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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이후의 시간은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기 위한 시간이지 회사가 덤으로 얻는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업무상황의 무조건적인 칼퇴근은 실패만을 초래할 것이다. 칼퇴근의 전제는 생산성 향상과 업무강도의 증가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결코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에 최고의 효율을 낼때 비로소 칼퇴근을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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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머니투데이 김용섭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2030성공습관]기업문화와 창의력]

업무를 다 끝내고도 퇴근시간 넘겨서까지 자리에 앉아 있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 이런 경험 없는 직장인이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직장문화에선 눈치 보는 야근은 여전하다. 할일 없이 앉아있다고 책보거나 음악 듣는 것은 절대 해선 안될 눈치 없는 짓이다. 퇴근하자니 눈치 보이고, 할일 없이 앉아있자니 좀이 쑤신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문화가 우리에게 있다. 비효율과 비상식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눈치 보는 야근에 버금갈 것이 과도한 업무로 인한 상시적 야근이다. 며칠만 일하고 마는 거라면 야근해도 상관없다. 매일 일해야 하는 사람에게 야근은 독약과 같다. 직장생활은 마라톤 같은 것이다. 하루 무리해서 달리면 다음날 지장이 생기기 마련이고, 전체 페이스를 흐트러뜨릴 수 있다. 아주 급할 때 가끔 야근해야 야근의 효과도 생기는 것이거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부터 퇴근시간 개념이 사라졌다. 저녁까지 회사에서 먹는 게 당연시 되었고, 심지어 야식도 자주 먹게 된다. 상시적 야근은 자연스럽게 근로시간 연장으로 이어지지만 그렇다고 월급이 더 오르는 건 아니다.

대개 회사의 규정으로는 주 5일 근무에 오후 6시(혹은 7시) 퇴근이라지만 실제로 그것을 늘 지켜내는 직장인은 드물다. 아주 강심장이거나 아니면 아주 능력이 탁월한 직장인이 아니고선 말이다. 직장인들에게 퇴근시간은 지키지 못할 약속 같은 것이다.

칼퇴근, 직장인들에겐 참 서글픈 말이다. 출근과 퇴근 시간이 명확히 정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직장인들은 출근시간은 칼처럼 지키지만 퇴근 시간은 고무줄인 게 현실이다. 늦게 퇴근했다고 다음날 출근시간 늦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늦게 퇴근한다고 야근수당을 챙겨주는 곳도 별로 없다. 그나마 야근도 아니고 칼퇴근도 아닌 어중간한 퇴근은 야근수당을 거론하기도 불가능하다.

칼퇴근이 얼마나 꿈이었으면 직장인 밴드 중에 '칼퇴근 밴드' 라는 곳이 있을 정도고, 칼퇴근을 다룬 패러디나 ucc도 넘쳐난다. 직장인이 사표 쓰고 싶은 사유 중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반복 야근'은 상위에 랭크될 정도이고, 야근이 일상화된 기업문화, 상시 눈치 보는 야근이 만연하다.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으로 갈수록 야근빈도는 더 높다.

경제위기가 오면서 직장인들의 직장문화는 더 살벌해졌다. 야근이 더 늘었다. 최근의 취업정보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에 비해 야근시간이 길어졌다는 비율이 35%에 이르렀다고 한다. 가뜩이나 야근이 많았는데 최근 들어 더 많아진 셈이다. 주말에 일하는 비율도 따라서 늘었다. 구조조정을 해서 인력은 줄었지만 업무는 줄지 않았기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업무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상시적 야근은 가혹하고도 슬픈 현실이다.

출근시간에 늦거나, 어떤 사유로 못나오게 되면 그에 따른 패널티를 받는다. 그렇다고 퇴근시간 지나서 야근을 했다거나 주말에도 나왔다고해서 수당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근무시간을 내가 어길땐 문제삼고, 회사가 어길땐 넘어간다. 말이 안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직장문화에선 말이 된다. 상식에 어긋나는 것은 늘 불만이 되기 마련이고, 불만이 누적되면 직장인의 사기 저하가 되고, 이는 결국 기업의 생산성 감소로 이어진다. 잘못된 직장문화를 방치하면 직원뿐아니라 기업도 손해보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직장인들의 '칼퇴근 꿈'은 요원하다. 매일 칼퇴근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러면 적어도 꼭 해야 할 일이 남아있을 때 외에 일 없이 눈치 보며 하는 야근만큼은 사라지게 하자. 이건 누구에게도 도움되지 않는다. 회사로서도 직장인 본인으로서도 눈치 보는 야근으로 자리 앉아있는건 득 없는 시간낭비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영자들도 생각을 같이 한다.

하이닉스는 매월 둘째주와 넷째주 수요일은 정시 퇴근해 가족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라며 '하이닉스데이'를 만들기까지 했다. 야근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기업에선 특별히 정시퇴근하는 날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당연히 지켜져야할 정시 퇴근이 날을 만들어야할 만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칼퇴근을 포기하지 마라. 칼퇴근은 직장인의 경쟁력과도 관련되고, 기업의 성공과도 관련되기 때문이다.

칼퇴근에 거부감 가진 사장이나 상사는 어리석은 거다. 당장 코앞의 이익에 진짜 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야근을 지속하다간 쓰러지기 마련이다. 과로사는 남의 일이 아니다. 잦은 야근에 시달리고 업무스트레스를 받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언제 닥칠지 모를 일이다. 잦은 야근은 집중력도 떨어뜨리고 업무효율을 저하시킨다.

기업 경영은 하루이틀 하고 말게 아니다. 매일매일 전쟁치루듯 목숨 걸고 일하던 시대는 갔고, 그렇게 한다고 경쟁에서 이기는 시대도 갔다. 창의적인 접근이 기회를 만들어내는 시대다.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고, 장기적으로 유지를 해야하는 것이 경영이다. 그런 점에서 칼퇴근 문화는 사장들이 앞장서서 만들어야 한다. 집중해서 근무시간에 일 다 처리하게 하고, 칼퇴근하고 재충전해서 다음날에 100% 에너지를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창조경영을 강조하는 기업이라면 더더욱 칼퇴근을 늘려야 한다. 말로만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하면서 매일 야근에 시달리며 눈앞에 닥친 과도한 업무량을 소화해내야 하는 환경이라면 결코 창의력과 상상력은 생겨날 수 없다.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일해봐’, ‘참신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봐’ 하는 주문은 아무데서나 통하는게 아닌 것이다.

주문은 할 수 있어도, 그에 따른 창의력과 상상력이 나오려면 조직에서의 공식적인 배려와 제도가 정착되어져야만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듯이, 직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자발성과 충성심에만 기대한다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창조경영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고, 몸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다.

인재경영을 강조하는 기업이나 자기계발을 위해 무언가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도 정시 퇴근은 필수다. 직원의 자기계발에 비용을 대주진 못할망정 그들의 자기계발 할 시간도 배려하지 않는 것은 곤란하다. 직원의 자기계발은 결국 회사의 인적자원의 가치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매일 야근하는 직원들은 새로운 자기계발이나 미래에 대한 투자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금세 도태되는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직원 개인이나 기업 모두에게 손실이다. 오늘 당장 우리 스스로의 칼퇴근을 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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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 바로 이 권력에 대한 생각이다.

권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요즘처럼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없는듯 하다.

권력이 있다면 소수라도 다수를 이길 수 있고 그들의 의견을 묵살 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흘러가는 모습이 아닐까 우려된다.

사실 이러한 권력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조그만 회사, 모임, 프로젝트 등 어디에서나 권력은 존재하며 그 권력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존경과 비난을 받기도 한다.

우리주위에서도 흔히들 보게 되는 것들이 바로 이러한 권력을 잡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서로간의 대립이지 않을까 한다. 권력은 잡은 사람은 그 사람만의 스타일대로 아닌 사람은 자신의 스타일이 홰손되는것에 대한 반발로 충돌이 발생한다.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권력은 잡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권력은 손안의 물과 같다. 권력을 움켜주려고 하면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점점 빠져나간다. 하지만 권력을 주변에 나눌 수 있다면 그냥 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물이되어 끊없이 나오는 샘물과 같이 유지된다.

물은 고이면 썩고 움겨쥐면 빠져나가고 건드리면 흩어져 버린다. 권력도 마찬가지로 가지고 오래 가지고 있으면 부패하게 되고 움켜쥐려고 하면 어느순간 빈털털이가 되고 건드리면 자신을 잃게된다.

권력을 잘 이용하고자 한다면 그 권력을 갖는 것이 아닌 공유하고 배풀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권력을 얻을 것이며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권력으로 남게될 것이다.

권력에 대한 탐욕은 썩은 물 비릿내만 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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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전환 이것이 딱 맞는 기사가 아닌가 한다.

우리는 생각의 테두리내에 갖혀서 그것이외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래 기사에도 나와 있지만 힘들어서가 아니라 재미가 없어서 사용을 안하는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한다.
우리는 너무나 틀속에서만 생각하는 버릇내지는 습관으로 인해서 전혀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오면 사람들은 그것에 빠지고 다들 그것을 따르며
그러한 변화에 대해서 또 다른 틀을 만들어 버린다.

틀을 깨는 것이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틀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 아닐까 싶다. 틀을 깨는것은 생각의 영역을 넓힌다는 것을 이제 알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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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 accept failure, but I can't accept not trying. - Michael Jordan

Talent wins games, but teamwork and intelligence win championships. - Michael Jordan

Just play. Have fun. Enjoy the game. - Michael Jordan

I never looked at the consequences of missing a big shot... when you think about the consequences you always think of a negative result. - Michael Jordan

Always turn a negative situation into a positive situation. - Michael Jordan

I've failed over and over again in my life and that is why I succeed. - Michael Jordan

I don't do things half-heartedly. Because I know if I do, then I can expect half-hearted results. - Michael Jordan

You have to expect things of yourself before you can do them. - Michael Jordan

There is no "i" in team but there is in win. - Michael Jordan

I've missed more than 9000 shots in my career. I've lost almost 300 games. 26 times, I've been trusted to take the game winning shot and missed. I've failed over and over and over again in my life. And that is why I succeed. - Michael Jordan

Talent wins games, but teamwork and intelligence wins championships. - Michael Jordan

My body could stand the crutches but my mind couldn't stand the sideline. - Michael Jordan

If you're trying to achieve, there will be roadblocks... But obstacles don't have to stop you. If you run into a wall, don't turn around and give up. Figure out how to climb it, go through it, or work around it. - Michael Jordan

My heroes are and were my parents. I can't see having anyone else as my heroes. - Michael Jordan

Thanks guys, you got a lot of... a lot of... well, whatever it is, you got a lot of it. - Michael Jordan - Space Jam

Listen, this is a man's game. You can't play! - Michael Jordan - Space Jam

[출처: http://greatsayings.blogspot.com/2006/06/michael-jordan-quotes.html]









"I've missed more than 9000 shots in my career. I've lost almost 300 games. 26 times, I've been trusted to take the game winning shot and missed. I've failed over and over and over again in my life. And that is why I succeed."

 

"난 선수생활중 9000개가 넘는 샷을 넣지 못했다. 난 거의 300여 게임에서 패했으며 26번이나 결승 골 찬스를 놓치고 말았다. 난 실패와 실패를 거듭했다 난 그러했기 때문에 성공할수 있었다".

 

 

"I can accept failure, but I can't accept not trying."

 

"난 실패를 받아들일수 있다 그러나 도전하지 않는것은 받아들일수 없다"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3학년을 마치고

NBA 드래프트에 자신의 이름을 넣겠다고 발표했을때

마이클 조던은 단순히 '괜찮은' 선수에 불과했다.

2위 지명을 가지고 있던 포틀랜드는

당시 조던을 '클라이드 드렉슬러의 아류' 정도로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때 자신이 다니던 레이니 고등학교 농구팀에 들어갈수 없었다...

 

은퇴를 하고 야구를 시작했던 그를 보고 야구선수로

성공할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처음으로 NBA 우승의 맛을 보기까진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점수만 넣을줄 아는 선수라고 비난했다

사람들은 그를 팀 메이트를 생각하지 않는 선수라고 했었고

사람들은 그의 수비는 그의 공격과 반비례 한다고 비난했었다...

 

...

 

그러나

 

팀에 선발 되지 못했던 2학년 내내 그는 아침마다 개인훈련을 했었고

 

마이너리거 였던 조던은 손에 물집이 터져서 피가날지라도

새벽 6시 개인 배팅 연습은 빠지지 않았다.

 

그의 수비력을 비난했던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조던은 선수생활 시절에 9번이나

올 디펜시브 팀에 올랐고

87-88년 시즌엔

올해의 수비수 상까지 수상했다...

 

첫번째로 컴백한뒤 팀을 동부 컨퍼런스 결승까지 이끌었지만

당시 매직의 닉 앤더슨에게 가로채기를 당한 그는

'조던의 시대는 끝난것일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듬해 NBA 리그 역사상 정규시즌 최고 기록인

72승 10패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기며

다시만난 올랜도 매직을 4연승으로 가볍게 물리치며

다음 시리즈 상대였던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누르고 우승을 한다...


 

 

조던이기 때문에 가능한것이었을까?
가능하기 때문에 조던이었던것일까?
 


 
 
"My body could stand the crutches but my mind couldn't stand the sideline."
 
"내 육신이 목발을 짚고 서있을지라도 내 정신은 벤치에 머무를수 없다"
 
"Just play. Have fun. Enjoy the game"
 
"그냥 뛰어라. 흥미를 가져라. 게임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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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와에서 이문세, 박미경, 김건모가 부른 노래..
제목대로 친구란 그런것.. 으로 노래도 좋지만 가사도 아름답다고 느낀다.
정말 친한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에게 이 노래를 불러주면 더 없이 좋을듯 하다.
좋을때, 힘들때 언제나 친구와 같이 한다는 그 느낌..
친구란 그런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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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t's What Friends Are For
Dionne Warwick

And I never thought I'd feel this way
And as far as I'm concerned
I'm glad I got the chance to say
That I do believe I love you

And if I should ever go away
Well then close your eyes and try
To feel the way we do today
And then if you can remember

**
Keep smiling, keep shining
Knowing you can always count on me, for sure
That's what friends are for
For/In good times and/in bad times
I'll be on your side forever more
That's what friends are for

Well you came and opened me
And now there's so much more I see
And so by the way I thank you

And then for the times when we're apart
Well then close your eyes and know
These words are coming from my hearts
And then if you can remember

** Repeat three times

That's What Friends Are For sung by Dionne Warwick

친구란 그런 것

전에는 이런 감정 느껴보지 못했죠
나로서는 내가 그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기회가 온 것이 기쁠 뿐이랍니다
언젠가 내가 떠나게 된다면
그대 두 눈을 감고 오늘 우리의 이 느낌을 다시 되새겨 보아요
우리의 추억을 기억할 수 있다면 말이에요

항상 밝은 얼굴로 미소지어요
언제라도 내게 기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바래요
친구란 그런 것이죠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나는 영원히 그대 곁을 지킬 거예요
친구란 바로 그런 것이죠

그대 내게 다가와 내 마음을 활짝 열어
이제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지요
그래서 너무나 고마울 뿐이랍니다
그대와 나,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은
감나히 눈을 감고
내 가슴 속에서 우러나는 얘기들을 떠올려 봐요
우리의 추억을 기억할 수 있다면 말이에요

세 번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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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inalfantasia.com/fantasybbs/board.php?bo_table=free&page=1&wr_id=253580
원본은 위 링크이며 원본을 그대로 가져와 올립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도하며 지금의 민주주의를 이끌어 주신 두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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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보시는 것들은 전부 영화같은 역사적 실화이며 진실입니다.


대한민국은 건국이래 항상 보수라는 가면을 쓴 독재가 지배를 해 왔었다.

이것은 그 불편한 진실, 금기를 깨고 도전한 한남자의 이야기다.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재미있는 사실은 이 남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국인 한국보다는 외국에서 자신의 행동을 인정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 남자의 이름은 인동초 " 김 대 중 "


이사람은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다.


-경상도 부산선거 유세중-

" 부산의 파도야 ! 광주의 무등산아 ! 너희에게 넋이 있다면 나 김대중이를 버리지 말아다오 ! "


" 하이고~마 전라도에서 인물이 나온기라 김대중이가 인물이데이~ "

구식인 박정희를 유일하게 이길수있었던 젊은 패기 김대중

부산유세 당시 302,452표 반이상 휙득 박정희와 막상막하...
하지만 부산은 그를 택했다.

그후 실질적인 김대중의 승리인데도 박정희의 투표조작 부정선거로 패배

박정희는 경남의 심장부 부산민심을 확인한 뒤 김대중을 두려워하고 견제하게 된다.

그뒤 박정희는 언론과 합세해 인간으로서 할수없는 온갖 유언비어를 만들어 조작

김대중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그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호남차별을 만들고 지역감정을 만들게 된다.

드디어 우리 현대사에서 '지역주의의 정신병' 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경상도는 개밥의 도토리가 될 것이다''
-국회의장 이효상'-

''김대중이가 대통령이 되면 경상도에는 피바람이 불 것이다''
-중앙정보부의 선동문구-

''김대중이 정권을 잡으면 모조리 모가지가 날아 갈 것이다''
-경상도 공무원들에게 공화당의원이-

''경상도 사람치고 박정희 안 찍는 사람은 미친놈''
-1971년 4월 18일 조선일보-

''우리 신라 경상도가 똘똘뭉쳐 계속우리만의 시대를 이어가자''
-1971년 동아일보-



그 후 독재에 맞선 이 젊은 정치인은 총칼을 든 군사독재와 약자편에 서주지 않았던 언론에게
야만적인 빨갱이라는 낙인과 함께 늙은 노정객이 된 오늘날의 이순간에도 서양의 인종차별보다 더한 비논리적인 온갖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눈물과 고통으로 살아가게 된다.

1997년 김대중은 망령같은 차별앞에 극적으로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독재를 했던사람들에게 일체보복을 하지 않았으며 먼저 다가가 용서와 화해를 하고 손내밀어 평화를 자청했다.

박정희 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 촛불1세대 민주당과 김대중총재


그는 언제나 당당했다.


" 국민이 내편이기 때문에 나는 결코 두렵지 않다 "


-군사독재재판 마녀사냥으로 불리우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김대중-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말한다는게 죄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저는 결코 타협할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김대중 납치사건

김대중을 두려워했던 박정희가 김대중을 죽이려했던 음모

이 사건으로 김대중대통령은 다리에 평생 장애를 갖게된다.

그 후 유신헌법으로 박정희는 평생 국민선거없이 자신이 대통령할 수있는 박정희왕국 건설....

하지만 김대중은 정의와 상식이 통하지않는 폭력과 야만 따위에 굴복하지 않았다.






-부마항쟁-

경남과 부산에서 박정희독재에 항거한 민주화항쟁

박정희와 그의 충복 차지철은 경남과 부산에 학살명령을 내린다.
야만적이고도 군사독재정권의 비열함 무식함이 들어나는 가벼운 그들의 말이었다.

다행인지 부하 김재규가 그것을 막은격이 되었다.

자신이 만든 유신헌법으로 선거가 더 이상 필요없기 때문에 경남부산은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다는 판단에 말을 안듣는단 이유로 학살을 자행하려 했다.

하지만 예언이라도 된 것처럼 실제로 실행에 옮기게 되는데...

그 뒤를 잇는 신군사정권이 쿠데타를 일으켜 경남부산에서 일어나려했던 엄청난 일이 벌어지게 된다.

- 신 군사독재정권과 5공화국 공포정치의 상징 전두환의 등장 -

"군은 절대로 정치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말은 당연하다는 듯 국민을 깔보면서 비웃듯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박정희가 죽어도 그 독재란 이름의 전통은 유지 되었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정권,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명박


" 정치적 누명과 보복은 내가 죽어서도 나하나로 끝나야할 것입니다 "


전두환 독재군사정권에게 사형선고를 받고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김대중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인간의 마음은 어떠할까?

해방 후 지금까지 독재적 군사통치가 판을 칠때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외면했다.

'나는 야당도 아니고, 여당도 아니다. 나는 정치와 관계없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봐왔다.
그러면서 그것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인 양 점잔을 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악을 악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선을 선이라고 격려하지 않겠다는 자들이다.

스스로는 황희 정승의 처세훈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기합리화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얼핏보면 공평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공평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비판을 함으로써 입게 될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다.

이것이 결국 악을 조장하고 지금껏 선을 좌절시켜왔다.

지금까지 군사독재 체제 하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이렇듯 비판을 회피하는 기회주의적인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좌절감을 느껴왔는지 모른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악한 자들을
가장 크게 도와준 사람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란 말이 바로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독재정권에 사형선고를받고 죽음을 기다리던 김대중의 잠언집中-

" 저희는 어디로 가는것입니까 ? "

"알것없다. 우리 최강 공수부대는 각하의 명령으로 빨갱이 잡으러 간다!
작전명 화려한 휴가다."

" 그런데 말입니다. 서쪽으로 가고있습니다 "

" 이곳은 대한민국 광주 아닙니까????? "

" 상부의 명령이다. 이놈들은 전부 빨갱이다. 때려잡아라 "

" 예 ??? "

" 까라면 까라 새끼들아!!! "

" 이곳은 다른지역과는 좀다릅니다 저항이 심합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요 ! "

" ......네 알겠습니다 ...."

"사살 명령이 내려졌다 전부 쏴 죽여버려 ! "

" .................... "

- 1980년 5월18일 광주 민주화항쟁 -


대한민국을 지키는 공수부대가 대한민국 국민을 자국민을 학살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위사진의 아비 잃은 어린소년 눈안에 대한민국 모든 세상의 슬픔이 담겨져 있다.

그후 호남에서의 정치투표는 투표라기보단 차라리 피눈물맺힌 한 이담긴 저항 이라고 봐야했다.

광주 .... 광주 ..... 서러워 울지마라 광주야 .........

" 전라도 새끼들은 다죽여야된다. 빨갱이 새끼들 어디서 전두환각하한테 대느노 ! "

독재정권과 언론에서 빨갱이소굴이라 떠들던 그곳
그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던 역사의 현실과 진실....

유일하게 전두환에게 굴복하지않고 저항한 지역의 이름 " 호남 그리고 빛고을 광주 "

독재나치에게 학살당한 유태인들처럼 광주의 호남인들은 꽃잎처럼 그렇게 죽어갔다.

김대중은 옥중에서 신문언론을 접하고 신문을 다적실정도로 가슴찢어지는 통한의 오열을 하게된다.

힘없던 자신과 지켜주지 못했던 자책감은 평생의 짐이 된다.

광주민주화운동후 해외유명인사들의 적극적 김대중석방운동으로 궁지에 몰린 전두환은 김대중을 석방.

감옥에서 해방되고 난뒤 곧장 광주로 직행 망월동 광주민주화 영령들과의 만남
한서린 서러움의 통곡 지울수없는 상처...

콩을 콩이라하고 팥을 팥이라 하는 그들이 대체 무엇이 죄일까?

호남과 광주 .... 대한민국 평생의 상처와 아픔이자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딱맞는 도시였다.
죽어도 죽은게 아닌 그들은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그후 광주만의 전쟁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전쟁이 되어 전두환은 항복한다.


<독일의 어느 목사의 글>

그들이 유태인을 잡아갈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므로.

그들이 동성애자들을 잡아갈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므로.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잡아갈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땐, 나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운동권 대학생 유시민 27세-

판사들에게 외친 그의 한마디

" 전대가리의 개들아!!  백년만년 잘처먹고 살아라 ! "

이젊은 청년의 눈빛은 군사독재에 대한 원망으로 살기가 가득했다.

그의 살기어린 눈빛은 386세대 젊은시절 독재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 해주고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젊은 386세대들의 등장과 밑에 한남자의 등장으로 김대중을 이을 제2의 민주화항쟁은 시작된다.


" 이의있습니다 ! 반대토론을 해야합니다 ! "

김영삼이 3당합당 민자당 (김영삼,전두환,노태우,김종필)

독재와 손잡고 민주주의를 배신하려 하자 거세게 항의한다.


" 친일군사독재 민자당(한나라당)은 해체되야 한다 ! "

"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민주당 경선에 관심갖지 마십시요 ! "


1988년 혜성같이 등장한 5공 청문회 정치스타 노무현-

" 와~~~저양반 대단하네 전두환대통령각하 한테 저렇게 해도되나? "

청문회에서 독재자 전두환에게 명패를 던진 젊은 정치인 노무현.

그후 독재와 3당합당으로 민주주의를 배신한 김영삼을 떠나 민주당으로 입당후
호남비방만 하는 한나라당 후보에 밀려 어처구니 없게도 부산에서 연일 낙선한다.

" 광주에서 콩이면 부산에서 콩이고 대전에서도 콩이다 "

경상도에서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오시면 동네이장도 할수없는 말도안되는 현실입니다.

우리가 남이가, 이것을 버려야 합니다 지방민들에게 그들은 남이니깐요!!

김영삼 대통령은 말씀하셨습니다. 머리는 빌릴수있지만 건강은 빌릴수없다고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지식이 없는 자가 대통령이 됩니까?

진짜 지성이 대통령이 되야합니다.
민주당 김대중 총재는 그럴자격 충분히 있습니다.

-부산유세-

저는 경상도에서 깃발만 꼽으면 당선되는 지역주의자들과 싸울것입니다.

사람을 봐주십시요 !

더럽고 아니꼬운 꼴 안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

그래도 그는 그의 정치적고향 부산에 관심을 끊지 않았다.
그뒤 지역주의자들과의 전쟁을 다짐한다.

그리고 그에게 붙여진 별명 " 바 보 "

정치인이기 전에 투사로써의 이미지는 국민들에게 각인되었다.

이사람은 후에 제2의 민주당출신으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에 입성하게 된다.

"호남이 선택한 영남 대통령 노무현의 비극적인 죽음 "

노무현 대통령 서거후 평생민주화동지였던 팔순이 다된 늙은 노정객의 통곡

"평생 민주화 동지를 잃었고, 민주정권 10년을 같이했던 사람으로서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입니다."

노무현이란 사람은 그에게 사랑하는 자식같은 존재였다.

같은 민주당 출신인 그둘의 관계는 핏줄이었다 아니 피보다 진했다 ...

나는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교동에서 독일 〈슈피겔〉 지와 인터뷰를 하다가 비서관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왜 그때 내가 그런 표현을 했는지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온 과거를 돌아볼 때 그렇다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노 전 대통령 생전에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에 처해지는 상황을 보고 아무래도 우리 둘이 나서야 할 때가 머지않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나는 상주 측으로부터 영결식 추도사 부탁을 받고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지 못했습니다.

정부 측에서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어이없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정부에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한 추도사는 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영결식장에서 하지 못한 마음속의 그 추도사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추천사로 대신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십시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을 살았던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같이 유쾌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탁월한 식견을 가진 그런 지도자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것을 나는 아주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동안 부디 저승에서라도 끝까지 국민을 지켜주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우리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조문객이 500만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그것이 한과 한의 결합이라고 봅니다.
노무현의 한과 국민의 한이 결합한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억울한 일을 당해 몸부림치다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나도 억울합니다.
목숨 바쳐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 억울하고 분한 것입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입니까?

1980년 광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1987년 6월항쟁을 전후해서 박종철 학생, 이한열 학생을 포함해 민주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그런데 독재정권, 보수정권 50여 년 끝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10년 동안 이제 좀 민주주의를 해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되돌아가고 경제가 양극화로 되돌아가고, 남북관계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꿈같습니다, 정말 꿈같습니다.

이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각성하는 시민이어야 산다.”, “시민이 각성해서 시민이 지도자가 될 정도로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말해온 ‘행동하는 양심’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 각성하는 시민이 됩시다. 그래야 이깁니다.
그래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그 길은 꼭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바르게 투표하면 됩니다.
인터넷 같은데 글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민주주의 안 하는 정부는 지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기일 때, 그것조차 못한다면 좋은 나라와 민주국가 이런 말을 우리가 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은 타고난,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감각을 가진 우리 헌정사에 보기 드문 지도자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을 사랑했고, 가까이했고, 벗이 되고자 했던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항상 서민 대중의 삶을 걱정하고 그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유일하게 자신의 소망으로 삼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당한 조사 과정에서 갖은 치욕과 억울함과 거짓과 명예훼손을 당해 결국 국민 앞에 목숨을 던지는 것 외에는 자기의 결백을 밝힐 길이 없다고 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알고 500만이 통곡했습니다.

그분은 보기 드문 쾌남아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가졌던 것을 영원히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라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적으로 사는 세상, 이런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뜻을 계속 이어가서 끝내 성취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했다고 해도 서거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가 아무리 500만이 나와서 조문했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그 한과 억울함을 푸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분의 죽음은 허망한 것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노무현 대통령을 역사에 영원히 살리도록 노력합시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비록 몸은 건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 허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하니 하루도 쉬지 말고 뒷일을 잘해주시길 바랍니다.
나와 노무현 대통령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평화를 위해 일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후배 여러분들이 이어서 잘해주길 부탁합니다.

나는 이 책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가 그런 후배 여러분의 정진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터뷰하고 오연호 대표 기자가 쓴 이 책을 보니 정치인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기 전후에 국민의 정부와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책으로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공부하십시오.

그래서 민주정부 10년의 가치를 재발견해 계승하고, 극복할 것이 있다면 그 대안을 만들어내서, 결국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고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길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평소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했던 미국 민주당 빌클린턴 대통령

늙어서도 공부와 독서를 게을리 하지않는 민주주의의 지성 김대중 대통령을 세계지도자들은 존경한다고 말한다.


1981 Bruno-Kreisky 인권상 / 1983-현재 미국 Robert Kennedy 인권상위원회 고문 / 1983-현재 국제고문희생자 구원위원회 고문 / 1983-현재 미국 Pittsburgh La Roche 대학교 이사 / 1983 미국 에모리대 명예법학박사 / 1987 미국 George Meany 인권상 수상, 북미주 한국인권연합 인권상 수상 / 1992 모스크바대학교 외교대학원 정치학 박사 / 1992 미국 가톨릭대 명예법학박사 / 1993 제3회 애서가 상 (한국 애서가 클럽) 수상 / 1994 미국 New York Union 신학대학교 Union Medal 수령 / 1994 Russia 국제생태학협회 정회원

1995 미국 포트랜드 주립대 명예인문학박사 / 1998. 2 무궁화 대훈장 / 1998. 4 영국 런던대 명예교수 / 1998. 6 미국 조지타운대 명예교수 / 1998 UN 인권협회 인권상 / 1999. 7 Philadelphia 자유메달 / 2000. 11 [라프토] 인권상 수상 / 2000. 12 노벨 평화상 수상 / 2001. 9 세계정치지도자상 수상 / 2002. 1 민주주의 수호자상 수상 / 2003. 5 제8회 늦봄통일상 수상 / 2003. 8 제7회 만해평화상 수상 / 2003. 12 칠레공화국 대십자훈장 수상 / 2003. 12 춘사 나운규 영화예술제 공로상 수상

조셉 바이든 (부통령)
오바마와 런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당선된 바이든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그분과 나는 매우 친분이 두텁다"며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한다고 한다.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루빈은 오바마 정권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오바마 경제팀이 거의 다 '루빈 사단'에 속해 있다. '스타군단'으로 알려진 오바마 경제팀의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로런스 서머스 NEC위원장 등이 루빈 인맥이다. 루빈 역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김대중 대통령이다"며 공개적으로 자랑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말이 필요없는 대표적인 친DJ다. 현직시절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반해 김대중만 졸졸 따라다니며 미국의 대북정책을 지휘했다. 스스로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시간을 자랑스러워 한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한국정부가 '국가원수' 대접을 하면 목에 힘이 들어갈만도 한데, 촉박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님께 '안부인사' 드리는걸 잊지 않았다.

티모르의 오르타장관(현 대통령)
'김대중은 가장 유명한 독재자에 목숨을 걸고 항거한 사람이었다. 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지도자를 비난하는지 묻고 싶다. 질투 때문인가"

라우 독일 대통령
 "김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독일이 한국의 금융위기 때 한국을 돕는 동기가 됐다"

미셸 깡드시 前 IMF총재
"한국은 김대중씨를 대통령으로 두고 있다는 자체를 행운(luck)으로 받아들여야 할것입니다. 경제위기를 맞아 몇가지 고비가 있었지만 IMF와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 전반은 김대통령을 믿고 한국을 밀어준 측면이 적지 않은게 사실입니다...", "엄청난 탄압에도 좌절하지 않고 마침내 자신의 뜻을 이뤄낸 김대통령은 만델라의 삶을 연상시킵니다."

조스팽 프랑스 총리
"김대통령은 나에게 살아가야 할 힘, 살아가야 할 도덕적 스승이자 길잡이다"

제임스 울펀슨 세계은행 총재
"민주화뿐 아니라 경제의 재구축에 성공하고 있는 김대통령은 세계를 감동시키는 지도자 입니다..."

세계적 경제전문 통신 블룸버그
"김 대통령은 경제ㆍ정치ㆍ외교 분야에서 이룬 업적으로 반세기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77세의 김대중씨는 한세대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지도자의 업적을 이뤘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
"세계에서 단임 5년에 김대중씨 만큼 변화시킨 대통령은 거의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김대중씨처럼 한국 경제에 공헌한 대통령은 없기 때문에 한국민은 떠나가는 김대중씨를 마음으로 부터 감사해야 한다"

참고로 유럽연합의 맹주격인 독일쪽의 대통령들도 바이든 이상으로 DJ에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퇴임후 훈장도 수여하고 직접 도서관에 방문해 안부도 묻고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미주지역까지 그 위상은 상상 이상입니다.

그리고 또 한 명...

김대중 대통령이 대한민국 제2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지목하고 추천했으며
함께 서러움과 외로움을 느끼며 아꼇던 한 경상도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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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대통령 그분은 그 시기에 가장 탁월한 정치인이었습니다."

한 시대의 역사적 가치의 상징이었죠. 민주주의라는 역사적 가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분을 평가할 때 그 점을 우리가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퇴임 5년이 지난 지금 이런저런 평가들이 있지만, 내가 청와대에 들어와서 보니 이 정부의 구석구석에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남아 있었습니다.

내가 창조적인 것이라고, 내가 처음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들어가 보면,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있더란 말입니다. 그런 것이 한두 개가 아니고 상당히 많습니다.

정부 혁신 부분에도 그런 것이 있고,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모든것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분 스스로 비전, 전략, 정책에서 역시 탁월한 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대강대강 주변의 학자들이 적어준 것이 아니라, 머리를 빌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입니다.

한 수준을 뛰어넘는 거죠. 머리를 빌려서 하는 지도자와는 다릅니다.
말하자면 철학과 가치, 전략, 정책 모두 탁월한 정치인입니다.

해외 다니면서, 외교하면서 제가 받은 느낌인데요, 한국이 국제무대의 당당한 일원으로 등장한 때는 국민의 정부부터입니다.

지도자의 정통성이 국가위신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많이 실감하고 다닙니다.
 
제가 국민의 정부의 정책을 다시 한번 평가해 보면서 과연 지도자의 자리는 머리를 빌려서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 같다, 해박한 지식, 지식과 정보에 대한 탐욕, 깊이 있는 사고력, 잘 정리된 가치와 철학이 꼭 필요한 자리인 것 같다,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김대중 대통령님 그분은 천재시지요. 저는 그분을 매우 존경합니다"


바보 노무현이 존경했던 3명의 인물

링컨 , 김구 선생 ..그리고..김대중 대통령


김대중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민주당)

본관 : 경상남도 김해
고향 : 전라남도 신안
학력 : 목포상업고등학교
거주지 :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동
대한민국 민주주의 초대 대통령

노무현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민주당)

본관 : 전라남도 광주
고향 : 경상남도 김해
학력 : 부산상업고등학교
거주지 : 자유민국 민주동 하늘나라
대한민국 민주주의 제2대 대통령


노무현대통령과 같은 민주당출신인 김대중 대통령은 노대통령 서거 이후
노무현 대통령과 전생에 가족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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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8일
50년간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故 김대중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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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나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위험한 행동으로 인식되는 시대가 되어가는것 같다.

한 10년동안은 나라에 대해서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말했던것 같은데 지금은 군사정권과 비슷해지려는 우려를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와중에 저 멀리 영국에서 이러한 한국의 현실을 걱정하며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런던 한복판서 'MB OUT' 퍼포먼스
유학생 추정 한국인, 2400명 릴레이 퍼포먼스 참여 <-- 클릭


민주주의라는 것을 어느순간 우리는 의심하게 되는 시대에 살게 되는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민주주의라는 말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뜻은 그렇게 되어 있으나 지금의 정치는 어떠한지 의심이 들 뿐이다. 국민의 70%가 반대해도 30%를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말로 밀어붙이는 각종 법들을 볼때 해외에서 유학생들이 저런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자못 한국의 민주주의 현실이 아닐까 한다.

국내에서 저렇게 할 경우 예전과는 다르게 경찰에게 잡혀가는 신세지만 민주주의를 인정하는 나라에서는 저런 행동에 대해서 관여하지 않는다. 저것도 하나의 민주주의 형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등은 국민의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국민의 주권을 위탁받아서 열심히 나라를 위해 노력하는 이른바 일꾼이다. 그런 일꾼은 위탁받은 것에 대해서 노력한 것들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하고 잘못하고 있을 경우 국민은 일꾼에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국민의 주권은 없다는게 현실이 아닐까 한다. 저 영국에서 트라팔가 광장의 모습에서 그리고 그가 하고 있는 브이포벤데타의 이미지는 미디어법을 통한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는 영화와 다를게 없기에 저 시위가 의미하는 것이 걱정이 된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이들의 행동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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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획이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한번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빨리 가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많은 것을 단기간에 이루려는 욕심은 결국 자신만의 기획이 될뿐 고객이 숨쉴 곳이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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