을 굴리는 재테크가 아니라 월 50만~100만원 정도의 가용자금을 상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입사원들은 재테크를 바라보는 시선이 태생적으로 ‘허술’할 수 밖에 없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에 성공한 터라 한번 돈 쓰는 맛을 보면 3~4년간은 빠져 나오지 못한다.

재테크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현실은 월급날에 카드 값 메우느라 정신이 없다.

자, 그렇다면 신입사원들은 어떻게 자신의 재테크 마인드를 확립해야 할까. 크게 5가지의 마음가짐 훈련방법을 소개해 본다. 일명 ‘재테크 마인드 5계명’이다. 신입사원들이 최소한 이 5가지만큼은 확실하게 다진 후 본격적인 재테크에 뛰어들 필요가 있다.

첫째는 ‘처절하게 느끼기’ 다. 재테크는 단 몇 년 만에 끝나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마라톤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마라톤을 하려면 반드시 나만의 ‘대의명분’이 있어야 하고, 이를 뼛속 깊숙이 심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힘들 때마다, 때려 치고 싶을 때마다, 꺼내보면서 다시 달려갈 수 있다.

왜 재테크를 하려고 하는가? 왜 많지도 않은 월급을 쪼개 재테크에 미치려 하는가? 만약 이런 질문에 “주위에서 다들 재테크 하니까…” 따위의 답변을 한다면 채 3개월간의 재테크도 이어가지 못한다. 왜 돈이 좋은지, 왜 월급을 아낄 것인지에 대한 나만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돈 때문에 나를 버리고 부잣집 아들에게 떠난 여자친구를 놓고 처절하게 느껴도 된다. 유치하다고? 그렇지 않다. 이건 유치함의 문제가 아니다. 본인의 재테크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처절한 명분을 세울 수 있는가의 문제다. 지금 눈을 감고 어서 빨리 무엇 때문에 재테크에 몰두하려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라.

두 번째는 ‘확률에 대한 믿음’ 이다. 누가 뭐래도 재테크는 확률의 싸움이라는 것을 가슴팍에 뚜렷하게 새겨놓는 것이다.

가령 신입사원의 재테크는 지금 1만원을 아끼고, 하루라도 빨리 100만원을 모아야 목돈을 모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만약 이런 믿음이 없다면 재테크는 결국 투기행위거나 요행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게 될 뿐이다.

아니, 이런 ‘확률’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굳이 재테크를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다. 매 순간 확률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이것이 무너지면 재테크는 끝장이다.



세 번째 마음가짐은 ‘숫자(수치)를 통해 파악하기’ 이다. 재테크는 돈을 기본으로 하고, 돈은 결국 숫자로 파악되는 대상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두리뭉실한 측정이나 비교, 엉성한 개념정리 등을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10년에 10억 모을래” 같은 목표는 재테크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 월 가용금액은 얼마, 연간 목표수익률은 얼마, 3년/5년/7년/10년 등으로 다시 목표금액을 쪼개고, 저축/주식/펀드/보험 등 재테크 상품마다 다시 수익률을 나눠 파악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렇게 숫자로 상황을 파악하는 연습을 하면 택시비 5000원도 아까워 절약하고 0.1%의 수익률(또는 이자율)에도 벌벌 떨 수 있다.

“주식으로 500만원 벌었어” 라고 떠벌리는 동료를 무턱대고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총투자금은? 투자수익률은? 투자기간은? 당시 시장수익률은?” 등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재테크 성공요소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네 번째는 ‘기회비용의 잣대를 들이대라’는 것이다.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라는 개념은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재테크는 그야말로 이 기회비용의 예술이다.

수중에 있는 500만원을 A 또는 B라는 재테크 방법 중 하나에 활용하려 할 때 반드시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 200만원을 챙길지, 3년 후 300만원을 받는 게 남는 장사인지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계산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기간수익률과 연 환산수익률에 대한 차이도 모르는 친구들이 상당히 많다. ‘복리’나 ‘현가’는 고사하고 1만원과 1만 2000원의 차이에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다.

마지막 다섯 번 째 필수 재테크 마인드는 ‘정상의 경험 맛보기’ 이다.

재테크 마라톤을 끝까지 완주하려면 중간중간 새로운 힘을 충전해야 한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정상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정상의 경험은 굳이 재테크만으로도 한정되지 않는다.

어떤 목표를 정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그 목표를 달성할 때 얻는 자신감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재테크에 있어 3000만원을 모았을 때, 통장에 찍힌 3000만원이라는 숫자를 보았을 때 이 경험을 했었다.

어서 빨리 100만원을, 500만원을, 그리고 1000만원을 모아보라. 그리고 정상의 경험을 맛보라. 아마도 태어나면서부터 40억 주식부자가 된 재벌가 손자가 자신의 통장을 바라보는 느낌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상의 경험’은 사회의 새내기로서 재테크 마라톤을 완주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기획 = 정진건 기자 / 글 = 정철진 경제 컬럼니스트, 책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저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269호(11.03.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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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 accept failure, but I can't accept not trying. - Michael Jordan

Talent wins games, but teamwork and intelligence win championships. - Michael Jordan

Just play. Have fun. Enjoy the game. - Michael Jordan

I never looked at the consequences of missing a big shot... when you think about the consequences you always think of a negative result. - Michael Jordan

Always turn a negative situation into a positive situation. - Michael Jordan

I've failed over and over again in my life and that is why I succeed. - Michael Jordan

I don't do things half-heartedly. Because I know if I do, then I can expect half-hearted results. - Michael Jordan

You have to expect things of yourself before you can do them. - Michael Jordan

There is no "i" in team but there is in win. - Michael Jordan

I've missed more than 9000 shots in my career. I've lost almost 300 games. 26 times, I've been trusted to take the game winning shot and missed. I've failed over and over and over again in my life. And that is why I succeed. - Michael Jordan

Talent wins games, but teamwork and intelligence wins championships. - Michael Jordan

My body could stand the crutches but my mind couldn't stand the sideline. - Michael Jordan

If you're trying to achieve, there will be roadblocks... But obstacles don't have to stop you. If you run into a wall, don't turn around and give up. Figure out how to climb it, go through it, or work around it. - Michael Jordan

My heroes are and were my parents. I can't see having anyone else as my heroes. - Michael Jordan

Thanks guys, you got a lot of... a lot of... well, whatever it is, you got a lot of it. - Michael Jordan - Space Jam

Listen, this is a man's game. You can't play! - Michael Jordan - Space Jam

[출처: http://greatsayings.blogspot.com/2006/06/michael-jordan-quotes.html]









"I've missed more than 9000 shots in my career. I've lost almost 300 games. 26 times, I've been trusted to take the game winning shot and missed. I've failed over and over and over again in my life. And that is why I succeed."

 

"난 선수생활중 9000개가 넘는 샷을 넣지 못했다. 난 거의 300여 게임에서 패했으며 26번이나 결승 골 찬스를 놓치고 말았다. 난 실패와 실패를 거듭했다 난 그러했기 때문에 성공할수 있었다".

 

 

"I can accept failure, but I can't accept not trying."

 

"난 실패를 받아들일수 있다 그러나 도전하지 않는것은 받아들일수 없다"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3학년을 마치고

NBA 드래프트에 자신의 이름을 넣겠다고 발표했을때

마이클 조던은 단순히 '괜찮은' 선수에 불과했다.

2위 지명을 가지고 있던 포틀랜드는

당시 조던을 '클라이드 드렉슬러의 아류' 정도로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때 자신이 다니던 레이니 고등학교 농구팀에 들어갈수 없었다...

 

은퇴를 하고 야구를 시작했던 그를 보고 야구선수로

성공할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처음으로 NBA 우승의 맛을 보기까진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점수만 넣을줄 아는 선수라고 비난했다

사람들은 그를 팀 메이트를 생각하지 않는 선수라고 했었고

사람들은 그의 수비는 그의 공격과 반비례 한다고 비난했었다...

 

...

 

그러나

 

팀에 선발 되지 못했던 2학년 내내 그는 아침마다 개인훈련을 했었고

 

마이너리거 였던 조던은 손에 물집이 터져서 피가날지라도

새벽 6시 개인 배팅 연습은 빠지지 않았다.

 

그의 수비력을 비난했던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조던은 선수생활 시절에 9번이나

올 디펜시브 팀에 올랐고

87-88년 시즌엔

올해의 수비수 상까지 수상했다...

 

첫번째로 컴백한뒤 팀을 동부 컨퍼런스 결승까지 이끌었지만

당시 매직의 닉 앤더슨에게 가로채기를 당한 그는

'조던의 시대는 끝난것일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듬해 NBA 리그 역사상 정규시즌 최고 기록인

72승 10패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기며

다시만난 올랜도 매직을 4연승으로 가볍게 물리치며

다음 시리즈 상대였던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누르고 우승을 한다...


 

 

조던이기 때문에 가능한것이었을까?
가능하기 때문에 조던이었던것일까?
 


 
 
"My body could stand the crutches but my mind couldn't stand the sideline."
 
"내 육신이 목발을 짚고 서있을지라도 내 정신은 벤치에 머무를수 없다"
 
"Just play. Have fun. Enjoy the game"
 
"그냥 뛰어라. 흥미를 가져라. 게임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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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획이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한번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빨리 가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많은 것을 단기간에 이루려는 욕심은 결국 자신만의 기획이 될뿐 고객이 숨쉴 곳이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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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머리아프고 몸은 욱신하고 업무는 진행도 안되게 만드는 스트레스..
스트레스 조절이 어쩌면 다른 것보다 직장인에게는 중요하지 않을까 하네요.
모두 스트레스 이겨내는 올 한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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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매일경제

경기침체, 임금삭감, 명예퇴직, 실업, 취직전쟁, 붕괴, 연쇄살인…down, fall.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우울한 소식 천지다. 아침에 뉴스 켜기가 겁나고, 신문을 집는 것도 부담스러울 정도다. 가뜩이나 분위기도 어두운데 이따금 황사마저 몰려와 기분을 더욱 끌어내린다. 게다가 어두운 시절 등불 같던 존재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안겨주던 김수환 추기경마저 하늘나라로 가셨다.

매일매일 쌓이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떻게 이 분위기를 바꿔볼까. 성장이나 임금인상 같은 것을 기대하지 못하더라도 미래나 꿈, 희망, 평화, 웃음, 사랑 가능성 같은 보다 기분 좋은 단어로 우리 주위를 채울 수는 없을까.

탈춤 - 스트레스 해소의 한 장

하회별신굿에선 곱게 화장한 부네가 나와 허풍쟁이 양반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관중들을 깔깔대며 배꼽을 잡는다. 봉산탈춤에서는 말뚝이가 양반을 힐난한다. 바닥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하늘같은 양반네가 노리개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를 한다.

평생을 억압받고 살아온 민중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오뉴월 뙤약볕에서 김매고 꼴 베는 일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렇게 해서라도 세끼나 제대로 챙겨먹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요즘 사람들 같다면 짜증과 스트레스를 넘어서 분노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말뚝이의 한 마디에, 부네의 몸짓 하나에 수많은 사람들이 까르르 껄껄 웃으며 시름을 잊었다. 그 편안한 미소가 탈로 전해지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은 경제적으로는 그 때보다는 훨씬 넉넉하게 사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마음만 먹으면 예전 양반네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번지르르한 옷에 반짝반짝 광이 나는 자동차로 총알처럼 달려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네 얼굴에선 예전 조상들의 얼굴에 가득하던 여유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짜증과 초조 불안이 넘친다. 모두가 스트레스를 풀어내지 못해서다.

전문가들은 스트레스의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를 든다. 부정적인 뉴스는 물론이고 돈 걱정, 학교 걱정, 승진 걱정 등 일일이 들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개중엔 못된 상사나 헐뜯는 동료, 치고 들어오는 경쟁사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도 있겠지만 대개는 자신의 욕심이나 집착과 관련이 있다. 그렇게 보면 스트레스는 크게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그론데 전문가들은 스트레스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유쾌한 스트레스 활용법7’(21세기북스 간)의 저자인 제임스 로어는 스트레스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오해를 열 가지나 들고 있다. ‘스트레스는 나쁜 것이며 가능하면 피해야 한다’거나 ‘스트레스가 없을 때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거나 ‘스트레스는 건강에 해롭다’ 등이다.

전문가들은 스트레스 없는 사회나 삶은 생각할 수 없기에 적당한 정도의 스트레스는 활력소로 삼아 즐기라고 한다. 단기간의 스트레스는 긴장을 고조시켜 힘이나 에너지를 집중시키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다만 장기간 노출될 경우 몸과 마음의 질병으로 연결되므로 스트레스가 만성화돼 누적되지 않도록 적절하게 조절하는 방법을 익혀두라고 한다.

잠깐 동안의 스트레스 정도는 즐기면서 그때그때 풀어주되, 본인이 풀 수 없는 것은 아예 환경으로 인식하고 편하게 받아들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단기적이며 극복할 수 있는 스트레스 해소법으로는 휴식이나 수면, 음식 섭취, 운동, 수다 떨기 등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극복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에 대해선 욕심을 버리고 명상을 하거나 템플스테이를 통해 푸는 방법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직장인의 스트레스 풀기

스트레스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동일한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다. 쉬지 않고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린다든가 쉬지 않고 기계를 돌리는 것은 물론이고, 쉬지 않고 책상에 앉아 있거나, 쉬지 않고 정신을 집중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얼마 전 과로로 작고한 고 안철식 지식경제부 차관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작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런 일을 잠시나마 중단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다수의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법들을 모아봤다.

① 1시간30분~2시간에 한번은 무조건 자리를 뜬다. 10분 정도 자리를 떠나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면 다음의 1시간30분~2시간 동안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 스트레스를 풀고 업무 능력을 높이는 방법이다.

② 틈나는 대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지속적인 반복동작은 신체에 스트레스를 주고 이것이 정신의 스트레스로 연결된다. 신체의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빠르며 가장 좋은 방법은 스트레칭이다.

③ 전화는 서서 받아라. 전화 받는 동안 반복적 작업을 잠깐이나마 중단할 수 있다. 앉았다가 잠시 일어남으로써 기분전환과 함께 신체적 긴장도 풀 수 있다.

④ 오후의 10분은 무조건 낮잠을 자거나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한다. 잠시만이라도 업무를 잊게 되면 몸 전체의 리듬이 바르게 회복된다. 나머지 시간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⑤ 전화는 가급적 오후에 몰아서 하라. 전화를 하면서 잠시 두뇌의 피로를 풀고 오전에 쌓인 스트레스를 덜어낼 수도 있다. 오후에 어떤 전화를 할 것인지 미리 생각을 해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⑥ 식사는 조금씩 하고 대신 휴식시간에 간식을 먹는다. 세끼만 먹는다고 밥을 많이 먹으면 포만감을 느낄지는 모르지만 위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여유가 되면 밥을 조금씩 먹고 휴식시간에 간식을 곁들인다.

⑦ 적어도 한번은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 사무실 공기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밖의 공기만은 못하다. 잠시 사무실을 나갔다와도 두뇌는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될 것이다.

스탠포드대의 로버트 새폴스키 박사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간단한 노력만으로도 80%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 몸으로 격파한다

영화 ‘반칙왕’에서 은행원 송강호는 레슬러로 변신한다. 북한에선 모든 지식노동자에게 매년 일정기간 육체노동을 의무화하고 있다고 한다. 육체적으로 힘들어지면 정신적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수도원에서도 전통적인 육체노동을 하는 곳이 많다. 육체노동을 하면서 통제된 공간에서 생길 수 있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이처럼 육체노동이나 운동은 정신노동자들에게 특히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특히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쌓인 사람일수록 육체적으로도 격렬한 운동이 좋다고 한다.

웬만한 근로자들은 주말에 한번 등산을 가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의 상당부분을 줄일 수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조깅도 마찬가지다. 뛰다보면 ‘러너스하이’를 느끼지는 않더라도 스트레스는 풀 수 있다.

나이가 들어 태권도나 권투 등 몸을 직접 쓰는 운동이 어려운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몸을 쓰는 검도를 해도 좋다. 15~20분 정도면 ‘큰 머리’ 1000번을 연속으로 칠 수 있다. 그러면 온 몸은 땀으로 젖는다. 스트레스가 남아있을 수 없다.

모든 운동이 스트레스를 푸는데 좋지만 운동 그 자체는 또 하나의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몸을 혹사시킬 정도로 하지는 말라는 게 전문가들의 권고다.

맛있는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먹어치워?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이면 스트레스는 싹 가신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음식이 당긴다는 사람들이 많다. 먹는 것으로 육체적 보상을 해줌으로써 스트레스를 풀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단 것을 먹으면 혈당량이 올라가 기분을 좋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다만 스트레스를 풀려고 과식이나 폭식을 할 경우 비만으로 연결돼 새로운 스트레스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비만으로 연결되지도 않는 적당한 음식을 찾는 게 중요하다. 정신을 안정시켜주거나 긴장을 풀어주는 음식으로는 적당히 단 것 이외에 칼슘이나 비타민C, 요오드 등이 들어가 있는 음식이 좋다. 우선 시험 볼 때 미끄러질까봐 삼가는 미역이나 다시마가 좋은 음식이다. 요오드가 많이 들어가 있어 진정작용을 한다.

감자가 많이 들어가 있는 음식도 좋다. 비타민C와 B1이 많이 함유돼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혈당량을 천천히 끌어올리는 대추차도 권장식품이다. 혈당량을 조금씩 끌어올리기 때문에 오랜 시간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시켜주는데다 천연 신경안정제로 불면증에도 효험이 있다고 한다. 칼슘이 많은 멸치나 우유도 스트레스를 푸는 데 좋은 음식이다. 정신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특히 우유는 숙면을 취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비타민C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귤이나 바나나 딸기 등도 좋다.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쌓이면 아예 입맛을 잃어 대사의 균형이 깨질 수도 있으므로 평소 비타민C를 챙기는 것도 스트레스 예방을 위한 한 방법이다.

수다엔 스트레스도 굴복



가정주부들 가운데 전화통만 잡으면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은 사람들이 있다. 좋은 일이다. 그렇게라도 털어놓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쌓여 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비밀을 털어놓지 못해 가슴앓이를 하기도 한다. 특히 직장 내 스트레스의 경우 그런 경우가 많다.

예전엔 술자리를 통해 이런 스트레스를 풀 기회도 있었는데 요즘엔 그것마저 쉽지 않다.

가장 좋은 방법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즉시 농담으로 풀어내는 것. 사무실 분위기가 그 정도로 자유스럽다면 가장 권장할 만한 방법이다. 이때 유머를 곁들이면 더욱 효과가 있다. 웃다보면 스트레스를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모두 마음이 맑아진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블로그를 이용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자기 블로그에 있는 대로 쏟아내고 누군가와 그것을 공유하면 스트레스는 한발 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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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읽어서 내 자신도 닮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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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태양광으로 中 신흥갑부 된 스정룽 '썬텍' 회장

"10년 후 빌 게이츠(Gates)를 능가할 부자로 가장 유력한 사람은 누구인가?"
Weekly BIZ는 최근 방한(訪韓)한 로레인 볼싱어(Bolsinger) GE 환경사업 부문 부사장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는 "내가 아는 중국 기업인이 있는데, 지금 이름이 생각 안 나니 이메일로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이틀 후 답이 왔는데, 생소한 이름이었다.

스정룽(施正榮). 중국의 태양전지 모듈(태양전지 수십 개를 연결한 반제품 형태의 덩어리) 제조회사 썬텍(Sunt ech)의 회장으로 올해 45세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는 2006년 포브스(Forbes)의 중국 부자 랭킹 1위에 오른 인물이었다. 중국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른 부동산 부자들의 급부상으로 올 3월 발표에서는 9위로 밀렸지만, 태양광(太陽光) 에너지의 잠재력과 회사의 성장 속도를 감안하면 앞으로 언제든 1위를 탈환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올해 포브스 발표에서 그의 재산은 29억 달러(약 3조원)로 평가됐다. 그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썬텍 지분 33%를 갖고 있다.

스정룽 회장은 차세대 세계 최고 부자가 될 중요한 조건 두 가지를 갖추고 있다. 첫째, 신흥시장(중국)을 무대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IT를 능가하는 새로운 글로벌 성장 동력으로 주목 받고 있는 친(親) 환경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전 세계 부(富)가 흘러가는 두 갈래 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인 셈이다. Weekly BIZ는 이 점에 주목, 그와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를 만난 것은 지난 18일 중국 장쑤(江蘇)성 우시(無錫) 썬텍 본사에서였다. 그를 취재하게 된 계기는 그가 '빌 게이츠 다음의 부자'로 지목됐기 때문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빌 게이츠를 꼽았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단순히 돈만 번 게 아니라 기술(인터넷)과 비전으로 사람들의 삶을 바꿨기 때문"이라며 "태양광으로 인류의 생활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흔히 '선킹(Sun King)'이란 별칭으로 불린다. 태양광 에너지 분야의 선두 주자라는 점을 강조한 이름이다. 2001년 썬텍을 창업, 6년 여 만에 회사를 태양전지 모듈 생산 세계 1위, 태양전지 생산 세계 2위로 올려 놓았다. 올해는 태양전지 부문도 1위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2006년 인민일보는 "썬텍이 태양광 분야에서 세계와 중국의 격차를 15년 단축시켰다"고 보도했다.

스정룽 회장은 "태양광 에너지의 전망이 밝기 때문에 10년 이내에 엑손모빌(Exxon Mobil)이나 BP와 같은 석유 회사를 앞설 수 있을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화석(化石) 연료에 기반한 현 경제체제에서 엑손모빌은 세계 최대 시가총액을 자랑하지만, 머지 않아 저(低) 탄소 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닥칠 경우 그 70분의 1밖에 안 되는 썬텍이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썬텍의 성장 속도는 눈부시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태양전지를 본격 양산하기 시작한 2003년 1389만 달러였던 매출이 지난해 13억4826만 달러로 4년 새 100배 가까이 증가했다. 2002년 10㎿였던 태양전지 생산 능력은 올해 그 100배인 1GW로 늘어날 계획이다.

그는 기존의 중국 부자들과 다른 점이 많다. 호주에서 태양전지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해외 유학파이고, 저임금 노동집약적 산업이 아닌'하이테크(태양전지)' 분야를 파고 들었다.

―짧은 기간에 고속 성장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첫째, 제때 투자를 했습니다. 5~6년 전부터 독일과 일본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태양광이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는데, 그 시기를 잘 탔습니다. 둘째, 핵심 기술이 좋습니다. 저는 호주에서 유학하면서 앞선 태양전지 기술을 익혔죠. 셋째, 중국에서 저비용 원가 구조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땅 임대료와 인건비가 싸고, 부품과 원료를 중국 현지에서 싸게 살 수 있습니다. 정부의 지원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중국 최고 부자인 당신에게 부(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돈은 일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생기는 부산물입니다. 지혜와 근면의 보답입니다. 저는 젊은 사람들에게 '돈을 좇아가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자신의 수입이 얼마인지 따지는 시간에 어떻게 하면 창조적이고 혁신적으로 나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호주에서 편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중국으로 왔나요?
"저는 편안한 생활에 만족을 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도전 없는 삶은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머릿속의 지식을 상업화하고 싶었습니다. 호주에 있으면서 중국으로 태양광에 대해 강연을 하러 여러 번 오갔는데, 중국은 제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유학을 떠나올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죠. 중국 기업도 하이테크 분야에서 글로벌 회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둥그스름한 얼굴, 파란색 반팔 캐주얼 티셔츠에 옅은 회색 바지….
중국
최고 부자인 스정룽(施正榮) 썬텍 회장이지만, 겉모습만 보면 중국의 어느 거리에서나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안내하던 썬텍 직원이 소개해주지 않았다면, 혼자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가 일반 직원인 줄 알고 그냥 지나칠 뻔했다. 그는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서 얘기했으며, 목소리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는 태양광(太陽光) 에너지 기술로 중국 최고 부자 반열에 올랐지만, 태양광에 입문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호주 유학 시절 학비와 생활비가 모자라 돈벌이가 될 만한 일을 찾아 다녔고 카페에서 햄버거 굽는 아르바이트도 해봤습니다. 하루는 학교에서 '연구 조교를 구한다'는 게시물을 보고 그 교수가 누군지도 모르고 찾아갔는데, 알고 보니 태양전지의 세계적 권위자인 마틴 그린(Green) 교수였어요." 뒤에 그는 전공을 레이저 물리에서 태양전지로 바꿨고, 태양광 박사가 됐다.


썬텍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다. 2005년 12월 중국 민영기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영국·미국·호주·독일·스페인·한국·일본에 법인을 세웠다. 현재 썬텍의 COO(최고운영책임자)는 영국인, CTO(최고기술책임자)는 호주인, CSO(최고전략책임자)는 미국인이다. 그는 "호주에서의 생활이 사업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며 "서양 사람의 사고 방식과 의사 소통 방법, 비즈니스 요령을 배웠다"고 말했다.

썬텍은 지난 4월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입구에 100KW짜리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설치했다. 경기장 운영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게 된다. '그린 올림픽'을 표방하는 베이징올림픽에 태양광 발전 시스템 공급 업체로 썬텍이 선택된 것은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왜 태양광입니까? 신재생에너지(용어설명) 가운데에는 풍력이나 바이오에너지도 있지 않습니까?

"독일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까지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전력의 30%가 태양광 발전으로 공급될 전망입니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중국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의 15%를 신재생 에너지로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데, 그 중심은 태양광 에너지입니다. 태양광의 수요가 무궁무진합니다. 아직까지는 경제성이 문제지만, 2012년이 되면 태양광 발전 비용이 화석(化石) 연료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비용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태양광은 전 세계에서 통할 것입니다(太陽能全通天下). 앞으로도 태양광에만 집중할 것입니다."

■시의적절한 사업 아이템과 타이밍, 정부 지원이 성공 비결
썬텍이 급속도로 성장한 배경에 대해 해외 언론들은 "적절한 때, 적절한 분야에 진출해 하이테크(태양전지)와 저렴한 노동력을 이상적으로 결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스 회장은 여기에 '정부 지원'을 보탰다.

2001년 귀국할 때 그는 태양전지 관련 특허를 11개나 갖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에 회사를 차리려 하니 돈이 문제였다. 그때 가능성을 본 우시(無錫) 지방 정부의 도움을 받아 8개의 국유기업으로부터 600만 달러를 유치할 수 있었다. 여기에 호주에서 갖고 온 현금 40만 달러를 보태 회사를 세웠다.

그는 2005년 미국 증시 상장으로 4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 회사를 키웠다. 미국에 상장할 때도 국유기업들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중국 법규상 중국 정부 지분이 있는 회사는 미국 증시에 상장할 수 없도록 돼 있었기에 스 회장은 국유기업들에 갖고 있던 주식을 다 팔아달라고 설득했고, 국유기업들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현재 썬텍은 정부 관련 지분이 전혀 없는, 100% 민영회사로 돼 있다.

―어려운 시기도 있었겠죠?
"첫 3년이 특히 어려웠습니다. 돈도 부족했고 사람 대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초창기에 2만 위안을 주는 조건으로 청소 용역회사와 계약을 했는데, 그 회사가 지급 능력을 믿지 못한 나머지 생산 설비를 담보로 잡겠다고 떼를 쓰기도 했습니다."

―요즘 가장 큰 걱정거리는?
"태양전지 원료인 폴리실리콘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태양전지 생산이 늘면서 폴리실리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공급은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한 썬텍의 대책은 폴리실리콘 회사에 투자를 해 물량을 확보하거나 장기 계약을 하는 것이다. 스 회장은 이를 '실질적 통합'이라고 불렀다.

썬텍은 3월 폴리실리콘 제조업체인 러시아 니톨 솔라에 1억 달러의 지분 투자 계획을 밝혔으며, 한국의 폴리실리콘 생산 업체인 동양제철화학과는 내년부터 2016년까지 8년간 장기 공급 계약을 맺었다. 업계에서는 썬텍이 장기적으로 폴리실리콘을 포함한 원료와 발전 설비에 이르기까지 태양광 발전의 전 분야에 진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가는 큰 생각을 하는 사람"
그의 검정 블랙베리폰으로 전화가 걸려와 인터뷰가 잠시 중단됐다. 그는 "어디를 가든 이 블랙베리폰이 내 비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실무적이고 실용적인 스타일"이라고 했다.

―사업가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크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Think big). 단순히 돈만 보지 말라고 얘기하겠습니다. 국가와 사회, 인류에 봉사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태양광으로 환경 보호에 기여한다고 자부합니다. 크게 보면 사업 기회가 더 잘 보입니다. 돈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시간 중 20%는 정치인을 만나거나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지구 온난화와 에너지 이슈 같은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는 데 쓴다고 말했다.

3조원 대의 갑부인 그이지만, 돈을 쓸 시간은 부족한 듯했다. 그는 하루 평균 10~12시간 일한다. 별다른 취미도 없다. 1년 중 절반 정도는 해외에서 보낸다. 그는 아침 일찍 40분 정도 빠른 속도로 걷는 것이 건강 유지 비결이라고 했다.

―좌우명은 무엇입니까?
"'내 자신을 넘어서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한테도 기회가 있으면 저 사람처럼 성공할 텐데'라고 핑계를 댑니다. 하지만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회만을 보고 불평을 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생각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금(金)은 어디 있든 늘 빛이 납니다(是金子總會發光). 저는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썬텍의 중국식 회사 이름은 '우시상더(無錫尙德)'다. '우시 지역에서 과학기술을 받들고 덕으로써 신용을 얻는다(崇尙科技 以德取信)'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한국 시장에도 적극 진출하고 있으시죠?
"지난 2월 한국에 판매 법인을 세웠습니다. 한국 대기업을 상대로 한 태양전지 모듈(용어설명) 판매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5월 효성이 완공한 삼랑진 태양광발전설비에 3㎿를 공급했고, 9월 삼성에버랜드 태양광발전소에 10㎿를, 10월 LG CNS에 1.5㎿를 공급할 예정입니다. 한국은 반도체 기술이 좋아 제조 과정이 비슷한 태양전지 분야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한국이 전체 파이를 키우면 나눠 가질 몫도 더 커지겠죠."

2005년 12월 14일 썬텍이 뉴욕 증시에 상장하던 날 주가는 21.20 달러로 마감했다. 이것이 작년 말에는 90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올 들어 급격히 떨어져 6월25일 현재 41.38달러를 기록했다.

―올 들어 주가가 급락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단기적 요인으로 봅니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로 증시가 불안정한 상태인데다, 독일·스페인 등지에서 태양광 발전에 대한 정부 지원이 줄어 투자자들이 단기적으로 전망을 어둡게 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태양광 산업의 미래는 밝고 주가가 회복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춘추전국시대 범려(范 & #65533)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제(齊)나라에서 재상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마다하고 거리로 나가 사업가로 성공했다. 중국 언론은 호주에서 태양전지 연구원으로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사업가의 길을 선택한 스 회장을 범려에 비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스 회장은 "범려와의 비교에 대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나는 내 할 일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 태양광(太陽光) 발전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 방식을 뜻한다. 태양전지에 햇빛을 쪼이면 태양전지 표면에 전자가 생겨 전류가 흐르는 광전 효과(photovoltaic e ffect)를 기본 원리로 하고 있다.

→ 신재생(新再生) 에너지
신(新) 에너지와 재생(再生) 에너지를 통틀어 부르는 말. 신 에너지는 기존의 화석연료를 변환시켜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이는 수소, 연료전지 에너지 등을 의미한다. 재생 에너지는 햇빛·바람 등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태양광·풍력·조력·지열 발전 등을 말한다.

→ 태양전지 모듈

태양 전지판 한 개에서 얻을 수 있는 전기의 양은 대단히 적다. 이것으로는 꼬마전구 하나를 겨우 밝힐 수 있다. 좀 더 많은 전기를 얻기 위해서는 태양 전지판을 여러 개 연결해야 하는데 이렇게 한 것을 태양전지 모듈이라고 한다.


◆ 스정룽 회장은
1963년 중국 장쑤(江蘇)성 양중(揚中) 출생. 1986년 중국과학원 상하이 광학정밀기계연구소에서 레이저 물리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1988년 국비 장학생으로 호주에 건너가 뉴사우스웨일스대학에서 공부했다. 태양전지 분야 권위자인 마틴 그린(Green) 교수의 지도를 받아 1992년 태양전지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 시드니에 설립된 태양전지 연구 회사 '퍼시픽 솔라'에서 기술 이사로 일하다 2001년 귀국해 우시(無錫)에 '썬텍'을 창업했다. 지난해 썬텍은 13억4826만달러 매출과 1억 7128만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직원수는 1만여 명이다. 그는 현재 상하이(上海)에 거주하고 있지만, 1993년 얻은 호주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스 회장은 "중국은 이중 국적을 인정하지 않는데, 호주 국적이 전 세계를 다니는데 편해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으로는 부인과 두 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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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서.. 골방에 있기를 좋아하던 이외수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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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향신문]
춘천에는 호수와 막국수, 그리고 이외수가 있다는 말이 있었다. 춘천3절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이외수는 도드라지는 존재다. 먼저 특이한 외모와 습벽이 그를 기인으로 불리게 한다. 방문에 못질해 스스로를 몇달씩 가둬놓고 죽기살기로 글을 쓴다. '열혈독자만 40만명'이라는 얘기는 이런 그의 치열함의 소산일 것이다.



↑ 이외수씨는 평소답지 않게 왜 정치 토론장에 뛰어들었느냐는 질문에 “작가의 양심을 갖고 불의나 한심한 정책을 질타하게 됐을 뿐”이라며 “어지러운 정치가 마음속에 지옥불을 지피게 한다”고 말했다. 화천 | 남호진기자

하지만 그의 글에서 정치색을 찾기는 어렵다. 초지일관 정신과 영혼의 문제를 소재로 삼아왔다.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고, 그 내면이 성장하는 모습을 그는 그렸다. 현실과 물질에만 집착하는 때일수록 정신과 영혼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문화활동이 사회활동이 되어서는 안된다거나, 문학이 순수성을 잃으면 안된다는 그의 지론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이 문명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 특히 정치와는 담을 쌓을 것 같은 이외수가 지금 정치 토론장에서 뜨고 있다. 그것도 인터넷을 통해서다. 지난해 대선 이후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독설 어린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정책에 대해 '수치감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무식을 갑옷처럼 착용하고 계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나' 등으로 표현한 그의 어록이 네티즌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인터넷상에서 '꽃노털 옵하'('꽃미남처럼 아름답게 늙은 오빠'란 뜻)로 불린다. 이순을 넘긴 나이에도 세월에 풍화되지 않고 영원히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그가 왜 그토록 이번 정부에 날카로운 화살을 퍼붓고 있는 것일까. 그는 "차분히 본업에만 몰두하고 싶지만 한심한 정치가 자꾸 원고지 밖으로 나를 끌어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늘은 크레파스 색깔 그대로의 하늘빛이고, 나무는 진초록으로 마냥 푸른 곳, 강원 화천군 감성마을로 그는 집을 옮겼다. 소설가 이외수는 이렇게 천국 같은 곳에 살아도 어지러운 정치가 마음속에 지옥불을 지피게 한다며 컴퓨터 앞에 앉아 숨을 몰아쉬며 자판을 두들겨대고 있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 작가의 정치풍자가 화제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계속 비판하는데 뭐가 그리 못마땅합니까.

"최초로 질타의 글을 올린 것은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국사·국어까지 영어로 수업하겠다는 정책발표를 보고서였습니다. 일반인이 아닌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의 발언이라 충격이 더욱 컸죠. 그건 우리 고유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전혀 없고, 한글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는 증거입니다. 그 무렵 유엔에서는 세계적 언어학자들의 4년간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말은 있어도 글은 없는 나라에 가장 배우기 쉽고 실용적이며 과학적인 언어를 찾아내 선물하겠다는 취지의 연구였는데 한글이 가장 이성적인 언어로 뽑혀 그 우수성을 입증받았습니다. 언어학자들은 한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축복받은 민족이라고 하고 미국의 한 언어학자가 한글날 자기 아파트에 태극기를 걸어 인류 최고의 언어에 경배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입니다. 조상이 물려준 최대의 문화유산인 한글을 푸대접하고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가르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죠. 교육이 뭔지 안다면 그걸 실제 활용할 때 얼마나 문제점이 큰지 알 겁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고'를 어떻게 영어로 가르칩니까. 한글의 풍부하게 발달한 수사, 관용어, 의태어 등은 영어로 번역하기 어렵습니다. 시원하다, 서늘하다, 쌀쌀하다, 선선하다, 써늘하다 등 각각 느낌이 다른 말도 이 영어에선 그저 Cool 하나로 해결되는데…. 난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지나가는 말로 한 걸 기자들이 과장되게 기사화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즉흥이 아니라 진심이고 진짜 시행하려해서 기분이 더 나빴습니다.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억울했죠. 영어보다 먼저 한글을 사랑하고, 우대하고 투자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영어 못하면 인격적으로 문제 있고, 영어 잘하는 게 지성의 척도인가요. 우리나라 최고 어른으로 먼저 한글에 대해 관심을 갖고 투자한 다음, 영어에 집중해도 되는데 대통령부터가 한글을 무시하고 천시하니 기분이 나쁜 겁니다."

-전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비호감'이었습니까?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아닙니다. 정치와 무관했고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정치 비판이 아니라 한글 비하에만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실망입니다. 어떻게 대통령이 영어는 그렇게 강조하고 자주 쓰면서 매번 맞춤법을 틀립니까. 물론 그 연세면 틀릴 수도 있죠. 글밥 먹고 사는 문인들도 틀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국의 대통령이 상습적으로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틀리면 국가나 국민의 격이 떨어집니다. 어느 정도 지나면 고쳐야 하는데 시종일관 틀리는 게 문제입니다. 방명록에 쓰기 전에 미리 물어보든지, 주위에서도 조언해주는 것이 옳죠. 또 주위에서 잘못을 지적해주면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포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충고와 조언을 하는 분들이 없으면 배가 산으로 가도 모릅니다. 쓴소리하고 합리적 방안을 제시하는 것을 귀담아 들어야죠. 대통령 본인뿐 아니라 주변이 더 문제더군요. 국민들이 이렇게 화가 나있고 실망하는데 그걸 수용할 생각도 않을 뿐 아니라 의지조차 보여주지 않아요. 자기들 방식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불도저식이라는 것입니다. 가끔은 부드럽게 빗자루를 들고 때론 먼지떨이개로 털기도 해야 하는데 유리창 닦을 때도 불도저를 쓰면 어떡합니까. 그런데 관료들은 대통령 앞에선 고개만 숙이고 있으니…. 작가의 양심을 갖고 불의나 한심한 정책에 질타를 할 뿐이죠."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자신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걸 국민들이 잘못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국민 다수가 선택했지만 다수가 반드시 옳고 정의로운 것은 아니거든요. 이번 촛불집회는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이 아니라 정부에 바라는 것을 집회로 '표현'한 것이라고 봅니다. 역사를 진화시키기 위해 아름다운 촛불로 평화롭게 표현하려는 것을 그렇게 강경하게 대응하면 안되죠. 비록 피켓에 과격한 구호들이 적혀 있고 일부에서 자극적 발언을 하더라도 감정 대응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사랑과 포용의 정신을 보여줘야 합니다. 시위 참가자들도 갈수록 비폭력적 평화적이 되려 하는데 왜 강공일변도로 대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 대통령을 직접 만나면 무슨 당부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까.
"뭐 만날 일도 없고 내가 얘기한다고 들을 분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분 지지자들은 나보고 '정신병원에 가라' '좌빨(좌익빨갱이)' 등 원색적 비난을 하더군요. 어쨌건 그분이 대한민국이 상류층만 사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 우리의 건국과 교육이념이 홍익인간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해야 한다는 것을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또 모든 정책과 발언에 숙고를 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죽으면 같이 죽고 살면 같이 살자고 주장하는데 그건 국민이 일치단결했을 때 가능한거고 국민은 정부 지시를 따르면 죽는 걸로 받아들이는데 혼자 정해놓고 그 속으로 무조건 들어오라고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독재의 냄새까지 풍깁니다. 제발 서두르지 말고 충분히 숙고하고 논의를 거친 후에 제시하길 바랍니다. 대운하도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 창안한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고 나가 진짜 실현하려는 것 같아 억지스럽고 걱정스럽습니다."

-촌철살인의 정부 비판 덕분에 인터넷짱으로 등극하셨던데, 언제 인터넷을 시작했습니까.
"10년 전까진 엎드려서 글을 쓰는 재래식 가내수공업자였죠. 배게 끼고 알 품 듯 글을 썼습니다. 자세가 나쁘니 척추에 무리가 가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글쓰는 자세부터 바꾸라더군요. 어떻게 하면 허리를 펴고 글을 쓸까 고민했는데 둘째 아들이 컴퓨터로 쓰라고 권유하기에 무조건 컴퓨터를 샀죠. 처음엔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너무 답답하고 막막해서 펑펑 울었습니다. 도대체 'ㄱ'이 어디 있고 'ㅏ'가 어디 있나 자판만 살피고 '안녕!'을 치는 데만 30분 걸리고, 표현도 안떠오르고…. 이러다 글을 못쓰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들더군요. 아들이 채팅하면 타자속도가 빨라진다고해서 채팅을 시작했죠. 한번 어디 빠지면 열중·집중하는 천성 덕분에 불굴의 탐구정신으로 야동사이트를 들쑤시고 다니며 하루 10여시간을 계속 채팅한 결과 인터넷 세상에 눈을 떴고 독수리 타법으로 1분에 300타를 칩니다. 한때는 천리안에서 너무 많이 채팅한다고 건강에 주의하라고 전화올 정도였죠."

"과거엔 가슴 아리는 글 썼지만, 이젠 행복 주는 글 쓰고싶다"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소설가이면서 한글을 파괴한다고 비난받는 인터넷 용어를 자주 쓰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요.

"언어가 갖춰야 할 기본을 갖춘 신선한 인터넷 표현에는 감동합니다. 자연계도 항상 새로운 것이 태어나고 낡은 것이 멸종하듯 언어도 기존의 것이 위협받기도 하고 새로 나타나기도 하고 조화롭게 어울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즐거움이 되기도 합니다. 책의 제목으로 쓴 감탄사 '하악하악' 등의 표현은 즐기지만 자음만 나열하는 것이나 이모티콘을 남발하는 것, 품격 없는 말들은 쓰지 않습니다. 줄임말도 안 쓰는데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는 휴머니티가 느껴지더군요. 우리 젊은이들은 놀랄 만큼 커다란 잠재력을 갖고 있는데 우리 교육제도가 그걸 못살려줍니다. 인생에선 창의력이 가장 중요해요. 찍어낸듯한 인생, 남의 것을 흉내낸 인생으로 살면 죽을 때 반드시 후회합니다. 자기 인생을 창조하려면 창의력 중심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창조적 능력을 키우는데 관심과 투자가 선행되어야하는데 그게 전적으로 무시되고 있어 답답하죠. 인터넷용어는 창의력이 돋보이는 말이 많아 긍정적 효과가 큽니다."

-책의 독자들도 홈페이지 회원들도 대부분 젊은층인데 62세의 어르신이 그들과 소통하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수시로 채팅을 하고 인터넷 서핑을 하며 요즘 젊은이들은 무엇에 관심 있고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언어를 쓰는지 공부합니다. 요즘은 초딩(초등학생)과도 대화가 통해요. 초딩은 정말 판독하기 상당히 어려운 세대예요. 똑똑한 애들은 대학생보다 더 논리적이고 조리있게 표현합니다. 물론 막 나갈 때는 저항할 방법을 모르겠더군요. 대략난감!(하하)"

-인터넷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이 뭡니까.
"내가 몰랐던 세상을 발견하는 거죠. 나한테 안티가 있다는 것도 인터넷 악플을 통해 알았어요. 그건 내가 그만큼 유명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반면 의외로 골수독자도 많더군요. 운동선수들이 계속 끝없이 연습을 하고 피아니스트도 매일 피아노 연주를 연습하듯 작가도 매일 석줄이라도 써야 언어감각이 녹슬지 않습니다. 젊은이들과 계속 접하고 놀아야 그들이 읽을 글을 쓸 수 있어요. 처음엔 젊은층과 대화하는 것이 쑥스럽고 화도 나고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속상했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소통이 가능합니다. 첫째며느리도 인터넷에서 발굴(?)했습니다. 나의 골수독자로 내 홈페이지를 24시간 지키는데 자기가 바쁘면 친구라도 대신 자리를 지키게 만들 만큼 열성이더군요. 방송작가 출신인데 글솜씨가 탄력있어요. 큰아들이 보고 호감을 느껴 만나더니 결혼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집사람과 죽이 잘 맞아 떨어져선 죽고 못살아요. 모르는 음식도 자기가 한번 해보겠다고 하고, 아들이 영화감독 수업 중인데 벌이가 신통치 않아도 신경 안 쓰고 명랑합니다."

-인터넷에서도 어른 역할을 하나요.
"악의적 악플이나 치졸한 댓글에는 야단을 칩니다. 반항하는 쪽도 있고 반성하는 쪽도 있죠. 반항하는 애들은 반성할 때까지 글로 팹니다. 감정을 갖고 나무라는 게 아니라 충고, 질타를 하면 대개는 알아들어요. 제대로, 바르게 꾸짖으면 변화를 일으키죠. 그래도 반항하는 이들은 자기들끼리 나서서 나무라며 자정 역할을 해요. 젊은층은 더 나아지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 미래도 희망적으로 봅니다."

-'감성마을 촌장'을 자임한다는데 이곳엔 언제 왔습니까.
"춘천에서 20년을 살았는데 집 주변에 공사가 많아지면서 천식이 심해졌어요. 매일 기침을 하고 숨쉬기도 어려우니 글이 안 써지더군요. 그런데 화천군수가 무조건 그냥 와서 작품생활에만 전념하라며 계획서를 갖고 왔어요. 국내 생존작가 최초로 화천군에서 작가를 위한 마을단지를 조성해 준거죠. 화천군이 군부대밖에 없어 열악한 환경이니 강원도에서 오랜 산 나를 초대해 문화단지로 살려보라는 겁니다."

-26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걸로 아는데 화천군에는 어떤 도움을 드립니까.
"자칭 감성마을 촌장으로 '화천지역 법질서 확립과 경제살리기 홍보대사'를 맡아 막중한 사명감과 책임을 느낍니다. 지역문제를 다루는 군민 공청회에도 참가하고, 부대 내 관심 사병을 찾아가 감성교육도 합니다. 어린 사병들에게 군대가 너희를 보석으로 만들어 줄 것이고, 군생활을 가치 있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말합니다. 내가 워낙 힘겹게 군대생활을 해서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습니다. 또 각 단체나 기업체에서 강의 요청을 받아도 난 갈 수 없으니 이곳에 와서 받으라고 합니다. 여름과 겨울에는 '모월당'에서 문학연수를 하는데 한달간 머물며 창작수업을 합니다. 난 무료로 지도하지만 숙식은 화천군 다목리에서 해결하라고 합니다. 강의를 듣건, 방문을 하건 날 찾아오는 이들이 이 동네 가게에서 음료수 한 병씩 사지 않겠습니까. 1년에 4000여명이 나를 보러 온 덕분에 신문에 감성마을의 경제효과란 기사도 났더군요. 다행히 성공사례로 평가되어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벤치마킹하겠다며 자문을 하러 옵니다. 황석영, 임동창씨 등을 모셔갈 계획이라던가요."

-직접 생활하시는 모습을 보니 정말 부지런히, 성실하게 사시네요.
"내가 참 오해를 많이 받아요. 머리랑 수염 기르고 지저분하게 보이는 생김새만으로 보편적 모범에선 벗어날 것이란 편견을 갖는 이들이 많죠. 가정을 안 돌볼거다, 세상을 무질서하게 살 거다, 내멋대로 사람을 함부로 대할 것으로 여겨지나봐요. 하지만 난 기본을 매우 중시하며 질서를 지나치게 신경써서 지킵니다. 과거 술많이 먹었을 때는 술김에 인사불성이 되어 약간의 경범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늘 규범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물론 가난했을 때는 목욕탕에 갈 돈도 없어 잘 씻지 않았어요. 내 발뒤꿈치가 너무 새카맣고 딱딱하게 굳어 있어 맨발인데도 김성동씨가 그게 구두굽인 줄 알고 자꾸 구두벗으라고 했던 일화가 아직까지 전해질 정도죠. 요즘은 자주 씻습니다. 가족관계도 매우 화목한 편입니다. 내가 무명 시절, 춥고 배고플 때 가족들을 너무 고생시켜 이제는 가족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친하게 지내려 합니다. 문학사에 남는 작가들을 보면 자식들이 아버지를 좋게 평가하는 경우가 드물죠. 예술한다며 가정을 내팽개쳤다고 원망합니다. 보통사람이건 예술가건 제일 중요한 것은 기본입니다. 가정 및 사회생활의 기본을 지키고 예술의 업적을 찾아야 그게 훌륭한 겁니다."

-어떤 이들은 이외수씨를 가장 저평가된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대중에겐 매우 사랑받는 작가인데 쓴 책마다 꾸준히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유가 뭘까요.

"내가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그냥 대충 쓴 게 아니라 갈고 닦아 쓴다는 것을 독자들이 알아보는 거죠. 노력을 기울이면 신뢰를 얻습니다. 이외수 책을 집어들면 후회하지 않는다란 확실한 믿음을 갖는 독자들이 많으니 고맙죠. 그것 역시 내가 평소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열심히 습작한 결과입니다.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는 그림 연습을 열심히 해야지 고흐처럼 자기 귀를 먼저 자른다고 위대한 화가가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좌절할 때도 많습니다. 우리가 수시로 쓰는 속담을 볼 때 그래요. 다양한 수사법, 절묘한 비유어가 다양하게 구현된 속담을 보면 과연 내 책의 몇 구절이 수십년이 지나도 몇 개가 될까 싶습니다. 작가로서 직접 체험도 하지만, 문장 하나로 반성과 개선의 역할, 에너지의 놀라운 효용성을 가진 속담을 공부하면서 문장을 가다듬습니다. 글을 쓸 때 인위적인 것은 가급적 피합니다. 기교를 부린 문장은 10년만 지나도 낡아보여요. 대체물이 나오거나 사회가 발달해 이미지 자체가 달라지기 ��문이죠. 그래서 변함없는 자연을 가져와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 꿈꾸는 식물, 들개 등의 작품은 20년이 흘러 다시 출간했어도 독자들로부터 신작처럼 신선하게 느껴진다는 평을 들어 기쁩니다."

-감성마을에 와서 40년을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면서요.
"하루 8갑까지 피웠는데 호흡곤란이 느껴져 끊었습니다. 가족들이 모르는 사이에 혼자 심장마비로 죽을 수 있겠구나란 공포감을 느꼈어요. 평생 몸과 마음이 자유롭게, 다양하게 살았으니 언제라도 세상을 떠날 수 있지만 제일 속상한 건 그렇게 많은 글을 쓰고 소설만 20여 작품을 썼는데 대표작이라고 내세울 게 없더군요. 건강해야 대표작을 쓸 것 같아 담배를 끊었습니다. 100일까지는 호흡곤란, 그치지 않는 기침, 내장 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고름 등 금단현상과 사투를 벌였어요. 그래도 명색이 작가인데 인내심과 절제력을 보여줘야죠. 이젠 내 세포와 의식들이 모두 세척된 것 같아요. 몸을 리모델링한거죠."

-건강해지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그림도 그리고 작곡도 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작가로서 대표작으로 남길 작품을 써야죠. 내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은 읽을 때 즐겁고 행복하고 책을 덮고 나면 그 여운이 오래 가는 겁니다. 과거 내 작품들은 모두 가슴이 아리고 허망해지는 것들만 써서 책을 읽고 자살충동을 느끼는 이들도 많았어요. 이젠 독자들이 행복해지는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내 경우 '자기 앞의 생' '어린 왕자' '아낌없이 주는 나무' 등을 읽으며 행복했습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그런데 요즘 정치가 날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이 아름다운 감성마을에서 즐겁게 창작에만 몰두해 독자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나눠드리고 싶은데, 이 정치가 자꾸 날 원고지 밖으로 끌어냅니다. 세상사에 흥분하지 않고 좋은 글만 쓰고 싶은데…."

1976년 소설데뷔 '깎은듯한 언어' 정평

열혈독자 40만명…화천 감성마을 촌장

작가 이외수는 기인으로 불리지만 그의 생활은 의외로 모범적이다. 미모에 손님들에게 밥인심이 후한 부인, 두 아들과 함께 지극히 정상적이고 화목하게 살고 있다. 부인의 생일엔 직접 미역국을 끓인다.

1946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 다니다 춘천교대를 자퇴한 후 홀로 문학의 길을 걸었다. 76년 '세대'에 중편소설 '훈장'으로 데뷔, '꿈꾸는 식물' '장수하늘소' '칼' '괴물' 등의 소설을 썼다. 30여년이 지난 최근 다시 초기 작품을 재발간할 만큼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소설 외에도 우화집, 에세이집, 시화집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왔고 그림 그리기와 작곡에도 남다른 실력을 보여준다. 대학 중퇴 후 시골 초등학교 분교에서 수위로 생활할 때 월급으로 학생들에게 선물을 나눠준 일을 기억하는 지인들이 많다. 그의 홈페이지 작가 약력엔 초등학교 교사가 아니라 '초등학교 고용인' 노릇을 했다고 적혀 있다.

작가로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글에 대한 자긍심과 사랑이 너무 커서 정부가 지정한 공휴일이 아님에도 한글날은 혼자 무조건 쉰다. 강원 화천군 감성마을에서 '부패'가 아니라 잘 '발효'한 어른이 되기 위해 끝없이 감성을 훈련하며 독자들과 책·인터넷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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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글이 정치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어제 100분토론 보다가 하도 답답해서 TV를 꺼버렸는데 이후 시청자가 아래와 같이 전화로 했더군요.
요목조목 우리 국민의 마음을 담은 말이여서 못보신 분들 그리고 혹여 요즘  TV만 틀면 답답하신 분들의
맘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드리고자 올립니다.

저도 어제 답답한게 이 내용으로 확 해소되네요.
(참.. 이글은 절대 정치적으로 논쟁을 위한 것이 아닌 요즘 의견에 대한 명쾌한 글이라 생각되어 올립니다. 정치적 논쟁은 참아주세요!!)





광주 양선생님 어록 전문
[출처] 광주 양선생님 어록 전문
양: 여보세요.
손: 아, 예, 예, 누구십니까?
양: 네, 여기 광주에 사는 양석우인데요.
손: 예, 양선생님, 어떤 의견이신가요?
양: 네, 오늘 담화문에 대해서 좀 느낀 점을 말씀드리고 싶은데.
손: 예.
양: 오늘 담화문 들을 때 이게 생각이 나드라구요. 대통령께서 미국에 가셔가지고 자신은 대한민국의 CEO라고 말씀하셨단 말입니다.
손: 예.
양: 그런데 CEO라면 회사가 있어야 되잖아요.
손: 예.
양: 저는 대통령이 CEO로 있는 회사는 우리나라에 있어서 국민 전체가 아니라 한나라당과 정부, 청와대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국민은 직원이 아니라 소비자인거죠. 그래서 국민의 건강과 주권, 경제성장같은 그런 좋은 서비스와 제품들을 우리 국민들에게 정부에서 제공을 해줘야 되는 거죠. 그런데 지금 대통령께서는 국민들을 자기가 채용해가지고 일시키고 언제든지 짜를 수 있는 그런 직원 정도로 생각하는 것같은 그런 인상을 국민들이 받는다 라는 거죠. 국민들이 계속해서 대운하든지, 소고기 문제든지 계속 반대를 하면 어린애들이 몰라서 그런다, 아니면 정치적으로 이용해먹는 세력이 있다, 아니면 왜 설명을 계속해도 못 알아 듣는가 이런 식으로 계속 국민들을 말 잘 못 알아듣는 그런 어린애같은 취급을 계속 해왔지 않습니까?
손: 예.
양: 일단 오늘 유감표명을 하셔가지고 그거는 제가 반기는데요. 그런데 실제로 무엇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다 라는 그런 게 없었기 때문에
손: 예.
양: 그게 굉장이 문제구요. 지금 우리나라 시국을 CEO라고 하셨으니까 제가 자동자회사로 예를 들면요. 우리 국민인 소비자가 자동차를 샀단 말입니다. 근데 의자가 조금 불편해요. 그게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예요. 그래도 참았어요. 핸들링이 안 좋아요. 영어몰입교육이예요. 그것도 참아요. 엔진이 힘이 없어요. 대운하 정책이에요. 그래도 참았단 말이예요.
손: 예.
양: 그런데 이 차가 브레이크가 안 들어요. 이게 소고기 문제예요.
손: 예.
양: 그래서 소비자 입장에서 지금까지 다 참겠는데 더 이상은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하자를 발견을 했단 말이예요.
손: 예.
양: 그래서 소비자인 국민이 이 자동차를 리콜을 시키든, 환불을 해주세요 하는데, 회사에서는 아이고 뭘 모르는 소비자가 좋은 상품 불평만 한다 라고 이렇게 말을 해왔다 라는 거죠.
손: 예.
양: 이게 제가 보는 이제까지의 우리나라 현실이거든요.  
손: 알겠습니다.
양: 그러면은 이제, 제 생각은 그래요.  비록 재협상을 하면 국가적인 신용도는 조금 훼손이 되겠죠.
손: 예.
양: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국민 모두에게, 소비자한테 신용도를 회복해서
손: 예.
양: 대통령께서 나아가신다면 국민의 힘이, 국가의 힘이 하나가 되니까, 지금 중요한 사항들 너무 많잖아요. 독도 문제도 그렇고.
손: 예.
양: 그래서 옛말에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좋은 말에 귀에 거슬린다 라고 했는데. 비록 제 말이 귀에 조금 거슬릴지라도 이명박 대통령께서 꼭 제 말을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손: 예.
양: 진정 우리나라를 걱정하는 국민들이 너무나도 많고 그 국민들의 목소리거든요. 그러니까 아무리 무식한 국민들이라도 소비자는 왕이구요. 그리고 그 경제 살린다는 말에 이 무식한 소비자들이 뽑아주었다는 말입니다.
손: 예.
양: 그래서 늦게부터라도 정말 정책을 집행할 때에는 이 점을 신중하게 생각해서 해주시고
손: 자, 예, 알겠습니다.
양: 회사가 살려면 소비자의 요구와 기호를 먼저 살펴야하잖아요.
손: 예, 말씀 잘 들었습니다.
양: 그러니까 국민들의 목소리를 항상 먼저 경청을 하고 정말 그 다음에 소신적 나아가셨으면 합니다.
손: 예. 광주에 사시는 양선생님 의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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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세상에서 자신을 위한것이 아닌 세상을 위한 부를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숙연해짐을 느낀다.

과연 나는 언제쯤 이런 분들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을지 상념에 빠지게 된다. 예전 지금 내가 편하게 있는 이유는 내 대신 10명 또는 100명의 사람들이 고통받기 때문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글을 통해서 나 또한 더욱 부에 얽매이는 것이 아닌 나누는 부를 이룰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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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원짜리 시계를 차고 이코노미 클래스를 이용해 항공기 여행 하고 집도 자동차도 없이 살면서, 4조원에 이르는 거금을 남몰래 기부한 미국의 사업가가 18일 보스턴 글로브 등 미국 언론에 소개되었다.

뉴저지의 아일랜드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난 척 피니(찰스 피니, 76세)는 1988년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갑부 23위에 올랐었다. 재산은 13억 달러였으며 루퍼트 머독이나 도날드 트럼프보다 더 큰 부자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당시 그는 갑부가 아니었다. 4년 전에 한 재단에 재산 대부분을 출연했기 때문이다.

척 피니가 세운 자선 재단(The Atlantic Philanthropies)은 지난 25년 동안 40억 달러 이상을 세계 여러 나라 대학과 병원과 인권 단체와 의료 연구 기관에 기부했다. 20억 달러는 미국에, 10억 달러 이상은 아일랜드에 기부되었으며 베트남,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쿠바의 단체들도 수혜를 입었다.

19세기의 자선가 앤드류 카네기를 존경한다는 피니. 노동자 집에서 태어나는 그는 어린 시절 집집마다 다니며 크리스마스카드를 팔거나 눈을 치우며 돈을 벌었고 골프장에서 캐디일도 했었다고. 그는 세계 최대의 면세점 체인 ‘듀티 프리 쇼퍼스’를 세워 갑부의 반열에 올랐다.

“나는 절대 변하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다. 부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써야 한다. 나는 정상적인 삶을 살려 노력했다. 내가 자랄 때의 그 방식 그대로 말이다." 라고 척 피니는 말했다.

플라스틱 시계를 차고, 서류 가방 대신 비닐 봉투를 들고 다니며, 허름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척 피니는 언론에 공개되기를 극도로 꺼린다. 때문에 인터뷰 기사나 사진이 거의 없다. 수도자 같은 삶은 살아가는 척 피니의 선행은 최근 저널리스트 코너 오클러리가 낸 책을 통해 알려져, 해외 언론들에 소개되고 있다.

김경훈 기자 (저작권자 팝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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