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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까지 내리던 비는 말끔히 그쳤다. 파란하늘과 푸른바다가 아침을 밝힌다.

 

어제까지 발밖에 보지 못했던 나의 일정에 변화를 주고자 한다. 게스트하우스 대장과도 나눈 말이지만 목적지만을 향해서 가는 것보다 주위를 보며 여유를 갖고 걸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내일 비 예보가 있어서 오늘 가급적 허락하는 한 많은 거리를 걸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아침7시에 어김없이 게스트하우스를 나왔다.

 

아침마다 느끼지만 제주도의 아침은 조용하다. 쌩쌩 달리는 차나 분주히 다니는 사람들이 없이 정지한 듯한 느낌의 아침이다. 어제까지 괴롭히던 물집이 굳은살로 바뀌고 있는듯 싶다. 아침의 통증도 어제보다는 덜하고 아픔도 덜하다.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

 

3일차 도보 경로는 이렇다.

운진항 - 산방산 - 일주도로 - 중문단지 - 월드컵경기장 - 서귀포시이다.

원래는 풍림리조트 게스트하우스를 목표로 했으나 내일 비가 예보되어 있어서 월드컵경기장으로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막상 월드컵경기장에 도착했을때 마땅한 숙소가 없고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관계로 서귀포시까지 가는 경로로 걸으며 수정하였다. 

 

어제까지 도보는 고통과의 싸움이였다면 오늘의 도보는 여유를 가지는 법을 배우는 하루였다.

고통으로 발만보며 왔던 2일에서 벗어나 오늘은 조금 마음의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보며 걷기로 했다. 생각을 바꾸어서 그런지 마음도 가볍고 몸도 가볍고 특히나 발도 통증이 덜했다.

 

<멀리 보이는 오두막집이 한폭의 그림이다>

 

주위가 눈에 들어오고 어제까지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유채꽃과 밭마다 가득찬 파들과 아기자기한 집들이 눈에 보인다. 어제는 왜 안보였을까, 안타까운 맘이다.

 

1시간 정도 걸었을때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발만보며 걷던 때와 주변을 둘러보며 걷는 속도가 별차이가 없고 오히려 평균 속도는 조금 빨라졌다는 점이다. 목적지까지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보며 걸었는데 시속 4.5Km 내외가 나온다.

 

2일 동안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든다. 맘을 내려 놓으면 이리 몸도 가벼워지는데 무에 그리 급해서 발만보며 목적지만을 향해 걸었는지 어리석은 2일을 보낸 기분이다.

 

그렇게 걷다보니 그 멀리만 보이던 산방산이 눈앞에 어느새 다가와 있다.  

<산방산 전경>

 

문득 이 산을 보면서 고등학교 시절 찍었던 사진이 떠올랐다. 이제까지 난 그 사진을 보며 성산일출봉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20년을 잘못 알고 있었다니 조금 허탈한 기분이다. 사실 작년 10월에 성산일출봉에 갔을때 조금 다르다 싶었지만 막상 산방산을 보니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 허탈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운진항을 떠나 산방산까지 와서 잠시 쉬었다.

참고로 오늘부터 시도하는 것이 신발을 벗지 않기로 한 점이다. 어제까지 쉴때마다 신발을 벗고 또 신고 하다보니 오히려 발의 통증이 심해지고 걸으며 자리잡혔던 발이 신발을 벗으면서 다시 풀어져 결과적으로 다시 걷기 시작할때 발이 제자리 잡기까지 통증으로 제대로 걷지 못한 기억으로 오늘은 숙도 도착까지 신발을 벗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산방산에서 쉴때도 신발을 벗지 않고 그냥 발을 조금 높게 올리고 쉬었다. 쉬다보니 어제 숙소에서 대화할때 용머리와 용두암이란 단어로 혼란이 왔는지 이해가 된다.

<용머리 해안 전경>

 

산방산을 등지고 앞으로 보니 용머리 해안이 눈에 들어 온다. 멀리서 봐도 걷고 싶은 해안이라 생각된다. 발만 괜찮다면 그냥 맘 편히 걸으면 좋을듯 싶다. 사실 첫날 용두암에서 출발했는데 막상 용머리 해안이 있다는 것을 몰라서 용머리 해안을 용두암으로 어제 착각했다. 혹여 용두암과 용머리해안은 혼돈하지 마시길...

 

그렇게 20분 정도를 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확실히 신발을 풀지 않으니 처음 몇걸음만 통증이 오고 그 다음은 괜찮다. 나름 전략이 성공적인듯 싶다. 그렇게 한 3Km를 걷다보니 천혜향을 파는 가계를 봤다. 그냥 지나치려다 가족과 회사팀원들이 생각나서 택배로 천혜향 두박스를 붙였다. 인심좋은 주인아주머니가 천혜향을 5개나 주신다. 한박스에 12~15개 정도 들었는데 이리 많이 주다니.. 받으면서 미안한 맘이 든다. 이날 받은 천혜향으로 쉬면서 기력회복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열매 - 천혜향인지 일반 귤인지는 모름>

 

천혜향을 입에 물고 걷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일주도로를 향해서 걷는다. 간선 도로를 벗어나 일주도로에 들어 섰는데 화순삼거리부터 예래입구 사거리까지 별도의 자전거 도로가 없다. 중문단지 입구까지 가는 길에 별도의 자전거 길이 없다보니 또 위험하게 차가 옆으로 싱싱 달리는 구간을 4~5Km 정도 걸어야 했다.

 

3일째 느끼지만 도보 일주의 위험한 사항은 도로와 분리되지 않은 길을 걷는 것이다. 더욱이 2차선 도로도 아닌 4차선 도로에 갓길도 좁은 상태의 길을 걷는 것은 항상 뒤를 신경써서 걸어야 하는 부담이 존재한다. 그래서 속도도 많이 높이지 못하고 최대한 안전하게 걷게 된다.

 

그리고 화순삼거리부터 예래입구 사거리까지의 코스의 특징은 오르막 내리막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른 곳과는 달리 이 코스에 유독 산이 많다. 산방산, 월라봉, 군산이 있어서 그런지 오르막 내리막이 다른곳에 비해서 많다. 하지만 어제처럼 힘들거나 지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발만보지도 않고 멀리보고 주변을 자주 둘러보며 걷기로 해서 그런지 어제보다 한결 여유롭다.

 

그렇게 오르막내리막을 걷다 그디어 중문단지 입구인 예래입구 사거리에 도착했다. 이제 일주도로를 잠시 벗어나 중문단지 방향으로 길을 걷는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아침은 초코바와 천혜향으로 해결하고 첫 점심을 먹기 위해서 중문단지로 방향을 잡았다.  

<천제연폭포>

 

한참을 걷다보니 천제연폭포가 나왔다. 제주에 오면 헤깔리는게 천제연폭포와 천지연폭포다. 참고로 천제연폭포가 3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천지연폭포는 바닷가 근처에 있는 곳이고 정방폭포와도 가깝다.

 

천제연폭포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가 오늘의 첫 식사인 해물뚝배기를 시켰다. 가격은 1만원으로 대략적으로 비슷하다.

<해물뚝배기>

 

제주 도보 일주 중 가장 맛이 없었던 음식으로 기억된다. 전복도 2개 정도 들어 있는데 하나는 먹다가 뱉었다. 관광지를 끼고 있어서 그런지 음식맛은 그리 좋지도 않고 가격은 가격대로 비싸다는 생각이다. 국물에 밥만 먹고 나왔다.

 

음식을 든든하게 먹지 못했지만 일정이 있어서 후다닥 먹고 다시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보인 우체국... 발의 상태를 고려해서 한라산 등반은 이번 여정에서 포기하는 것으로 하였기에 한라산 등반을 위해 가져온 장비나 옷들을 우체국 택배로 붙여 버렸다. 그래서 그럴까 막상 배낭의 무게가 줄어드니 발걸음도 훨신 가벼워지고 피로감도 덜 느껴진다.

 

그렇게 중문단지를 지나 다시 일주도로를 타고 1차 목적지인 월드컵 경기장까지 계속 걸었다. 다행히 중문입구 삼거리부터 월드컵경기장까지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어서 한결 수월하게 걸을 수 있었다. 걷다보니 유독 제주도의 하천은 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육지의 천보다도 깊이가 깊어서 아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대부분 물이 말라있다. 어제 게스트하우스 대장의 말은 중간지점에서 뽑아쓰는 물이 많아서 하류지역으로 나오는 물이 말랐다는 말을 들었는데 실제 하천을 지날때마다 천에 물이 있는곳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냥 씁쓸한 느낌이 든다.

 

우체국에서 짐을 조금 던 덕분인지 생각보다 월드컵 경기장까지 빨리 도착했다.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1차 목표까지는 잘 도착했으나 이리저리 둘러봐도 숙소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실 검색시에도 경기장 주변 숙소는 별루 없어서 풍림리조트 게스트하우스로 잡았던 것이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지도를 확인하고 서귀포시로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문제는 게스트하우스인데 지난번 검색시에 서귀포시안에 다수의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던 기억으로 일단 서귀포시로 가기로 했다.

 

대략 5Km정도 더 걸어야 했고 소요시간은 1시간반정도 도착목표는 6시30분으로 잡았다. 이제 코스를 선택해야 했는데 일주도로로 계속 갈것인가 아니면 태평로쪽으로 빠질 것인가 고민 끝에 태평로쪽으로 빠지는 코스를 선택했다.

 

월드컵경기장을 조금 지나다 보니 말들이 보인다.  

<길 옆 풀 뜯는 말들>

 

어제도 사실 보긴 했는데 여유롭게 보지 못한듯 싶다. 이미 오늘도 25Km를 넘는 지점이였지만 어제와 같은 통증과 정신적인 갈등은 없다. 그저 주변을 보고 주변을 즐기는 여유가 생긴듯 싶다. 한가로이 먹이를 먹는 말들을 뒤로하고 계속 걷기 시작했다.

 

이제 일주도로에서 태평로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도보에서 중요한 건 거리도 있지만 등고선이다. 같은 거리라도 오르막이 존재하는 경우는 체력소모가 많다. 바로 이길이 그렇다. 등고선이 없는 평면지도로 코스를 선택하다보니 이런 일이 생긴다. 또한 점점 동쪽으로 가다보니 7시까지도 밝았던 날이 6시반이 되니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노을이지는 서귀포 바닷가>

 

설상가상으로 이길의 맹점이 어느순간 갓길조차 사라진다는 것이다. 외돌개로 빠지는 길부터 조가비 박물관까지 길은 거의 두려움 속에 걷는 길이였다. 외길에 수풀도 우거지고 구불구불 되어 있어 걷는 내가 운전자에게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급적 걷다 차소리가 나면 잠시 안전하게 피하고 다시 걷기를 반복하다보니 시간은 시간대로 흐르고 날은 점점 어두워진다.

 

우여곡절끝에 서귀포시에 도착하고 두리번거리며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그러다 찾은 곳이 "백패커스 홈"

처음에는 카페인줄 알았으나 조금 지나 간판을 보니 게스트하우스라고 되어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체크인 하고 여장을 풀었다.

 

도착해서 오늘 걸은 거리를 보니 33~34Km정도 된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 어제와 같은 고통과 정신적 갈등은 없고 맘도 여유롭고 차분하게 하루를 걸었다는 뿌듯함이 느껴진다. 발의 통증은 여전하지만 견딜만 했고 나름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는 느낌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제까지는 쫓기듯 걸으며 목적지만을 향해서 무작정 걷기만 했던 내가 주위를 보며 걸었음에도 어제보다 빠른 평균속도에 피로는 덜한 상황이 되었다는 점이다.

 

오늘 숙소는 어제와 시설면에서는 완전 반대다. 준 호텔급이라고 해도 될 만큼 시설은 수준급이고 외관도 이쁘고 외국인도 간혹 눈에 뜨인다. 여자들이라면 좋아할 곳이라 생각된다.

 

비용은 2만2천원이고 세탁도 1인당 천원에 세제비도 별도다. 방은 4명이 잘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주인은 카페운영하고 있어서 다른 게스트하우스와 다르게 주인과 대화하는 기회는 별루 없다. 다행이 같이 자는 맴버들이 좋은 사람들이라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12시까지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였다.

 

밤에 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 떠서 내일은 비가 안올것만 같다.

 

------------------------ 숙소소개 ------------------------------

숙소 : 백패커스 홈(http://www.backpackershomejeju.com/index.php)

위치 : 서귀포시 천지연폭포 주변(올레 7코스 부근)

금액 : 22,000원(세탁비 별도)

시설 :

- 카페와 연결된 하얀색의 유럽풍 건물, 실내도 깔끔하고 욕실도 깨끗하고 깔끔함

- 숙소 앞 테라스에서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음.

- 인터넷 등 대부분은 카페내에서 해결

- 깨끗하고 깔끔한 곳을 찾는 사람에게 추천

- 화,목,토는 카페옆 외부 공간에서 바베큐파티가 있음.

분위기 :

- 카페와 같이 하는 게스트하우스로 되어 있어서 전반적으로 깔끔한 느낌.

- 숙소 개념이 강하고 다른 게스트하우스 처럼 모이는 공간이 없어서 같은 방이 아닌 다른방 여행자와 교류는 어려움.

- 추천대상 : 깨끗하고 깔끔한 곳을 좋아하는 분, 편하게 쉬고 싶은 분

- 비추천대상 :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기고 싶은 분(단, 바베큐 파티로 해결될지도 모름.)

- 외국인들도 선호하는 곳으로 보여 바베큐 파티가 있는 날에 숙소로 하면 나름 좋을듯 함.

------------------------ 세째날 도보 총평 ------------------------------

1. 여유를 갖고 도보를 즐기자.(몸도 마음도 가벼워 짐)

2. 쉴때 신발을 풀지 말자.(단, 통기성이 좋은 신발이어야 함. 통기성이 좋지 않으면 땀이 배출되지 않는 것이 더 문제)

3. 거리가 짧더라도 등고선을 감안하라.(언덕이나 오르막이 있을지 모르니 사전에 등고선을 확인)

4. 목적지 선택시 반드시 숙소를 확인할 것.(대부분은 다 있으나 특이한 경우에 주거단지만 존재할 수 있음.)

5. 도보는 빨리 걸어도 시간당 5Km를 넘지 않으니 가급적 편한 마음으로 걷는것이 중요.

6. 전용 도로가 없는 경우에 음악을 들으며 걷지 말아라.(관광객들의 난폭운전이 의외로 많음. 스스로를 보호해야함.)

7. 속건성 옷으로 입어라.(빨래를 할 경우 마르지 않음. 일부 게스트하우스에서는 건조기능을 사용할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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